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가다의 작은섬 Jul 27. 2022

나는 왜 내 가족이 더 아플까?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다.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도 내 (원) 가족이 더 아플까?

왜 우리 가족은 함께 있을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제 탓이 아니라 변명하기 바쁜 (원) 가족,


서로를 책망하고 비난하며 그 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 가족,


다른 가족의 눈물보다 내 상처가 더 아픈 나의 (원) 가족,


가족이었지만 사랑만 바라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였을까?


왜 가족은 무조건 사랑하고 이해하며, 수용해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가족은 무엇일까?


나는「박상미의 가족상담소」를 읽으면서 마음속의 의문에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나의 결핍을 자녀에게 보상해주며 만족을 느끼는 거죠. 그런데 왜 자녀들은 부모 마음을 모르는 걸까요? 내가 낳았지만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마음은 내가 낳지 않았어요.』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14p 박상미)     


나와 같은 아픔을 갖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아네스와 테레사에게는 가족이 아픔 이질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완벽한 부모이길 바랐고,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 ‘심맹’처럼 나는 사랑으로 키운다 착각했습니다.


타인「他人」다른 사람

자식은 타인이 맞을까요? 아니면 탯줄로 연결되고 내 뱃속에서 10달을 품었기에 또 다른 나일까요?


아네스와 테레사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칠 때가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놓을 수가 없겠구나.
아이를 낳고 한 인간을 오로지 책임지며 살아간다는 것, 참 두렵고도 버겁다.
차라기 나 혼자였다면, 이런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을 텐데..’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하고 엄마의 뱃속에서 일정 기간을 머물러야 합니다.


자식은 타인, 나와 다른 사람이지만 나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자식이 한 인간으로 자립할 때까지 사랑을 전제로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겠지요.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속에 진심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내 부모가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해’,‘고마워’라고 말했을 때 ‘뜨거운 사랑을 느꼈어요.’라고 말하는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20p 박상미)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무너져 내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 아픈데 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냥 한마디면 되는데, 그 한마디면 나의 남은 세월이 좀 더 편안할 텐데.. 듣고 싶었지만 끝내 듣지 못했던 그 한마디,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한 마디의 힘

자녀가 상처받았다 말하거든, (울부짖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일단 사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진실한 목소리로,

진심을 다하여 사과해주세요.


부모는 억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잘못한 것은 자식을 사랑한 죄뿐이니까요.


품 안의 자식이라고

자식이 70살이 넘어도 부모는 자녀가 밥을 잘 챙겨 먹었는지 걱정합니다.


자식이 70살이 넘어도 부모는 자녀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70살이 넘었어도 그 자식에게 부모는 어른입니다.


자녀가 상처받았다고 하면 상처받은 것입니다.

부모는 어른이기 때문에 사과하셔야 합니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자녀가 평생 안고 살아갈 수도 있는 상처가 치유됩니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자녀가 평생 안고 살았던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 작업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안하다’ 말을 수없이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는 언제나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내 자녀를 사랑하는데 자녀가 내 마음을 몰라주나요?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섭섭한가요? 그러면 오늘 자녀에게 편지를 한번 써보세요.』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20p 박상미)     

뒤늦게 깨닫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 편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나를 반기며 안겨드는 아이들보다 엉망이 된 거실과 식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순간 짜증이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지만, 나의 표정과 말투는 곱지 않습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미안합니다.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


엄마,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올 때까지 저들끼리 안전하게 잘 있어 준 아이들,


전자레인지는 엉망이 되었지만, 엄마, 아빠 먹으라고 손수 만든 계란찜,


스스로 저녁까지 챙겨 먹고, 엄마, 아빠 먹으라고 깎아 놓은 과일,


내가 다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의 이런 협력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텐데, 당연하지 않을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감사함도 없었습니다.


SNS로 언제나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있지만, 가끔 아날로그 감성으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권의 양장 노트를 준비했습니다. 요셉, 아네스, 테레사에게 주는 나의 (교환) 편지 노트.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써 내려가며,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엄마 마음을 전하지 못하였음에 ‘미안하다’ 말하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손편지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 진학 문제로 아빠와의 갈등이 심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아빠에게 전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 편지를 읽으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던져버렸습니다.


아네스와 테레사도 내가 화나 있을 때나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가 나 있을 때는 그 편지조차 읽고 싶지 않아요. 그럴 때면 내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겹쳐져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족,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화가 나고 상처받더라도 그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미안하다고 표현하기 껄끄러울 때, 한참이 지났지만 미안했다고,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편지' 참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부부는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갈등이 생기기 전에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32p 박상미)     


우리 부모님은 참 치열하게도 싸우셨습니다. 다투고 싸우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다투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도대체 말이 안 통해!

내가 몇 번을 말해도 항상 너희(엄마, 아빠)는 똑같아!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시며 울분을 토하시는 부모님,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같은 문제로 다투시는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 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감정이 좀 괜찮다 싶으면 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가 또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어김없이 같은 문제로 다툼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안 싸우고 사나요? 싸워도 좋아요. 싸움 속에서도 배우고 좀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명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좀 더 사랑하며 살아가려면 나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남편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행동하기.

