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 사랑을 위해 기억을 지운 여자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by 무덤덤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에는 으레 마련됐었던 감독·배우들의 기자간담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 날은 홍상수 감독의 스캔들이 있은 후, 그의 신작이 한국 언론에 처음 소개되는 자리였다. 그 언제보다 홍상수 감독의 말이 고팠던 언론은, 하지만 이날 홍상수의 불참이 그다지 아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언론이 퍼부었을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영화 안에 다 있었기 때문이다.



영수(김주혁)는 민정(이유영)을 추궁하고 있다. 아마 민정은 술을 다소 즐기는 편이라 그간 종종 사고를 치곤 했나 보다. 동네 아는 형에게 말을 전해 들은 영수는, 민정이 자기 몰래 술을 먹은 데다가 웬 남자와 싸움까지 벌인 게 사실이냐며 그녀를 몰아붙이는 중이다. 민정의 대답은 '그런 적 없다'는 것. 하지만 영수에게 민정의 부인은 이미 아무 소용이 없으며 현재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가 그 풍문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이 시점에서 동네 형이 영수에게 얘기한 민정의 행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수에게 동네 형의 말은 이미 진실이 돼 있었고 민정은 "나 그런 말에 대답할 거 없구요" 하고 당분간 시간을 갖자며 떠났다.


영수는 행방이 묘연해진 민정을 찾아 헤매고 민정은 웬 남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 남자들은 민정을 아는 것 같은데 민정은 이 남자들을 다 모른다고 한다. 이 남자들에게 민정은 정말 민정의 쌍둥이 자매거나 그저 얼굴이 비슷한 또 다른 여자인 걸까, 아니면 민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살짝 미친 것 아닌가 싶은 민정의 기행, 민정은 만나는 남자마다 다 묻는다. "저를 아세요?" 그 말이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그녀를 안다고 생각했던 남자들이 매우 민망해하며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뭐야, 진짜 아니야?'


일단 민정은 사랑스럽고 하얗고 예쁘다. 남자들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일단 접어두고 새로운 그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녀는 어쨌든 사랑스러우니까. 민정은 이 남자들과 설레는 말, 예쁜 말, 귀여운 말들을 나누며 '사랑'의 기분을 만끽한다. 이 만남에서 사회에서의 지위, 세속과의 관계, 시간의 기억 따위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다 마침내 민정이 만나던 두 남자가 서로 맞닥뜨린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던 두 남자가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이다. 반가움에 겨워 두 남자는 과거의 추억들을 퍼 올려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 사이에 민망하게 껴 있던 민정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오고, 집 앞 골목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나 자신과 나의 것'만으로는 사람과의 만남이 이뤄질 수 없나? 사랑은 순수하게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만 이어질 수 없는 건가? '너무 순수해서 사람들한테 오해 받기 쉬운' 민정이가 원하는 '100% 사랑이기만 한 사랑'이 기억들에 의해 불순해지자 그녀는 펑펑 울고 만다.


이런 사랑은 가능할까? 나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고 있는 세상과의 관계를 깡그리 제거하고 순수하게 나만을 갖고, 순수한 당신 자신과 나누는 사랑 말이다. 영화는 이 질문에 긍정의 사인을 보낸다. 민정을 찾아 헤매다 울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영수는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잘 구분도 안가는 그날 밤 민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요 당신이 당신인 게". 그리고 그녀가 하는 사랑의 방식에 기꺼이 동참한다.


또한 이 질문은 스타 여배우와의 불륜스캔들로 홍상수 감독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세간의 질문에, 도리어 던지는 반문인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문 채 또 다른 영화를 통해 홍상수 감독은 그가 할 말을 계속 할 것이다. 스캔들로 인한 홍상수 감독에 대한 평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와는 상관 없이 그의 영화는 오히려 점점 더 재미있고 귀여워지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2016년 11월 작성)


제목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2016년, 대한민국)

OTT : 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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