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La La Land, 2016), 데미안 셔젤 감독
언젠가 한 번쯤은 세상에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든 조명이 암전 되고 주위의 사물도 사람도 다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그 신비한 때는 <라라랜드>에도 등장한다. 길을 걷다 우연히 듣게 된 연주에 끌려 운명적으로 그에게 반하던 순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참가했던 오디션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펼쳐 보이던 순간이 그러하다. 자신을 그저 수많은 사람 속의 하나라 여기던 미아(엠마 스톤)를 스포트라이트 아래 홀로 선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녀의 사랑과 오랜 꿈인 연기에 빠져버린 순간들이었다. 남녀의 로맨스와 꿈에 대한 열정을 화려하게 섞어낸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에 빠진 이들, 사랑하는 꿈을 꾸는 이들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결과만 논했을 때 두 사람의 꿈은 이루어진 반면 로맨스는 끝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사랑의 무게를 덜었거나 꿈에 비중을 더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it’ 와 나란히 놓여있던 스피커와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손짓. 현실의 탈출구라 생각했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궁극적으로는 미아의 현실 자체를 변모시킨, 날개를 달아주고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 바로 그 사람이었다. 성공에 직접적인 발돋움이었던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도운 점에서도 물론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선물했다. ‘방 안에 앉아 세상을 다 보는 것 같다’는 칭찬이자 격려는 연기하는 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지 않을까. 그렇게 사소하지만 다정한 말 하나하나로 그녀를 단단하게 굳히고 끝내 한계 밖으로 끌어냈던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미아 역시 현실에 흔들리던 자신에게 눈을 반짝이며 재즈 클럽을 열겠다는 꿈을 보이던 세바스찬을 바라보며 그가 바로 자신이 기다리던 이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바스찬조차 정작 꿈이 이뤄지던 때에는 미아의 곁에 없었고, 다져진 꿈을 이루어 낸 것은 결국 그녀 혼자였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그 누군가는 당신이 꿈꿔왔던 길을 가도록 이끌지만, 결국 그것을 이루어내는 여정은 당신 혼자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라라랜드>를 제작했다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어느 하나 과하다는 느낌 없이 두 사람의 사랑과 열정의 산뜻한 균형이 가능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꿈이자, 꿈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랑임을 보여주며 영화는 어느 한쪽에 가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은 두 사람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웃을 수 없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울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 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사랑과 꿈의 공통점은 바래지기 쉽다는 것이다. 러닝타임 내내 알록달록한 원색을 고집하던 미아의 드레스가 결말부에 검정으로 물들었듯, 실패해 볼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에서 등을 떠밀리다 보면 반짝이던 감정은 그 색을 잃기가 쉽다. 그러한 의미에서 <라라랜드>는 상기의 영화다. 놓치는 줄도 모르는 채 놓쳤던, 혹은 어쩔 수 없이 놓아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며 관객은 진한 씁쓸함을 만끽하고, 영화의 피날레에서 마치 '이거면 됐다'라고 말하는 듯한 세바스찬의 끄덕임에 안타까움으로 함께 입술을 깨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