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안고도 하늘로 향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는 알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를 아는 만큼 그는 나를 알고 있다. 아니 꿰뚫고 있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나를 비행의 세계로 이끈 이후 나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게끔 나는 앞을 향하고 있다.
어둠에 잠기면, 내가 나이기를 포기할 때가 있다. 비행장에 있지 않으면 나로서 존재할 수 없을까 봐 다른 취미도 붙여 보았지만 결국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미 말하고 있다. 아니 외치고 있다. 비행을 하고 싶은 거라고.
수많은 적들을 만들어 냈다. 올라가려면 마주해야 하는 적들이었을까? 아니면,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동료였을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군과 싸우지 않고 앞을 향할 수 있는지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나도 그도 비행기에 앉아 엔진에 시동을 걸고 활주로에 나가는 순간, 그럴 수 없다.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도 겨우겨우 하늘로 올라 비행을 하고야 만다.
그렇게 오른 하늘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6개월 만의 온 카톡을 보면 알 수 있다.
"교관님 잘 지내셨죠? 내일 예약을 하려고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날 아버님께 보낸 비행 영상에는 아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나와있다.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의 꿈은 엄청난 비용을 마주하더라도 이루어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나는 그것을 이용하여 나의 몫을 헤 내었던 날들을 돌아본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도록 나는 나를 그렇게 보여주었다.
그는 수많은 상처를 안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나처럼 비행을 하고 싶어서, 비행만을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그로서 존재하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 목소리는 나의 내면에서도 들리는 목소리이기에 나는 기꺼이 그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해내어 가며 나를 증명해 나간다.
수많은 하늘 꿈들은 조용히 숨을 내쉰다. 거세게 내뱉는 내 숨과는 다르게 그들은 그저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바라본다. 자신보다 멀리 나는지, 높게 나는지, 떨어지지는 않는지. 나와 그는 여전히 거세게 내뱉는다. 힘차게 날아올랐기에, 높게 날고 있기에 보충이 필요한 엔진 출력처럼 그렇게 힘차게 내뱉는다.
그의 숨은 여전히 거칠지만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있기에 거칠 수 있다. 그의 열정은 꺼지지 않으며,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다. 꿈을 꾸고 있다. 꿈을 주고 있다. 나만큼의 사람 아니 나보다 더 한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