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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독서일기(2025.5.15. 목)

by 아가다의 작은섬


그녀의 이름은 '안진진'

그녀의 부모님이 합의하기는 진(眞 참, 진), 이라는 외자 이름이었지만, 그녀의 변덕스러운 아버지가 동사무소에 신고하러 가는 도중 '진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녀의 성은 '안'이었다.


안진진, 그녀가 25살이던 어느 날 아침! 이렇게 외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그리고 자신의 빈약한 인생에 부피를 널리기 위해 결혼에 빠져보기로 한다. 스물다섯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결단 중에서 그녀는 결혼을 선택했고,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삶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보기로 한다. 그녀의 남편 후보는 두 명이다. 한 남자는 극 P형 남자로 가난하고 무계획적이고 또 다른 한 남자는 극 J형 남자로 안정적이고 웃음 한 조각까지 계획하는 남자다.


그녀의 엄마는 쌍둥이다. 거짓말처럼 4.1일 만우절에 쌍둥이로 태어나서 똑 닮은 외모로 똑같은 성격으로 살다가 똑같은 날인 4.1일에 결혼했다. 이모는 이모부를 '심심한 남자'라고 말한다. 모든 삶을 하나의 오차 없이 자신이 계획한 데로 살아가는 남자, 그 속에서 이모도 계획의 일부분처럼 존재한다. 누가보아도 평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정작 심심한 삶은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삶을 놓은 이모와 술을 마시면 아내를 때리고 직장도 없이 가출을 반복하다 중풍과 치매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잦은 문제를 일으키다 끝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들을 둔 엄마. 인생의 고비마다 심심할 틈 없이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 확연히 달랐던 결혼 이후의 삶은 쌍둥이의 성격과 외모에 다른 지도를 그린다. 안진진, 그녀는 엄마와 이모의 닮은 얼굴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혼으로 인생의 부피를 늘리고자 했던 관찰에 관찰을 거든한 끝에 처음엔 사랑을 선택했지만, 이모의 죽음 이후 다른 선택한다. '세상에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죽음까지도 계획할 것 같은 남자와의 결혼을 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게 한없이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다'




참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초반에 쌍둥이 자매가 똑같이 중매로 결혼해서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 한쪽은 행복하고 한쪽은 삶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모습에 나는 어느새 이모보다 엄마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오만가지 불행과 찰나 같은 행복을 누린 엄마의 삶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했다. 그리고 이모도 저 안락함에서 빠져나와 공평하게 조금은 불행했으면 했는데... '심심한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놓는 전개가 펼쳐질 거라곤 정말 예상하지 못해서 충격을 받았다.


모순이다.

고통에 중독된 사람처럼 한 가지 고통을 살아내면 인간은 금세 새로운 고통으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통을 살아내는 기술보다 작은 평화를 즐길 줄 아는 인내일지도 모른다.




모순/양귀자/소설/쓰다./296p


21p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51p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75p 어쩌면 돈보다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122p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57p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173p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91p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210p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등이 바로 사랑이다.


217p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227p 세상에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295p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게 한없이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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