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에 대하여

by 알프레도 토토

친구 말마따나 자식의 전화기는 수신만 되는 물건이다. 좀처럼 부모를 향한 발신은 없다. 그 좀처럼이 이루어지는 때는 대부분 구체적 목적이 따르거나 수신이 양호하지 않았을 때이다. 나라는 자식의 전화기에 아빠의 발신이 남았다. 보통 때와 다른 점 하나는 오후 8시에나 있는 일이 오늘은 오후 1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수신불량을 개선하기 위한 나의 발신은 여느때처럼 3번의 연결음만에 성공한다.
그리고 내 아빠의 한 마디는 부쩍 눈물이 많아진 나를 하마터면 울릴 뻔했다. 오늘은 행여나 수업 중에 울린 벨소리로 내가 당혹스러워질까, 혹 도무지 편해지지 않는 교무실에서 희미하고 내려앉은 목소리로 내가 전화를 받게 될까하는 걱정 없이 전화할 수 있는 날이라 큰 마음 먹고 기쁨과 기대로 건 전화였던 것이다.
순간 아빠의 조심스러움을 낳은 나의 유난스럽고 예민한 성격에 대한 찌를 듯한 괴로움은 돌연 그 방향을 바꾸었다. (자식은 눈물이 찔끔 하는 이 상황에도 자신을 두둔한다.) 고작 전화 한 통 앞에서 부모는 이만큼이나 두려워하는데 무엇이 그들의 무례에 주저를 생략하게 하는 것인가. 나의 분노는 정당하고 정당하도다!
이렇게 오늘도 아빠는 나를 얼러 준다. 내 분노가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 힘을 비축하면서도 아빠의 주저를 낳은 내 무례는 까맣게 잊는 모습에 조용히 눈 감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