상대방의 언어로 대화하기.






『사랑한다는 말을 열 번 하는 것보다 그가 싫어하는 말 한 번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35p 박상미)     


순간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처세술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되도록 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면 우리 부모님은 좀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나에게 부모님의 모습이 보일 때..

내 감정대로 버럭 화를 내고, 또 내 감정대로 미안함, 죄책감, 부채감에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서방~ 미안해’하고 사과할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요셉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그래 알았다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사람이야?!’


요셉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요셉에게는 왜 그랬을까요?


점점 철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요셉과 아이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좋은 날은 좋고, 싫은 날은 싫고, 내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보태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독이 든 표정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경멸의 표정은 독이 든 말보다 상대의 가슴에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 잊지 마세요.』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37p 박상미)     


신경 쓰이는 미간에

스무 살, 어떤 표정을 지어도 어여쁜 꽃다운 나이일 때, 같이 근무하던 대리님이 했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면 얼굴에 인격이 보인다.’     


그래요. 어느 순간부터 거울 속 미간에 川 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보톡스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엄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해야 아이들이 제 말을 더 잘 들어줄 것이라는 착각,


화가 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표정으로 말하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라는 착각, 


다양한 착각 속에 지워지지 않는 미간에 川 자를 새겼습니다. 미간 川 자의 골이 깊어진 만큼 얼마나 독이 든 표정으로 가족들의 가슴에 수많은 川 자를 새겼을까요?


독이 든 표정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여쁘게 말하고 예쁜 표정을 짓는 것은 나와 가족 모두에게 득이 되는 행동일 것입니다.






『‘옛날 일 들추기’는 반칙입니다. 지금, 오늘 우리의 문제만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37p 박상미)     


내가 지금 화내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다.


나의 정당함과 그 문제로부터 나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옛날 일 들추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혼하고 아네스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시어머님이 암에 걸리셨습니다. 요셉은 어머님 병간호로 나와 아네스에게 많이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습니다.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기에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받기 위해 과거의 일을 소환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할 거야!!’라고 소리치는 요셉에게 ‘나 절대 잊을 수 없어. 벽에 똥칠할 때까지 할 거야.’라고 바락바락 소리쳤습니다.


그때는 서로가 서로의 상처가 너무 커서 서로의 아픔 마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좀 더 사랑하며 지내지만,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아파도 아프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설하고, 오늘 아네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현재만 가지고 말하지 않고 왜 자꾸 예전에 있었던 일을 같이 말해요? 예전에 있었던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때 몰랐던 거라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그 당시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그냥 넘어갔었을까요?


아니면 그때는 내 마음을 잘 몰라 상처받은 마음을 다 전하지 못했었던 걸까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면 두고두고 마음속에 간직하기보다는 좀 더 건강한 나와 너를 위해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일어났을 때는 지금-여기에서의 문제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배울 것이 많아요. 지금 문제로 배우고, 과거의 일은 지금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난 뒤 다시 시간을 어서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전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편지를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고민할까요? 회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잘 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50p 박상미)     


적당히 친한 사람,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무심코 한 한마디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지인이 나에게 무심코 한 한마디가 더 상처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남긴 한마디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나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박혀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가슴속에 박힌 상처와 사랑은 특별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말 한마디, 사소한 눈빛 하나.. 정말 사소한 것들입니다.


나와 생각을 나누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섭섭하고 속상합니다.


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상처받을까요?! 


나는 나를 모르는 남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치 있는 인간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온전히 이해받고 싶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무치게 사랑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 가족과 잘 지내고 싶은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인생에서 아주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내 딸이다.’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65p 박상미)


부모로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좀 더 현명할 수는 없었을까?

엄마이면서 어떻게 나를 지켜주지 않았을까?

왜 엄마이면서 본인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걸까?


엄마는 엄마이면서..라는 문장을 대신해서 엄마이기 이전에 엄마도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바라보니 연민의 감정이 생겨납니다. 서글퍼요.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녹아납니다.


너무 오랜 세월을 부모도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잊고 살아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아프게 한 행동을 ‘부모도 인간이다.’라는 전제로 모두 정당화시키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주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 치유의 시작은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것, 내 마음을 먼저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행동으로 자식을 가르치는데, 지구 상에 한 생명체만 입으로 자녀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91p 박상미)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 봤자 내가 경험하지 않으면 스스로 깨닫기가 힘들어요. 그걸 알면서도 수없이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싯다르타」는 말합니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을지라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경험의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책 읽기를 바란다면 독서하는 뒷모습을,

공부하기를 바란다면 공부하는 뒷모습을,

현명하기를 바란다면 현명한 뒷모습을,

지혜롭기를 바란다면 지혜로운 뒷모습을,


무엇이 되었던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은 나의 ‘과제’입니다. 아이에게 그 무엇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이란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다. 불가능이란 그것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일이다.』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99p 박상미)     


많은 세월을 마음이 왜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픈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더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 내가 더 이상 멈추기를 바란다면, 이제 그만 아픔은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파하는 그대에게 그 무엇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가다의 「싯다르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