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필요 없는 조종사

재능보다 오래 버티는 힘에 대하여

by isol

아주 오래된 조종사가 말했다.


“이 분야는 재능이 없으면 조종사가 되지 못해요.
잘하지 못하는 걸 계속 붙잡고 있는 게 얼마나 고역입니까.
그런 사람은 재분류해서 다른 길로 가게 해줄 겁니다.
우리는 단지, 그 평가를 할 뿐이에요.”
익숙한 말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수십 년을 비행하다가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교안을 남기는,
어쩌면 꽤 여유로운 조종사의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한다.



재분류가 두렵다는 건,
아직 나는 스스로를 ‘조종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반응한다는 건, 그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거니까.




나는 적성평가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종종 이야기했다.
다만 그 말에는 전제가 있다.



돈이 없을 때, 적성은 더 중요한 것이 된다.



돈이 충분하다면,
시간을 오래 들여 천천히 감을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임무와 시간은 늘 제한되어 있고,
느린 성장은 그 시스템 안에서 허락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학생을 돈으로만 보는 교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조종사,
학생이 조종하는 것이 두려워
조종간을 좀처럼 내주지 않는 선배 조종사.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듯,
조종사 세계에도 다양한 “나쁜 조종사”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가 좋은 조종사일 수도 있다.




재능, 위치, 상황에 따라
평가는 언제든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부딪히고, 버티고, 다시 일어서며
각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