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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4.12.22 (일)

by 박인식

부자가 서로 만나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집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 않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닐 텐데, 주변에도 모녀가 만나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듯 부자 사이가 그런 경우는 좀처럼 보지 못했다. 혜인 아범도 그렇다. 서로가 한 공간에 단둘만 있는 걸 몹시 어색해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는 슬며시 피해 나간다. 가족 카톡방에서도 내 글에 대꾸하는 건 주로 혜인 어멈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혜인 아범과의 관계는 평균은 넘는다. 이야기해야 할 것은 하고, 이야기할 때 분위기도 괜찮다. 다만 그럴 기회가 많이 없을 뿐. 엊저녁에는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했다. 작업실에서 악보를 보는 혜인 아범에게 내려가 몇 가지 당부를 건넸다.


“지금까지 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극장에서 신임받는 게 자랑스러웠고, 교회의 화목을 아우르는 가정이라고 칭찬받는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다. 이제 사십 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극장에서는 믿을만한 동료를 넘어 기댈만한 동료라고 평가받았으면 좋겠고, 교회에서는 칭찬받는 가정에서 존경받는 가정으로 성숙해 가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또한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를 허락해주시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 그렇게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훗날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또 다른 누군가를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아이들 때문에 내일의 세상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소임은 다 감당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남은 시간 그것을 위해 힘써 기도하마.”


“살아봐서 알겠지만, 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 되더냐.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중요한 덕목이더라. 지혜롭게 잘 분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거라. 그러면 어려운 일에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고 기쁜 일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게 될 게다.”


자, 이제 나는 내 삶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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