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통신이 시작될 때쯤 중학생 사이에 버디버디라는 메신저 바람이 불었다. 이미 인터넷이 업무 도구가 된 상황이었는데, 교회학교 아이들이 얼마나 메시지를 보내는지 일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점수 따겠다고 열심히 답글을 보냈다. 그런데 메신저에선 그렇게 살갑던 아이들이 교회에서는 여전히 쌀쌀맞았다. 그때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영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겐 온라인 세상과 현실 세상이 다르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난 지금은 적어도 온라인 세상과 현실 세상이 다르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온라인 오프라인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지는 못한다. 내겐 온라인 친구도 그저 친구일 뿐이다.
나는 활동량에 비해 페친이 적은 편이다. 이백 명 조금 넘는데, 바로 온라인 친구를 그저 친구로 여기는 습성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페친은 이미 만났거나 언젠가 만날 두 부류만 존재한다. 그 얼마 되지 않는 페친 중 두 분이 일주일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부음은 두 분이 활발하게 일상을 공유하던 그 공간을 통해 전해졌다. 정아은 작가는 다양한 분야에 왕성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후속작 출간을 앞두고 있었고, 유창선 선생은 매일 살인적인 분량의 칼럼을 쓰면서도 내년 가족여행을 앞두고 지난번 유럽 여행 때 이루지 못한 미술관 투어를 기필코 이뤄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두 분의 부음 모두 황망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정 작가의 부음이 안타까움이었다면 유 선생의 부음은 충격이었다는 점에서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유 선생은 익숙한 정치 평론가였지만 그를 알게 된 것은 뇌종양을 극복하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하고 난 이후였다. 그가 음악과 미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때부터 음악회와 전시회를 놀라운 열정으로 섭렵하고, 그 결과물인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이 출간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달리기에도 진심이었던 그가 매사를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루어내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치열하게 산 것은 혹시 이런 마지막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는 내가 올리는 혜인 아범의 활동 소식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여름 혜인 아범이 출연한 평창음악제 오페라 공연을 예매해놓고 사정이 생겨 부득이 취소해야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는 머지않아 혜인 아범이 국내 바그너 오페라 무대에 설 때 꼭 보러오겠다며 내게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 만날 것을 기약했다.
누구보다 왕성하게 일상을 공유했던 두 분, 비록 온라인 친구였지만 내게는 ‘그저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였던 두 분을 이제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니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