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
'마스터'는 영화 자체만 보면 조금 지나치다 싶게 정교한 대형사기극 스토리를 143분 동안 풀어낸다. 조 단위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초대형 판을 벌여놓고 스타 세 배우가 동시에 나와 각자의 매력을 진탕 뽐낸다. 감독 본인도 깜짝 놀랐다는 캐스팅의 주인공은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다. 이쯤 되면 개봉 전 예매율이 60%에 육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껍데기'는 성공적이다. 공개 전부터 관객들은 이 영화를 매우 보고 싶어한다. 자, 그렇다면 영화의 내용도 '껍데기'의 화려함에 부응 할 만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다소 밋밋하다는 것. 그리고 영화는 그토록 화려한 사기극을 담았음에도 조금 귀엽기까지 하다는 것.
진현필(이병헌)은 '원네트워크'라는 회사를 만들어 높은 배당금을 약속했지만 수만명 개미들의 쌈짓돈을 들고 검거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해외로 도피한 인물이다. '원네트워크' 심장부에서 전산 쪽 사기를 담당한 '박장군(김우빈)'이 칼을 맞고 각성하여 무조건 정의로운 김재명 형사(강동원)와 합심을 해도 진 회장 손에 수갑 채우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진 회장의 장부에는 그에게 돈을 받은 대한민국의 유력자들이 잔뜩 적혀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 회장은 주변 인물들의 심경 변화, 배신의 기운을 본능적으로 캐치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간교하고 야욕에 가득 찬 '본 투 비 사기꾼' 진현필을 연기했다. 하지만 진현필은 '아수라'의 박성배(황정민)와 욕망의 정도는 맞먹어도 그보다는 귀여운 면모가 있다. 이병헌의 애드리브가 악역 진현필에 대한 관객들의 긴장감을 이따금씩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영화 '마스터'의 긴 러닝타임 동안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측근의 배신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의 살벌한 기운 역시 여느 악역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병헌 못지 않게 캐릭터 안에서 '잘 놀았던' 배우는 김우빈이다. 영화 '스물'의 치호가 돌아온 것 같은 느낌도 없진 않지만 뻔뻔하고 가볍고 통통 튀는 젊은 사기꾼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김우빈은 이병헌과 강동원, 이 두 대배우 사이에서도 기 죽지 않고 존재감을 무리 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강동원이 맡은 김재명 형사 캐릭터는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계기가 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재명은 대책 없이 정의롭기만 한 인물이다. 유머 감각도 별로 없고 일만 열심히 하는 인물이라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일 여지가 많지 않다. 강동원 정도의 스타가 이 역할을 맡기까지, 그리고 연기를 하는 동안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성실한 강동원의 연기는 영화의 끝을 향해 갈수록 빛을 발한다. 진현필을 마침내 붙잡았을 때 김재명은 더 이상 형사가 아니라 히어로가 된다.
치밀한 이야기, 톱스타 3인의 '콜라보', 히어로의 탄생까지. 이 모든 조건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진 '마스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그것이 이상하다.
조의석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 그린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 그림은 제법 대작의 면모를 가진 큰 것이었을 테다. 일단 사기에 동원되는 돈이 수조원에 달한다. 아마 사기극을 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큰 액수일 것이다. 그런데 긴 러닝타임 동안 비교적 세밀하게 짜인 초대형 범죄 사기극인 '마스터'는 갖고 있는 '볼륨'에 비해 그 무게감이 덜한 느낌이다.
그 원인은 역시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국정 농단 당사자의 돈 몇천억이 독일 차명계좌에 있다더라느니, 스위스 은행에 자금세탁 의뢰가 들어왔는데 그 액수가 수백조에 달한다더라는 등의 설이 세간에 난무하는 중이다. 영화의 스케일을 압도하는 현실의 상황이 이미 관객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니, '마스터'의 사기극은 이미 귀여운 액션활극의 수준으로 강등돼 버렸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영화 감상에 현실의 상황이 자꾸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영화한테나 관객에게 좋은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영화 '마스터'가 그 자체로 훌륭한 범죄 액션 블록버스터임에도 관객들은 블록버스터로 이 영화가 대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에 따르는 영화의 미덕이 없진 않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볼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유쾌하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통쾌한 결말 즈음에는 김재명 형사가 정의의 상징이자 '윗대가리를 싹 다 밀어버릴' 히어로로 우뚝 선다. 김재명이 히어로의 아우라를 띄게 된 이유는 캐릭터의 비현실성에 크게 기인한다. 현실에서는 김재명 같은 형사가 없을 뿐 아니라 정의감 하나만 가지고 '썩은 머리'를 잘라낼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음을 관객들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히어로란 본디 타고난 능력을 발휘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회의 정의가 올곧게 서는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캐릭터다. 김재명 형사는 이렇게 히어로로 분한다. 슬그머니 '마스터' 2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예감도 든다. (2016년 12월 작성)
제목 : 마스터 (2016,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