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로 뒤덮인 역사에서 '왕'을 만드는 것은?

영화 '더 킹'

by 무덤덤

2분할 화면의 대칭 영상으로 편집된 영화 '더 킹'의 도입부는 수십 년 동안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훑는다. 흡사 '데칼코마니' 같다.


'데칼코마니'는 누구나 알 듯이 물감을 풀어놓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우연히 생긴 반복된 무늬를 만드는 회화기법이다. 이 기법은 대칭의 무늬가 한 개의 무늬였을 때와는 또 다른 '초현실적' 의미를 발생시킨다고 봤다.


한재림 감독은 '대칭되는 현대사'를 나열함으로써 어떤 의미를 얻으려 했던 걸까. '데칼코마니'가 얻고자 했던 초현실적인 그 어떤 것? 애초에는 그러한 야망(?)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를 무당이 점지해주는 장면은 정말 초현실적이지 않은가? 불과 3개월 전에만 해도 분명 그랬다.



그러나 그 무당씬들은 지금 소름 돋을 정도로 리얼한 장면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더 킹'에 초현실적 느낌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그 어느 영화보다 현실을 잘 반영한 것처럼 관객들은 느끼고 있다. 또 등장인물마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영화를 본다. 웃자고 만든 장면이 마냥 웃기기만 하진 않은 현 시점에서, '더 킹'의 데칼코마니는 보다 확실하게 '대비'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장면을 대칭해 붙여놓았을 뿐인데 좌우에서 '대비'되는 의미가 각각 발현되는 것은 신묘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장면을 고르더라도 그 지점에서는 상반된 입장과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우리 편'과 '네 편'이 있고 '흥'과 '망'이 엇갈리며 '흑백'과 '음양'이 친구로 어울린다.


매순간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순간 어느 쪽으로 운신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태수(조인성)는 검사가 된 후 자신의 운명을 가를 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지역유지 아들의 강간죄를 봐주고 선망하던 한강식(정우성) 검사 라인을 탈 것이냐, 봐주지 않고 공무원 검사로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묵묵히 일 할 것이냐.


욕망의 사주를 받고 박태수는 한강식을 택한다. '자존심과 정의'를 초개같이 버리고 '편법, 술수, 폭력'이 난무하는 권력의 핵심으로 투신했다. 그리고 보다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온갖 비열함이 총동원된다. 그런데 이 '정치 검찰'에 대칭되는 다른 한 면에는 '조폭의 세계'가 있다.


한강식은 들개파 1인자 김응수(김의성)와 짝이고, 박태수는 고등학교 친구였던 들개파 2인자 최두일(류준열)과 짝이다. 사회 권력 구조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검찰과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조폭'의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대비'를 이루는 짝은 이밖에도 많다. 더 큰 권력을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질주하는 한강식과 박봉임에도 성실하게 검사직을 수행하는 박태수의 선배 검사가 있다. 한강식에 들러붙어 권력의 낙과(落果)를 받아먹는 양동철(배성우) 검사와 한강식을 '쓰레기'라 부르며 '옷 벗기자'고 달려드는 정의의 안희연(김소진) 검사도 한 짝이 된다. 그리고 잔인하고 비열한 김응수와 낭만의 화신으로 죽어간 최두일, 대통령 라인을 탄 검사들과 타지 못한 검사들.


또한 '더 킹'에는 인물들 사이의 '대비'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 안에서의 '대비'도 극명하다. 양아치에서 검사가 된 박태수는 검찰청 전략부에서 권력의 단맛을 누리다 나락으로 떨어져 목숨마저 위협받는다. 그러다 최두일의 죽음을 계기로 '정의의 화신'으로 변신해 정치판에 투신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던 한강식은 패악이 드러나 끝내 구속된다. 박태수의 가난한 선배검사는 꾸준하고도 묵묵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공로를 인정 받아 부장검사가 된다.


급변하는 현대 정치사에서 동일한 사건이지만 그 영향으로 다양한 '대비' 효과가 일어난다. '정의'와 '불의'가 부딪치고 '흥'과 '망'이 교차되며 '왕'과 '신하'가 바뀐다. 같은 장면이지만 그로 인한 현상은 대칭되는 것이다.



역사는 대칭의 현상만 남기고 아무 이득 없이 다음 역사로 넘어가는가? 그러니까 역사는 항상 제자리 걸음인 걸까.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아주 미세하게나마 움직이게 하는 건 인간의 욕망이다. '왕'이 되고 싶은 욕망. 정의롭게든 불의롭게든 사람은 누구나 '왕'이 되고 싶어한다. 그 욕망을 어찌 막으랴. 그래서 역사는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박태수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그래도 결국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인다.


영화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한강수 같은 욕망의 화신도 아니고 산전수전 겪은 후 '정의의 화신'으로 변신한 박태수도 아니다. 왕의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바로 '당신'. '당신'이 바로 '더 킹'이라는 것. 지극히 공익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영화는 2시간의 '풍자극'을 마무리한다. 현 시점에서는 현실 반영이 의도치 않게 너무 잘되어버려 '풍자'의 맛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2017년 1월 작성)


제목 : 더 킹 (2017, 대한민국)

OTT : 디즈니+,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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