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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by 박인식

황보름

클레이하우스

2022년 1월 17일


베스트셀러 기준이 1만 부라고 하는 우리 출판시장에서 30만 부가 넘게 팔린 소설이 있다. 최근에 계약한 아제르바이잔을 포함해 30개 이상의 언어로 판권이 팔렸고,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넘어섰다. 작가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스페인, 일본, 그리고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가서 북토크를 하고 돌아왔다. 작년 2월에는 세계 최대 독립서점인 파웰북스 이달의 도서로 채택되고, 4월에는 일본 서점대상 번역 부분 1위를 차지했다. 소설을 주제로 하는 오디오 드라마가 생기고 뮤지컬은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노벨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쓸 줄도 몰랐고 소설 쓰는 법을 배운 일도 없는 작가가 이룬 성과이다. LG전자에서 7년 동안 개발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황보름 작가의 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만두고 몇 년이 지나서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개발자로 일할 때는 개발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민폐만 끼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글은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작가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고,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타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그럴만한 작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도 전에 작가부터 알게 되었고, 그래서 순전히 그 호기심 때문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초판조차 팔리지 않은 책을 쓰고 번역한 초짜 작가로서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다.


커리어우먼으로 승승장구하던 영주는 어느 날 탈진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져 회사를 그만둔다. 돈은 못 벌어도 좋으니 한동안 쉬고 싶었고, 책 읽으며 쉰다는 생각으로 서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 깊숙한 곳에 휴남동 서점을 연다.


원하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스펙도 빠지는 데가 없고 뭐든 잘 해낼 자신이 있던 민준은 비록 취업의 관문을 넘지 못했지만 규칙적인 백수 생활을 이어가던 끝에 휴남동 서점에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프로그래머로 성과를 올렸으나 그 때문에 지쳐가던 승우는 품질관리로 자리를 옮긴다. 일상을 담은 글 하나 없이 오직 문장에 관한 글만 가득한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자기가 비평한 글로 인한 논쟁 때문에 명성을 얻고, 작가가 되고, 휴남동 서점에서 글쓰기 강의를 시작한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세 시간에 한 번씩 음료를 주문하는 단골손님 정서, 책이라도 읽으라는 엄마의 채근에 못 이겨 휴남동 서점을 찾는 고등학생 민철, 휴남동 서점에서 독서모임을 이끌면서 자기 이름인 전희주로 불리고 싶은 민철 엄마, 휴남동 서점에 커피 원두를 공급하는 로스팅 업체 사장 지미.


