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펠햄 123'
여느 날과 다름 없는 뉴욕의 한낮. 평범한 뉴욕 지하철 플랫폼의 모습을, 감각적이고도 급박하게 편집한 오프닝이 지나가면 ‘펠햄 123호’ 지하철이 갑자기 제 가던 길을 멈춰버린다. 뉴욕 한복판, 그 땅밑을 가로지르는 지하 선로 어느 곳에 ‘펠햄 123호’ 중 객차 하나가 ‘라이더(존 트라볼타)’ 일당에 의해 덩그러니 고립된 것이다.
라이더는 해당 객차 안에 있던 19명 시민들의 목숨값으로 뉴욕시에 천만달러를 요구하고 나서고 우연히 라이더와 통신을 주고받게 된 지하철 배차원 ‘가버(덴젤 워싱턴)’는 협상전문가를 제치고 졸지에 한낮의 뉴욕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하철 테러 사건을 총지휘하게 된다.
덴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 이 두 배우의 조합에 토니 스캇 감독이 뭉쳐 만들어진 영화 ‘펠햄 123’은 뉴욕을 배경으로 테러를 소재로 한 흔하디 흔한 액션 영화다. 테러 수단이 지하철 객차로 선택된 것이 조금 색다를 뿐 인질이 납치되고 협상을 벌이고 결국 범인이 잡혀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 구조도 이전의 비슷한 테러 영화들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펠햄 123’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바로 테러 상황을 대하는 등장 인물들의 반응 때문이다.
9·11의 상흔이 너무 커서 아직도 뉴욕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모양인지, 사상 최악의 테러를 겪었고 언젠가 또 겪을 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뉴욕 시민들은 테러를 가장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 두려움을 그들도 모르게 일상 속에서 내면화 시킨 듯하다. 그러니까 범인과 협상을 벌이는 주인공을 비롯해서 경찰과 공무원들, 심지어 인질들까지도 이 테러를 대하는 태도가 놀랍도록 매우 일상적이다.
인질들 그 누구도 흥분을 하거나 울부짖거나 혹은 어설프게 영웅 행세를 하지 않고 약간은 체념한 듯 나름대로 담담하게 상황에 대처한다. 테러 상황을 무사히 마무리 지어야 할 주인공이나 경찰들 역시 뭔가 엄청난 불행을 만난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차분하고 어떨 때는 무덤덤하며, 혹은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그래서 두 거물급 배우와 액션 영화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든다는 감독이 만나서 완성한 영화 치고는 액션의 현란함이나 숨막힐 듯한 긴장감 등이 기대치를 밑돈다. 한낮의 뉴욕 지하철에 테러를 감행한 악당에게 그 어떤 숭고한 성전(聖戰)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테러를 막아낼 주인공에게도 뉴욕 시민의 목숨을 목숨 걸고 지켜내는 눈물겨운 희생정신이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 ‘펠햄 123’이 액션 영화로서 흥미가 조금 떨어질 지는 몰라도, 테러를 다루는 할리우드의 사뭇 달라진 시선은 참으로 흥미롭다. 영화 속 테러 상황은 나름대로 묵직한 파장을 몰고 왔지만 라이더가 최후를 맞는 동시에 상황은 종료되고, 가버는 아내가 부탁한 우유를 사 든 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현재 뉴욕에게 ‘테러’의 의미는 딱 그만큼의 무게인 것 같다. (2009년 6월 작성)
제목 : 펠햄 123 (2009, 미국/영국)
OTT : 왓챠, 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