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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미상 Mar 28. 2020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봄이 되어 가지 끝에 간지럽게 솟아난 꽃들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사람쯤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봄마다 꽃처럼 찾아오는 곱고 아릿한 기억이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낳으신 7남매   꽁지, 막내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막내딸의  손주였던 나는, 아마 당신께 평생을 '예쁜  새끼의 새끼'였을 것이다.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자주 뵙지 못했기도 했거니와, 어마어마한 세월의 차이만큼이나 외할머니와 어린 나 사이에는 공통의 관심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툴고 어색한 대화 대신에 나는 슬그머니 외할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애정의 교류를 꾀하곤 했었다. 어느 봄, 외가댁 마당에 나란히 앉아 봄 햇살에 꾸벅꾸벅 조는 병아리 역할을 나누어했던 날, 여느 때처럼 아무 대화도 없었고 어떤 기척도 없었지만 그 어떤 길고 깊은 대화보다도 그 시간은 서로를 굳게 엮은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끝없는 햇살에 나른해져 잠이 밀려올 때쯤, 외할머니는 꿈결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인 듯 아닌 듯 물어오셨다.


    "내가 이 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순식간에 잠을 쫓는 울컥함을 힘껏 꼬집기라도 하듯이 괜스레 툴툴대며 답했다.


    "당연하지. 봄만 보게? 나 커서 시집가는 것도 보고 증손주도 봐야지 할머니."


할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그러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봄햇살만큼이나 보드랍고 따뜻한 촉감인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좀 더 자라 아직 교복을 입던 시절, 흔히들 그렇듯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시기, 엄마는 거친 생계 전선에서 홀로 전투 중인 여전사였고 나는 가장 예민한 사춘기의 폭풍우를 홀로 지나던 여학생이었다. 우리에겐 감정적 접점이 전혀 없었다. 안전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 시절에 하늘이 도우사, 그때엔 외할머니도 아직 내 세계에 존재해 계셨다.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눈물과 함께 꾹꾹 욱여넣고 버티다 엄마 몰래 외할머니가 계신 지방 요양원까지 버스를 수차례 갈아타며 달려 내려가곤 했다. 먼 길이었고 긴 시간이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꼭 외할머니여야만 했다. 엄마를 세상에 내어놓은 할머니 외에는 당최 이 세계 그 누구에게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기도 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긴 설움을 토해내고 나면 할머니는 내 손을 쥐고 등을 따스히 다독이셨다.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것과 다름없는 다독임인데, 할머니의 다독임은 그 무게가 달랐다. 그리고 늘 해주시던 그 말씀들.


    "그래도 엄마 이해해줘. 엄마 이해해 줄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주신 적이 없었다. 빈 말로라도 엉엉 우는 손녀를 달래기 위해 그래, 엄마가 너무 했네, 엄마가 나빴네, 라는 말씀을 하실 법도 한데 그저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엄마가 너무 속상해서 그래, 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그런데 막상 그게 또, 서운하기보다는 묘하게 큰 위로가 됐다. 다른 말도 아닌 꼭 그 말을 들으러 달려간 것이기도 했다는 건 조금 더 자란 나중에야 알았다. 외할머니의 말씀이 빈 말이 아니라는 걸 믿어서였기도 했지만, 엄마가 정말로 나빠서가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정말로 사랑하는 게 맞는데 지금이라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그럴 뿐이라는 거라는 걸 이해할 힘이 할머니의 그 말씀들로 조금씩 길러졌던 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이 마지막 인지도 모르고 뵈었던 날, 할머니는 처음 들어보는 말씀을 하나 덧붙이셨다. 그 말은 귓가에 붙어 평생 떨어지지 않는 말이 되어 내게 남았다.


    "내 새끼 잘 부탁한다, 아가."


외할머니는 나를 보시면서 내내 엄마를 보고 계셨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렇지, 엄마도 누군가의 아기였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에겐 평생 엄마이지만, 동시에 엄마는 외할머니의 영원한 아기이기도 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왜 그리 쉽게 잊고 살았을까. 외할머니가 자신의 새끼를 부탁 하마 하시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순간 마음에 퍼지던 아주 작은 서운함과 묵직한 자부심과 거대한 안도감은 그 어떤 말로도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쩌면 외할머니에게는 나보다 엄마가 쬐끔 더 소중할 수도 있겠다는 서운함, 자신의 목숨같이 소중한 새끼를 부탁하실 만큼 내가 믿음직했을 거라는 자부심,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쩌면 나보다 쬐끔 더 엄마를 사랑하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안도감. 우리는 탯줄보다 강력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최근 아이를 데리고 한국의 친정으로 잠시 들어왔다. 무엇이든 오냐오냐 해주는 외할머니가 온전히 자기편인 것을 잘 아는 아이는, 외할머니를 친구 같은 존재로 생각했는지 어느 날부턴가 어깨를 툭툭 때리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보다 못한 친구는 아이에게 "야, 우리 엄마야, 때리지 마!"라고 혼을 냈다고 한다. 헌데 그 순간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는 거다.


    "엄마하테... 엄마가 이떠?"


아이의 입장에선 당연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슈였을 거다. 세상 모든 아기들에게 엄마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했던 유일한 세계이자, 둘도 없는 완전한 존재이니까. 내리사랑은 위대하지만, 중요한 하나의 사실을 쉽게 잊고 살게 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있게 한 그 엄마들도, 누군가에겐 평생 동안 더없이 소중하고 소중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 존재는 아무도 없다. 따지고 보면 역설적으로 아이가 엄마라는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이 사실에 가깝지 않은가.


외할머니의 마지막 당부 이후로, 나는 엄마를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도 서툴 수 있고, 엄마도 틀릴 수 있고, 엄마도 힘들 수 있고, 엄마도 그럴 수 있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권리와 허용이 외할머니의 아이인 엄마에게도 당연히, 당연히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마법처럼 엄마와 나 사이는 눈 녹는 봄 마냥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모두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아이들이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기에.


이번 봄, 한 순간이라도 작정하고 엄마를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꽃 같은 아이로 들여다본다면, 아마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던 성장을 또 한 번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발견을 해낸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이 글은 PINKWONDER PW매거진 ver.4 'God couldn't be everywhere, therefore he made mothers'호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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