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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이 Jul 01. 2020

감정의 화려한 불꽃놀이

<마미> (Mommy, 2014), 자비에 돌란 감독



행동문제가 있는 자녀의 부모가 경제, 신체, 심리적인 위험에 처할 경우 별다른 법적 절차 없이 자녀를 공공병원에 위탁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되는 캐나다. ADHD를 앓고 있는 소년 스티브(안토니 올리버 피론)는 방화 범죄를 일으켜 보호시설에서 쫓겨나게 되고, 엄마 디안(안느 도발)은 아들을 집으로 데려온다.  





<마미>는 당찬 엄마 디안,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아들 스티브, 옆집 이웃인 카일라. 세 인물을 이야기로 진행된다. 먼저 영화의 제목이자 중심인 디안,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십 개의 열쇠를 짤랑거리며 요란하게 서명하는 오프닝 씬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디안은 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그녀는 포기하거나 위축되기보다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인물이다. 스티브를 떠나보낸 뒤에도 카일라는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해 다시 마을을 떠나는 편을 택하는 반면, 디안은 이를 악물고 얼굴을 때려서라도 눈물을 참으며 다시 나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난 내 소임을 다했고 그랬기에 나에겐 희망이 있어. 그래서 나는 승자야. 지금껏 늘 그랬어.” 는 그녀의 삶의 방향을 나타내는 대사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자라난 스티브 역시 힘든 상황에 쉽게 좌절하지 않고, 철없는 말괄량이 같아 보이지만 때로는 오히려 어른스러운 말로 엄마를 달래곤 한다.


이러한 모자의 돌파력, 꺾이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모습은 그들의 주변 인물이던 카일라(수잔 클레망)가 그들에게 끌릴 수밖에 없던 불가항력으로 작용한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춤을 추며 즐기는 디안 모자의 자유로운 에너지는 언어장애라는 난관과 권위적인 남편에게 파묻힌 채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던 카일라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디안 모자 덕분에 그녀는 그간 목에 걸려 뱉을 수 없던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막바지에는 고함을 지른다. 반대로 디안과 스티브 또한 카일라의 다정하고 선한 내면에 마음을 위로받고 그들에게 없던 안정감을 얻는다. 그렇게 각자의 결핍을 앓고 있던 세 사람은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통해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White flag>, <Experience> 등 감각적인 음악들로 점철된 영화라 가장 좋았던 곡 하나를 뽑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대부분의 이들이 오아시스의 <Wonderwall> 씬을 최고로 꼽지 않을까 싶다. 스티브의 마음에 비례하게 화면비가 변화하는 순간은 과한 연출적 치장이라는 비판도 불러오긴 했으나 서사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시그니처 씬으로 관객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반복해서 관람하면서 개인적으로 다른 씬에 조금 더 눈길이 갔다.  



https://youtu.be/3bAAZiDgPxA



식사 후 와인을 나눠 마시며 처음으로 깊은 얘기를 나누는 디안과 카일라. “스티브와 함께라면 따분할 틈이 없지.”라는 직전의 대사를 마치 증명하기라도 하듯 매니큐어를 칠한 손으로 믹스테이프를 틀며 도발적인 자태의 스티브가 등장한다. 디안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도 스티브의 리듬에 몸을 맡기기 시작하고, 모자는 어색해하는 카일라에게도 함께 즐길 것을 권한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셀린 디온의 <On ne change pas>이다.  


인상적인 것은 카일라의 반응이다.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모습에도 웃지 않고, 단순히 낯선 분위기에 쑥스러워하는 사람 치고는 꽤나 진지하다. 어딘가 긴장한 것처럼도 보이고, 마치 어떠한 결심이 스친 듯한 그녀의 얼굴은 이 순간이 단순히 흘러가는 장면이 아닌 중요한 국면임을 드러낸다. '내가 이래도 될까' 싶은 생각과 이질감에 주저하는 동시에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을 느끼는 카일라와, 그런 그녀를 다 안다는 듯 웃던 디안 모자의 미소는 관객의 가슴을 붕 뜨게 만든다. 함께 춤을 추며 두 모자는 능숙하고 다정하게 그녀의 내면을 밖으로 끌어내고 결국 카일라는 그들과 완전하게 어우러진다. 모두 조금씩 부족한 세 사람이 모여 작지만 온전한 행복을 이루어 내던 순간, 거기에 얹어지는 셀린 디온의 명곡은 그 따뜻한 융화에 감동을 더한다.  




