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블록버스터는 대홍수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영화 '노아'

by 무덤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 된지라 (중략)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 창세기 7장 17절~22절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굳이 해당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간교한 뱀의 부추김에 아담의 짝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인간은 신에게 버림 받았고 훗날 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면서 죄가 창궐해 세상은 타락한다. 타락한 세상을 보다 못한 신은 노아에게 자신이 곧 세상을 멸할 예정이니 방주를 지어 세상의 모든 종(種)을 보존하라 명한다.


어찌 보면 세계 최초의 지구 종말 시나리오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성경 속에서 단 몇 줄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만큼 더욱 많은 상상을 하게 해 막연한 공포를 부른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이 거대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겠다고 감히 나섰다. '코에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지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린 대홍수는 과연 어떻게 그려졌을까.


영화 ‘노아’는 역대 최고의 블록버스터를 선사할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모른 척 한다. 139분에 이르는 꽤 긴 러닝타임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스펙터클은 30분이 될까 말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영화 ‘노아’에 1억 2500만 달러의 돈을 들여놓고는 시침 뚝 떼고 볼거리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배반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록버스터는 세상을 쓸어버린 대홍수의 압도적 비쥬얼에 있지 않다. 그의 블록버스터는 노아의 내면에 있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멸망 한 가운데서 세상을 지속해야 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아는 영화 속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갈등과 고뇌, 그리고 비관에 시달리며 그의 내면은 영화 내내 들끓는다.


그런데 대런 아로노프스키 전작들을 보면 그 안의 주인공들도 그랬다. ‘블랙 스완’의 니나(나탈리 포트만)도, ‘레슬러’의 랜디(미키 루크)도, 그리고 ‘레퀴엠’의 사라(엘렌 버스틴)의 내면에도 노아와 비슷한 블록버스터가 들끓는다. ‘노아’는 대홍수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당위성을 치열하게 묻는 영화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 - 창세기 9장 20절~22절


신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노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포도주를 마시고 진탕 취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영화 ‘노아’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으며 그 질문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노아의 일족이 대표하는 선과 카인의 후예인 두발가인이 대표하는 악. 인간의 선악이 부딪히는 갈등은 영화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진정한 갈등은 노아와 노아를 제외한 가족들이 인간의 유무를 놓고 벌이는 데 있다. 타락한 인간들을 보고 환멸에 사로잡힌 나머지, 노아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멸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아내 나메(제니퍼 코넬리)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그러한 노아는 광기에 사로잡힌 맹목적 신자에 불과하다.


멸하느냐, 남기느냐. 남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영화를 보면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치열한 갈등은 영화를 본 관객들 내면에도 온전히 전이된다. 그 원초적인 갈등은 영화 전체를 매우 음울하고 염세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이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반발을 샀던 건 바로 인간 존재를 회의하게 하는 뜻밖의 갈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갈등에 본이 아니게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든 영화의 힘은 역시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인간을 대하는 남다른 시각 때문이기도 할 테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하나같이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한편, 한없이 나약했다. 그러니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록버스터는 인간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 (2014년 4월 작성)


제목 : 노아 (Noah,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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