이처럼 바쁘게 살아가느라 세상에 치인, 그래서 지친 이들이 휴남동 서점에서 만나 서로를 통해 힘을 얻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극적인 요소도 없이 잔잔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그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자 전부이다. 작가 스스로는 힐링소설이라고 분류하지만 나는 모두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성장소설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성장소설이라면 주인공이 청소년일 것 같고, 때로는 닭살 돋는 유치함도 있을 것 같지만, 왠지 이 소설에는 그런 느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이 든다. 이것을 어느 독서방송 진행자는 소설과 에세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하더라만. 앞서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작가는 소설 쓰는 법도 모르고 쓰는 법을 배운 일도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흐르는 대로 생각을 펼쳐놓은 것이 여기에 이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작가 자신도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소설을 설계한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으니 내 짐작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의 장르라는 것이 그렇다. 장르가 먼저 생기고 작품이 거기에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작품을 나눈 결과가 장르에 지나지 않는 것일 텐데, 후대 사람들은 오히려 장르에 얽매어 작품과 문장이 제약받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작가가 장르에 묶이지 않아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그것이 오히려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점을 한 번쯤 꿈꾸어보지 않았을까? 나도 잠깐이지만 노래 듣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서 음반과 책을 파는 가게를 해볼 생각을 한 일이 있다. 한쪽에서는 아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도 열고. 하지만 그것 하나하나가 모두 극한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주는 서점을 열고서야 부랴부랴 휴남동 서점이라고 이름을 정할 만큼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자기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읽은 책에 그만의 감상을 적은 쪽지를 꽂았다. 읽지 않은 책도 비평집, 서평집, 인터넷 서평을 읽어 가며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알아두었다. 손님이 모르는 책에 관해 물었을 때 나중에라도 그 책을 찾아봤다. 서점 일을 하고 있다가 커피 주문이 들어올라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손님이 편히 책을 구경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동네 서점이라고 하기엔 제법 큰 휴남동 서점에는 군데군데 의자가 놓여있어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손님이 늘어나면서 커피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바리스타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주 5일, 일요일 월요일은 쉬고, 12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시간당 1만 2천 원. 하지만 자신은 일요일에만 쉬고 주 6일 서점을 열었다. 아르바이트생 시급은 시세를 따른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 충분히 쉬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 5일 하루 8시간을 먼저 생각해 놓은 후 시급을 정한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수익을 내기 위한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자신도 휴남동 서점이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 알지 못했다. 영주는 처음에는 책만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츰 책 판매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매주 금요일 저녁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서점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북토크, 공연, 전시 모두에 문을 열었다. 매달 둘째 주 수요일에 북토크를, 넷째 주 수요일에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그것이 작가 의도에 포함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휴남동 서점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라 할 만하다. 그래서 서점을 열고 싶다면서 연락해오거나 직접 찾아오는 사람까지 생겼다. 주변 서점 주인 몇몇과 함께 그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주는 그들의 궁금증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돈을 못 벌어도 서점을 유지할 수 있게끔 미리 자금을 마련해 두어야 해요. 물론 큰돈이지만 이 정도의 여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점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요. 물론 1년 안에 서점이 자리를 잡는다는 말은 아니에요.”


영주와 함께 자리한 다른 서점 주인의 답변은 이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


“서점으로 생계가 가능한가. 겨우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월세, 관리비, 다 나가고 한 달에 떨어지는 돈이 150만 원 남짓인데, 이 돈에서 집 월세 내고 관리비 내면 힘들겠죠? 서점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꼭 하고 싶다면 하라고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번 해봐야 나중에 후회도 안 할 거 아니에요.”


생계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고, 나중에 안 한 걸 후회하지 않으려면 해보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말이지 않은가.


작가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도 해보고 직업 없이 몇 년을 살아보기도 했으니 세상 물정을 몰라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점은, 서점의 뿌리가 되는 출판사의 생존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관점에서는 이 소설은 작가의 염원을 담은 환타지일지도 모른다. 설마하니 소설 한 편으로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성을 얻었다고 서점이 이처럼 장밋빛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기야 하겠나.


책을 다 읽도록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졌던 궁금증은 풀지 못했다. 어떤 점이 그 많은 우리나라 독자의, 30여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나라 독자의 마음을 끌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나름 책에 대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내게 책의 내용과 판매량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관계이다. 하긴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도 그렇지 않은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글보다 허접한 농담 한마디가 그보다 몇 배, 때로는 몇십 배 호응을 받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이 작품이 그렇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장르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표현은 했지만, 묶이지 않아서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삶에 대해 깨우침이 될 만한 글도 간간이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가르치려 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연민, 비록 크기는 다를지라도 누구라 할 것 없이 갖추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선함, 서로를 격려하고 치유하는 연대감이 곳곳에 배어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고, 사람 때문에 실망했던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문장 몇 개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제가 못 고치는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합리적으로 굴려고 해요. 상대방이 감정에 호소해 올 땐 더 이성적으로 대응하게 되고요. 무지 빡빡한 스타일입니다.” - 내 이야기인 줄.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강 같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강처럼 은은한 분위기가 아닐까. 강이라기보단 나무 같았다. 건강한 초록빛을 뿜어내다가 바람이 불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볍게 날아가는 나뭇잎.” - 부럽지만 이룰 수 없는 꿈


“정성스럽고 솔직하게 쓴 글이 잘 쓴 글이야.” - 내가 꿈꿀 수 있는 최선의 목표


“대화는 부족해도 신뢰는 부족하지 않았다.” - 말이야 방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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