세상에 좀 더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는 사회에서는 얻기 어려운,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대가 없는 헌신에 대한 답을 선사한다. 영화는 말한다. 구원과 사랑은 별개이고, 후자가 백 배는 더 어려운 일이자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구원을 주지 못한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색맹에게 흑과 백으로 세상이 나뉘듯 스티브에게 세상은 디안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뉜다. 그렇기에 결말부가 스티브의 운명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해도 중요하지 않다. 끈을 풀어주던 병원 직원의 “그게 사람의 본성이니까.”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힘차게 복도를 달려 나가는 스티브, 그는 그저 디안이 있는 세상으로 떠났을 뿐이다. 만약 이번에 실패한다 해도 그는 몇 번이든 엄마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의 본성이므로.







‘사운드 오르가즘’이라는 수식어를 자랑하는 만큼 음악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와일드 카드이자 비장의 무기이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곡에 대한 친숙함이 영화의 몰입감을 해칠까 우려하여 유명한 음악의 삽입을 꺼리는 이들과는 달리 그가 <마미>에서 내놓은 패는 영국의 여섯 집 중 한 집은 그녀의 앨범을 갖고 있다는 속설의 다이도, 세계적인 밴드 오아시스, 말하기도 입 아플 셀린 디온의 대표곡이었다. 앞선 우려를 돌파한 그의 해결책은 바로 음악을 영화의 내적 장치로 심어 당위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음악을 단순히 몰입을 돕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믹스테이프에 수록되어 있는 명곡들이라는 장치를 심어놓음으로써 삽입곡은 곡만의 무게감을 갖게 되고, 스티브의 시그니처인 커다란 헤드셋이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서 음악이 시작되는 등의 설정으로 실제 영화 속 주인공이 듣고 있는 음악을 함께 듣는 듯한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함으로써 돌란은 음악을 그 장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또한 극 속 인물의 상황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가사를 강조함으로써 단순히 피상적인 장치일 때에 느껴질 수 있을 이질감을 상쇄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돌란의 영화가 음악을 위해 장면이 존재한다는 평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그에 공감한다. 음악이 영화의 일부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흐르기 때문에 관객은 먼 훗날 영화관 밖에서 <Colorblind>를 듣게 된다고 해도 관람 이전의 그것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마 전주가 흐르기 시작할 때부터 당신의 머릿속에는 스티브가 등장할 테다.  같은 맥락에서 엔딩크레딧 곡으로 라나 델 레이의 <Born to ‘DIE’>를 삽입한 것은 촘촘하게 음악을 설계한 영화라는 인식을 위한 마지막 굳히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전곡을 통째로 삽입해 버리는 음악, 과감하게 휙휙 도는 카메라 워크 등 <마미>는 마치 굵은 붓으로 거침없이 북북 그은 유화 같다.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는 교통사고로 막을 열어 엔딩 크레딧 곡의 강렬한 현악기 선율로 막을 내리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강하게 시작해 강하게 끝이 난다. 이러한 젊은 감독의 패기에 대해 물론 평이 갈릴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면에서 과하다’는 혹평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높이 사고 싶다. 돌란은 관객이 영화 속으로 빨려들도록 거리감을 없애는 측면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낯선 인물에게 감정을 쏟아가며 완벽하게 동화되는 영화적 체험은 잘 만든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관객으로서 영화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큰 행운이다. 노키즈의 삶을 추구하는 비혼주의자 여성에게 아들에 대한 모성애라는 주제로 눈물을 쏟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현재의 자의식 과잉에 포커스를 맞추고 깎아내리기보다는 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높게 사고 싶은 마음이다.



19.02.11 관람  

20.05.31 재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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