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대로 가겠습니다.
버튼 한 번에 운명이 결정된다. 5개월 전부터 이것을 통제하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가장 먼저 나서서 행동했고, 밤을 새워가며 희생했다. 그 행동의 원인은 내 꿈에 있었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왔다.
1등만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에, 나는 누구보다 1등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력에서도 운에서도 나는 주변 경쟁자들을 앞서지 못했다. 1등을 하고 싶은 중간이 되어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만 나섰다. 그리고 결국, 내 꿈을 운명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틀간 잠에 들지 못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에 대한 결과였다. 깊게 잠에 들지 못해 뒤척였고, 결국 내 불안은 꿈으로 나타났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꿈. 꿈에서 깨어 당일을 맞았고,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며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모두가 긴장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나오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모습에 집중한다. 10년의 세월을 거쳐 다시 돌아온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될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되면 어떤 모습을 할지 궁금해했다. 인간은 모두 남의 불행을 은근히도 바라니까. 그래서 간절함을 보여주지 않는 전략이 맞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감추고 속이는 것이 더 피곤함을 유발할 거라는 내 판단에 대한 결과를 맞이할 뿐이다.
조종복, 항공점퍼, 항공셔츠로 나를 감싸며 누구보다도 나를 조종사라는 정체성으로 만들었던 시간들. 조종사가 대체 뭐길래 그렇게 집착하고 원하고 바란건지 나 자신은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 그것이 나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같았으니까. 무너졌던 한 사람이 그리는 조종사는 이 큰 조직에서 큰 비행기를 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정을 바꿀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이제 곧 버튼 한 번에 내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50%의 확률. 확인하지 못할 것 같던 내 눈은 그렇지도 않았다. 모두가 응시하는 화면을 향한 눈이 내 이름을 찾았고 나는 그 결과를 보고 불길했던 예감이 맞았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그리고 난 이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수백 번 다짐했던 마음과 다른 내 실망스러운 얼굴을 드러내었다.
꿈은 현실이 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분명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을 떠올려야 한다. 그는 많고 많은 조종사를 왜 내 생활기록부에 하필 헬기 조종사를 적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3년 내내 내 꿈은 그렇게 기록되었고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말했던 조종사라는 꿈을 위해 이곳까지 왔지만 결국 적힌 꿈이 현실로 되어가고 있나 보다.
왜 웃지 못했을까. 다시 비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했고, 모든 결과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내가 결과를 보고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서야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동안 간절하게 외쳤던 내 꿈, 주변인들에게 보였던 내 집착. 욕심을 부려 불러왔던 시기와 질투. 나는 벌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내 원래 꿈을 받은 것일까? 큰 비행기를 다시 타보겠다는, 환상적인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집착은 이제 더는 부릴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를 때는 그것을 반성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큰 아픔이 주어졌을 때, 그래서 약해졌을 때에만 자신을 돌아본다. 사무실로 돌아와 비행자료를 찾아 같은 것을 배정받은 동료들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받은 결과에 대해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왜 저에게 이런 결과를 주셨습니까?’
‘증명해 봐라.’
‘두려움에 떨면서 6년 전처럼 도망갈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해낼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네가 진짜 조종사라는 것을 증명해 봐라. 그럼 인정해 줄게.’
조종사.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되찾겠다는 꿈. 조종사. 어쩌면, 그 꿈은 단지 나를 지키겠다는 자기애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꿈은 고통 속에 빠진 삶에서 아주 약간의 고통만 줄여주는 처방전일 뿐. 고통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한다. 홀로 고독히 걸어가는 외로움.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움. 큰 고통에 비해 너무나 잠시 찾아오는 성취감, 기쁨, 행복. 그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꿈.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대응방안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대로 나는 다시 내 미래를 좀 더 뚜렷하게 그려놓는다. 비록 결과를 받고 웃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나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조종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