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만나러 갈 날이 정해지면 하루가 한 해보다 길게 느껴졌다. 정작 아이들을 만나면 반갑고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저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돌아서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큰애도 그런 우리가 떠나는 걸 섭섭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공항에서 우리를 배웅하면서 울먹거리는 걸 차마 볼 수 없어서 떠날 때 아이는 공항에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큰애와 달리 작은애는 담백하기 짝이 없다. 잘 있으라고 하면 제 하던 일에서 눈도 떼지 않고 잘 가라고 손 한 번 흔드는 걸로 끝이다. 큰애는 너무 섭섭해해서 가슴 아프더니 작은애가 너무 멀쩡하니 그것도 섭섭하더라.
아이들 만나러 오면 짧아도 보름 길면 한 달도 넘게 함께 지내곤 했다. 물론 일 년에 한 달 휴가 주는 해외 근무여서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번엔 현장 근무 중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 아쉬웠던 열흘도 사실 동료와 관계사들이 양해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그 시간 만회하기 위해 날수만큼 주말 당직을 서야 한다. 아내는 아이들과 한 달 더 있다가 돌아올 것이니 어차피 집에 와봐야 혼자인 것, 핑곗김에 1월 중순까지는 현장에서 머물 참이다.
무리하게 자리 비운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이번에는 돌아가는 날이 오히려 기다려졌다. 그렇다고 아이들 두고 돌아서는 게 편하기야 하겠냐마는. 아이들과 변변히 기억할 시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게 섭섭해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림부르크안데어란에 다녀왔다. 얼핏 프랑스 접경지에 있는 꼴마르가 떠오를 만한 도시였다.
독일 지명에는 강 이름이 따라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림부르크안데어란(Limburg an der Lahn)이라는 이름은 ‘란’ 강가에 있는 ‘림부르크’라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란’은 강이 아니라 하천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혜인 아범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란’ 강이 유명해서 이름에 사용한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림부르크와 구분하기 위해 ‘란 강가에 있는’이라는 꾸밈말이 붙었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과 호흐하임 암 마인은 모두 마인강 따라 발달한 도시로서, 동독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오더와 중부에 있는 호흐하힘 인 투링기아와 구분하기 위해 강 이름을 붙였다. 림부르크 역시 뮌헨 인근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도시가 있다.
집에 돌아와 골라놓은 사진 몇 장 인화해 책상 위에 올려놓을 자그마한 액자를 만들고 짐을 꾸리니 잘 시간이다. 열흘 가까이 함께 지냈으면서도 큰애가 저렇게 자란 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손잡고 걸어가다가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다시 확인하곤 했다. 큰애가 작은애 같던 게 엊그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