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속 좀비는 용모가 단정(?)하였다

영화 '괴시'

by 무덤덤

한국에서도 드디어 제작비 100억을 훌쩍 넘긴 좀비영화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녀귀신이나 연쇄 살인마, 사이코패스 등에 밀려 천대 받아왔던 좀비가 신분상승에 성공한 것이다. 이젠 대형 상업영화에도 진출했을 만큼 대한민국에서 좀비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영화 ‘부산행’에는 많은 스타들이 등장해 나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열연을 펼친 주인공은 바로 좀비를 연기한 100여명의 단역 배우들이다. 팔이 부러져서 등에 걸쳐 있어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전속력으로 뛰고, 달리는 기차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고, 유리문이 깨져 한꺼번에 쏟아져도 얼굴은 언제나 좀비처럼 ‘크아악’.


2억달러가 들었다는 ‘월드워 Z’에 비교해서도 그 성능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부산행’의 좀비를 보고 있자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는 무엇이고 그 영화 속 최초의 좀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세계 최초의 좀비영화는 1932년작 ‘화이트 좀비’이나, 산 사람을 물어 전염을 시키는 현대적 의미의 좀비가 나오는 최초의 영화는 1968년작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은 이보다 한참 늦은 1980년에 강범구 감독의 ‘괴시’라는 좀비영화가 처음으로 나왔다.


사실 영화 ‘괴시’의 존재는 최근까지 거의 잊혀졌다가 2011년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뤄져 비로소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라는 명예로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좀비3’를 표절했다고 하니 그 낯이 적잖이 민망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좀비라는 장르의 역사와 전통이 얼마나 비천한 것이었는지를 또 한번 실감한다. 표절은 일단 논외로 치고, 그래도 명색이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인데 ‘괴시’ 속 좀비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영화 ‘28일 후’ 이후 그 능력치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한 2000년대 좀비들의 포악성을 고려할 때 ‘괴시’ 속 좀비는 얌전한 편이다. 게다가 무척 느리다. 인육을 갈구하고 인육을 먹어 전염을 시키는 좀비의 주요 기능을 참작할 때도 ‘괴시’에 나오는 시체는 엄밀히 말해 온전한 좀비가 아니다. 그들은 전염성이 없고 맹목적으로 인육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사람을 보이는 대로 죽이려고는 한다).



영화 ‘괴시’에서 시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은 ‘초음파’다. 분노 바이러스나 생화학 무기 따위가 아니라 농사를 망치는 해충 박멸용 ‘초음파’가 시체의 뇌를 자극해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초음파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시체는 살아나 동네를 배회하고, 보이는 사람을 그저 죽인다. 그러면 그 죽은 사람도 초음파에 의해 또 살아나 다른 표적을 찾아 헤매는 식이다.


좀비의 비주얼은 또 어떤가. CG와 진일보한 분장술의 도움을 양껏 받아 그 끔찍함이 날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최근의 좀비에 비해서 ‘괴시’의 좀비는 용모가 단정한 편이다. 얼굴은 살아 생전의 모습을 비교적 그대로 갖고 있고 피도 별로 안 묻어 있다. 다만 말이 없어 ‘크아악’ 소리조차 내지 않고 과묵하다는 것, 그리고 낯빛은 형광색 조명을 잔뜩 받아 ‘푸르딩딩’하다는 정도. 또 하나 이색적인 것은 당시 홍콩발 ‘강시’가 대유행이었던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영향을 조금 받았는지, ‘괴시’의 시체들은 하나같이 팔을 앞으로 뻗어 다가온다.


36년 전에 처음 시도된, 시체가 살아나 살인을 한다는 설정의 이 영화는 당시 관객들에게 거의 외면당했던 모양이다. 아마 그 당시 한국에서는 ‘좀비’라는 단어조차 낯설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라는 타이틀이나마 얻어 가졌지만, 영화 속 좀비의 능력치는 여전히 아쉽다. 좀 더 빨랐더라면, 좀 더 끔찍한 몰골이었더라면… 부질없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2016년 드디어 부산행 열차에 난입한 신(新) 좀비를 맞는다. 반갑다, ‘부산행’. (2016년 7월 작성)


제목 : 괴시 (1981, 대한민국)

OTT : 유튜브 (https://youtu.be/eD5HaSsEHrE?si=yDKxciGGpbGVQe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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