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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진 May 17. 2021

투전판의 광기

공허하게 울리는 노동의 가치


 당장 월세 돈십 만원이 없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 연고도 없이 쪽방에서 외로이 하루하루를 아내다가 사회에서 증발하는 사람, 달랑 500만 원만 들고선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보호 종료 아동들의 이야기 따위는 뉴스 기사에나 두어 줄 적히면 다행인 일이지만, 한몫 잡아보겠다며 투전판에 뛰어들다가 재산을 탕진한 2030 청년들을 두고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이라며 연신 난리다.  한술 더 떠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이 틈을 타 환심을 사 볼 수는 없을까 싶어, 외면해서는 안 된다느니 제도권에 편입시키겠다느니 하며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등 아주 우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혹자는 코인을 두고 이제 이 사회에 몇 남지 않은, 소위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어떤 배경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인지는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아닌 게 맞는 게 되는 것은 아니다.

 코인 투기의 본질은 결국 내가 싸게 산 걸, 어떤 바보가 훨씬 비싸게 사 주길 바라는 것이다. 여기엔 그 어떤 합리성도, 이성도 없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둥 4차 산업이 어떻다는 둥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의 통장에 있던 돈이 별 이유 없이 내 통장으로 쏙 하고 들어오길 바라는 심산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한국에서 집 살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확실히 근로소득만으로는 미래가 없는 듯하고, 그다지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인지라 범인凡人의 입장에서는 뭔가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절박함이 정당화의 수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답이 없으니 별 수 없다는 논리면 굳이 코인이 아니라도 딴 건 못할 게 뭐 있나? 만인이 측은함을 느낄 만한 사연이 있다면 도박, 횡령, 사기, 절도 따위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텐가?


 그야말로 케인즈의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의 전형이다. 코인판만큼 완벽히 들어맞는 제로섬 게임이자 폰지 사기가 또 없을 것이다. 누군가 100만 원을 벌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리고 정확히 100만 원을 잃어야 한다. 거래 과정에서 아무런 가치 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500원에 들어간 코인이 어느 날 100원이 되었다면, 당신에게 500원에 그 코인을 팔았던 누군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이다.


 로또 당첨자에게 거액의 당첨금을 지급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 복권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첨되지 못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허무하게 돈을 잃은 것이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임을 다 알고 있는, 그렇게 합의가 되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거나, 꽝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따위의 말도 당연히 하지 않는다. 사기라도 치지 않는 이상에야, 내 차례가 아니었던 계모임의 곗돈을 어떻게 차지하겠는가? 그런데, 코인 투기꾼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코인 옹호론자들이 자랑스레(?) 여기는 코인의 특장점 중 하나가 바로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다. 국가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화폐라는 점에서 여러 가능성을 점치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코인이 정말 탈중앙화인가? 외부적인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양 굴지만, 실상은 정부나 중앙 거래소의 손짓 한 번만으로도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게 현실이다.

 이더리움 같은 경우는 채굴 난이도를 개발자가 직접 급격히 조정하는 시기가 언제일 것인지 상당 기간 오르내린 화두데, 이는 결국 정부가 아닐 뿐이지 코인 역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직간접적으로 소속 및 통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른 코인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 테슬라, 페이팔 등 일련의 사례들에서 이어지는 일론 머스크의 '작전'에 실컷 농락당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마땅히 제재하지 못하고 눈 뜨고 코 베이고 있는 형국이다. 런 상황이니 코드 몇 줄 수정해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대다수의 '잡코인'들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현재 코인판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인지라, 주식시장이었으면 빼도 박도 못할 경제범죄들이 대놓고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인 투자자들은 그냥 욕을 하거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그런 와중에도 자신만은 이런 혼란을 잘 파고들어서 이득을 볼 수 있다면서 하루하루를 벼르고 있다. 이게 투전판이 아면 뭔가? 실물이 오가는 도판도 코인보다는 규칙적일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코인이 무가치하고 모순적인 존재일 뿐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비난에는 발끈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그 '가치 있는' 화폐가 손에 들어오면 그걸 국가와 세계의 통제를 받는 법정화폐로 전환하기 바쁘다는 점이다. 결국 코인 그 자체로는 실체도 가치도 없는, 봉이 김선달 대동강물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셈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코인의 문제는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흐름을 조장하고 가속화한다는 데에 있다. 반도체 가격 폭등, 환경오염, 탈세, 범죄 수익 은닉 및 자원 낭비로 인한 연쇄적인 해악 등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이 '패러다임'의 문제다. 이를 두고 역시 코인 옹호론자들은 '언제까지 노동을 신성시하며 살 거냐' 라며, 정직하게 월급 받으며 사는 사람들을 두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아둔한 부류로 몰아가 조롱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노동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지면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코인 투기꾼들을 포함한, 우리네 일반 대중들이. 그렇지 않은가?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인간의 노동이 설 자리가 없어져서 코인  일확천금 돈놀이 위가 아니면 제대로 돈을 벌 수 없는 세상이 오면 그 충격을 자본가들이 받을 것 같은가? 그들은 오히려 새로운 사다리를 타고 초자본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존의 문제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판국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아니면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자신은 그런 충격견뎌낼 수 있을 새 시대의 자본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것인가?

 

 물론 근로소득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건전한 자본소득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창출해야 한다는 취지라면 백번 옳은 말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대 주식 열풍의 시대에 접어들었지 않가? 그러나 근로소득은 이제 의미가 없고, 자본소득만이 미래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게 문제다. 좋으나 싫으나, 현실적으로 절대다수의 경우 일정 수준의 자본을 축적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노동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일하는 것은 미래 없고 미한 짓이라는 패러다임이 고착화되면, 시대의 격변을 충분히 대비하기도 전에 무너지게 될 위험이 다. 그래서 이러한 회의론이 불거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 - 그러니까 작금의 지나치게 낮은 노동력의 대가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문제의식을 가지는 편이 좀 더 바람직하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히는 게 아닌 이상, 사회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직하게 일만 해서는 생계유지 이상의 것을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사회적 병폐와 개인적 파멸을 가속시키는 투기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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