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들 하고만 시간을 보내는 건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작은애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비스바덴으로 나왔다.
독일은 16개 주가 모인 연방공화국이고 주마다 정책이 다르다. 혜인이네가 사는 곳은 헤센주 호흐하임이고 혜원이는 그곳에서 유치원을 다닌다. 혜인이 학교는 라인란트팔츠주의 마인츠에 있다. 그래서 두 아이의 학사일정이 달라 여행이라도 가려면 방학 날짜를 잘 맞춰야 한다. 헤센주의 큰 도시로 프랑크푸르트를 꼽지만, 주도는 혜인 아범 극장이 있는 비스바덴이다. 프랑크푸르트가 워낙 큰 도시여서 인구 백만 명은 가볍게 넘을 줄 알았는데 통계를 보니 8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도인 비스바덴은 30만 명 정도. 라인란트팔츠주의 주도이자 제일 큰 도시인 마인츠는 인구가 20만 명을 조금 넘는다.
분데스리가 마인츠팀의 주축인 이재성 선수는 혜인네 교회에 출석하는 아주 신실한 청년이다. 지난 시즌엔 마인츠팀이 강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17위와 18위가 하위리그로 강등되는데 계속 16위권을 오르내렸다. 이재성 선수는 아주 겸손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같은 청년회 회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그러다 보니 하위리그로 떨어져 팀을 옮길까 걱정하는 교인들이 범교회적으로 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다행히 13위인가 하는 성적으로 살아남았고 올해는 7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재성 선수가 있다. 리그 잔류가 확정되고 나서 이재성 선수가 교인들을 초청해 홈경기장 안팎을 구경시키고 식사대접하는 사진이 구단 인스타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마인츠팀이 13경기 연속 무패의 바이에른 팀과 경기가 있었다. 아무리 오름세를 탄 팀이라고는 해도 바이에른의 상대는 아닐 것이라 순위가 좀 떨어질 줄 알았다. 놀랍게도 모두가 질 것으로 예상한 경기에서 이재성 선수가 2골을 넣어 선두 팀 바이에른을 2-1로 꺾었다. 그건 좋은데 하필 바이에른 수비수가 김민재 선수여서... 잠깐 우산 장수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이 되었다. 주일에 교회에서 얼굴이나 볼까 했더니 회복훈련이 있었는지 나오지를 못했다.
혜인 아범이 베를린에서 공부를 시작한 2006년부터 코로나 때를 빼고는 매년 다녀갔다. 그런데 여태까지 특별히 기억날만한 독일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나름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걸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소시지와 슈니첼, 맥주, 접시 바닥에는 감자와 양배추가 깔리고, 겨울엔 글뤼바인이 추가되는 정도. 여기라고 파인다이닝이 없기야 하랴마는 혜인 아범이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음식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술과 돼지고기가 금기인 사우디에서 사는 동안에는 소시지에 맥주가 그렇게 그리웠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혜인이네 가기도 전에 소시지에 맥주 한잔부터 들이켰다. 어느 해인가는 맥주 20종을 마시겠다고 작정하고 돌아가는 공항에서 마지막 스무 번째 맥주를 채웠던 일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절정에 올라야 할 이번 주에는 내내 겨울비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화창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까지 내려서야 크리스마스 열기가 살아나겠나. 그럴 땐 그저 온천욕만 한 것이 없다. 독일어 ‘바덴’은 목욕이라는 뜻이고 이 이름이 붙는 곳에는 모두 유명한 온천이 있다. 바덴바덴의 카라칼라 온천이 그렇고 비스바덴의 카이저 프리드리히 온천이 그렇다. 온천이 있으니 부유한 은퇴자들이 모여들고, 그래서인지 도시 전체에서 부유한 티가 난다. 혜인 아범이 일하는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은 이들이 든든한 후원자로 받쳐주고 있어서 다른 극장에 비해 형편이 좀 낫다고 들었다.
두어 시간 온천에서 몸을 풀고 나니 목이 말랐다. 소시지 요리에 맥주 한 잔. 맛이 아니라 멋으로 먹었다. 겨울비 때문에 크리스마스 시장은 파장이고, 작은 선물 몇 개 살까 하고 돌아보는데 그럴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여행 선물이라는 게 우리에게 없거나 여행지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없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걸 살 수도 없어 대충 둘러보고 일찍 들어왔다.
그런데 독일의 온천이나 사우나가 대체로 혼탕이라는 건 알고들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