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i Oct 23. 2020

잘 지내고 있나요.

나를 떠난 사람과 내가 떠난 사람에게.

문득 지난 인연의 안부가 궁금할 때가 있다. 보통 가을이나 봄에 그렇다. 지난 인연이란, 꼭 연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떼서 전하고 싶었던 모든 사람들이다. 이런 안부에 대한 궁금증은 상대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던지와는 관계없이, 그냥 원래 그래야 하는 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닷없이 머릿속에 풍선처럼 떠오른다.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작년 말, 세상을 떠난 젊은 여가수 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후 한참을 기사를 찾아보고, sns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놀랐고, 먹먹했고, 궁금했다. 예쁜 외모와 대중의 사랑, 그리고 재력까지 갖춘 사람들이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무엇이 그들을 끝까지 내몰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일기와 이후 가족들의 소식이 기사로, 영상으로 전해지는 걸 보며 나도 함께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의 부재가, 그러니까 생존 여부와는 관계없이 휴식처로서 부재하는 엄마의 존재가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 살 때 헤어졌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엄마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붙었다. 엄마는 우리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일이 잘 되어 그에 상응하는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엄마와 함께 살면서 엄마가 운영하는 업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월급은 엄마 통장과 연결된 카드로 받았다.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습관을 고쳐주려는 의도라고 했다. 장학금을 놓치고 울고 있을 때 다음 등록금은 엄마가 해결해줄 테니 걱정 말라며 위로해주던 엄마는 등록금을 납부해야 할 때가 되니 입장을 바꿨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사건건 문제 삼아 결국 내 입에서 '나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만들 거면 그냥 지원해주지 말라.'는 소리가 나왔다. 아니 나오게 만들었다. 결국 남은 학기는 대출과 장학금으로 해결했고,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벌어 충당해가며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피는 당긴다고 했던가. 인정 욕구 때문인지 엄마를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씩 보내주는 용돈이 고마웠다. 돈도 돈이지만 용돈을 받을 때만큼은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의 보호를 받는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게 더 고마웠다. 이후 결혼을 하고 남편과 살면서 가족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걸 받아보고 나니 나와 엄마의 관계가 아주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길을 끊었다.



아직도 엄마는 내게 다른 안식처가 생겨서 당신을 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말이 맞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바스러지는 모래 위에 수도 없이 집을 짓고, 맥없이 허물어지는  보며 힘들어하다 또다시 무너진 잔재를 모아 주섬주섬 집을 짓는 과정을 반복하 내게,  단단한 대지 위에 튼튼한 집을 지어놓고 어서 들어와 쉬라고 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손짓하는 사람이 나타난건데. 내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나. 내가 열심히 지었던 모래집은 엄마의  한마디로 와르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새로 생긴 튼튼한 집에 간다고 해도  바스러진 마음을 가지고 살면 튼튼한  마저 나로 인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데. 어렵게 찾은  행복마저 망가질  같은데 말이다.






'이럴 거면 나 왜 낳았어. 니땜에 나 이따구야.'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 그립고 느끼고 싶다.'

여가수의 일기장에 이 상반된 내용이 함께 적혀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려 참 많이 울었다. 끊임없이 상반되며 반복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마음속 정의가 얼마나 그녀를 아프게 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신이 모든 것을 보살펴줄 수 없어 세상에 내린 존재가 엄마'라는 문장도 참 싫어한다. 다들 그런 존재가 하나씩 있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돌려도 달려가 품에 안기면 꼭 안아준다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데 왜 나만 해당 사항이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비참함이 올라온다. 그러다가도 나를 그렇게 품어 키우셨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격앙된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 어렴풋이 짐작한다. 아 이게 남들이 엄마를 떠올릴 때 드는 마음이겠구나. 하고.




이렇게 하늘이 유독 높고 파란 날,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여러 지난 인연들이 떠오른다. 오늘은 유독 가장 아린 사람이 떠올라 몇 자 적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 불편러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