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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4.12.25 (수)

by 박인식

몇 년째 이어오는 아침 루틴이 있다. 묵상하고 성경을 쓰는 일이다. 물론 건너뛰는 날이 없지는 않다. 이전에는 건너뛰면 다음에 그만큼 채웠고, 그러다 보니 하루에 석 장 넉 장씩 쓰는 일도 있었다. 그쯤 되면 루틴이라기보다는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기쁨으로 하는 일이었는데 굳이 숙제로 여기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언제부턴가 건너뛰면 그냥 건너뛰고 말았다.


집과 숙소를 오르내리면서도 늘 성경 쓸 것을 챙겨 다녔다. 아이들 집에 갈 때도 예외 없이 잉크까지 챙겨갔다. 언젠가는 항공 검색대에서 잉크병이 나오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은 이를 만난 일도 있다. (잉크병 용량은 항공 검색에서 허용하는 양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져가지 않았다. 한 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강박이 아닌가 싶었고, 이 나이 되어서까지 굳이 그런 강박에 묶여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도 바쁜 나이 아닌가.


내가 일하는 사업관리단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특성 때문에 휴가 때 대체 근무자를 세워야 한다. 본사에 이야기해서 대체 근무자를 세우고 편하게 휴가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 누군가에게 출장 내려오는 수고를 끼쳐야 하고, 대체 근무를 한다고 한들 자리만 지키는 것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주말 당직으로 그 날수만큼 채우기로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꼬박 사무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곳은 신년 일출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기도 해서 나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니 그렇게 가여운 눈으로 보실 일은 아니다. 어차피 아내는 한 달 뒤에나 돌아오고.


다행히 본 교회 예배가 실시간으로 중계되어 섭섭함은 덜게 되었다. 교우들 곁에서 체온을 느끼며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것과 비교가 되기야 하겠는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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