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약탈자들'
병태(박병은)의 장례식장에 모인 몇 명의 친구들. ‘그 형이 여자를 좀 밝히잖아’를 시작으로 상태(김태훈)를 향한 뒷담화의 향연이 시작된다. 자기도 모르게 무참하게 씹히고 있는 이 상태라는 사람은 이들 몇몇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의 만행이 자행됐던 역사적 장소 ‘금정굴’을 소재로 한 논문을 준비 중인 역사학자이지만 학내 성추행 혐의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창씨개명을 한 할아버지 때문에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는 필살 무술의 전수자이기도 하다.
상태에 대해 논하는 각자의 이야기는 경쟁하듯 점점 왜곡과 과장의 수순을 밟아가고 급기야 이야기는 판타지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 속에 영화, 이야기 속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드러난 병태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앞서 늘어놓았던 거창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왜곡과 과장과 판타지에 얼룩진 이야기들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허망하다.
진실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바로 죽은 병태와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상태다. 죽은 병태는 ‘유령’이 돼서 나름 힘겹게 진실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민망스럽게 묵살돼 버리고 이 자리에 없는 상태는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몇몇의 증언에 의해서 금수만도 못한 ‘상놈’이 돼버렸다.
유령과 상놈은 힘이 없으므로, 고로 진실도 힘을 잃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지금 뒷담화의 마력에 빠져 왜곡과 과장, 그리고 제멋대로의 상상을 서슴지 않는 몇몇 사람들에게 진실을 빼앗긴 것에 더 가깝다. 힘 있는 자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 마음껏 뒷담화를 행할 자유를 지닌 몇 명의 동창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약탈자들’이다.
영화 ‘약탈자들’은 ‘뒷담화 미스터리극’이라는 독특한 수식어구를 달고 찾아왔다. 한 사람을 놓고 인정사정 없이 행해지는 뒷담화, 이 유희는 진실과는 상관없는 ‘유력한 설’이 돼서 때때로 진실을 대신해 역사를 구성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뒷담화로 난자 당하는 이가 역사학자라는 점은 역사, 다시 말해 ‘어떤 사건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란 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영화 ‘약탈자들’은 힘 있는 자들의 힘 센 이야기들이 서로 자기 얘기가 더 그럴 듯하다며 아우성치는 이야기들끼리의 싸움터다. 승리자는 아직 없지만 패배자는 이미 정해져 있는 일방적 전투. 패배자들은 물론 ‘천하의 나쁜 놈’ 상태와 ‘유령’ 병태다. 그들은 민망스럽게 남겨졌다. 그리고 승리자들은 왜곡과 과장으로 기묘하게 장식된 이야기들을 무책임하게 남겨놓은 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유유히 이야기의 전장을 떠난다.
(2009년 6월 작성)
제목 : 약탈자들 (2009, 대한민국)
OTT : 시네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