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세이(2025.08.27. 수)
감사랑합니다.
글로 마음을 나누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과제를 수행하듯
엉덩이가 들썩이지만, 선뜻하기가 어려워 늘 미루기만 했던 일들을 몇 가지 해냈다. 굳이 '했다'가 아니라 '해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하고 싶지만, 동시에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다.
'아가다! 멋지다'
몇 가지 해낸 일들을 SNS에 올렸더니 친구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그 응원이 고맙고 큰 힘이 되지만, 정작 나는 '멋지다'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한다. '멋짐' 뒤에 숨어있는 감정은 멋짐과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은 여전히 낯설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피하고 싶다. 그래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기로 선택했지만, 그 과정을 살아내는 일은 설레고 즐거운 한편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 낯선 마음이 점점 커질 때면, '사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하지 않으면 모를 고통인데, 왜 나는 이 길을 가고 있을까.
그럴 때 친구가 말했다.
'그 감정의 본질에 다가가려면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어. 아가다, 끝까지 가봐'
그 한마디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나아가고 싶지만, 항상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늘 내 앞을 '막아서는' 듯하다. 그러나 그 본질을 마주하려면 결국 나는 계속, 계속해볼 수밖에 없다.
삶의 한가운데서 있는 지금, 나는 해보는 것 자체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잘했다, 못했다' 보다, 그 과정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효능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은 그래야 것 같다. 하고 또 하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 닿지 않을까. 삶이란 결국 감정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니까.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어떤 감정도 피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삶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감정들로부터 도망쳐왔다. 지금껏 외면했던 그 감정이 이제 나를 부르고 있다. 이제는 그 감정에 대답할 차례다. 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