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나의 영어 해방 일지

by 박인식

박재영

민음사

2024년 11월 22일


십수 년을 해외법인에서 일했지만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은 아직도 편안치가 않다. 닥치면 어떻게든 쓰기는 했어도 쓰고 나서 이게 맞는 건지, 뜻이 통하는지, 흉잡히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이후 번역기가 생겨 많은 문서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어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중요한 부분은 다시 본문을 확인해야 했고, 국문을 영문으로 바꾸는 것은 차마 내놓을 수준이 되지 못해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뜻하지 않게 번역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역량을 갖추지 못한 내게 가당치 않은 일이었지만, 알고 있는 내용을 다룬 책이라 내용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때 새로 시작된 번역기 DeepL로 문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서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인공지능으로 번역기 결과물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저자가 한국문화 소개 책자를 국영문 대조 방식으로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놀랍게도 번역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번역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번역했다는 것이다. 책 내용도 흥미로웠고, 번역 상태도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그러면서 번역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번역한 과정이 몹시 궁금해졌다. 그가 그 과정을 설명한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영어에 관한 한 읽기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듣기, 말하기, 쓰기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힌다. 인공지능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기와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누구든 그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가 사용한 방식은 번역기로 초벌 번역을 한 후 인공지능으로 번역문을 계속 다듬어나가는 것이니, 적어도 번역한 문장이 원래 자신이 표현하려고 했던 데 얼마나 부합하는지 판단할 정도는 되어야 이 방식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책 전반부에서 번역기 DeepL과 인공지능 ChatGPT을 사용해 번역한 과정을 설명하고 후반부에 연설문, 칼럼, 인문학 서적, 소설, 수필처럼 다양한 형태의 글을 번역한 사례를 실었다. 모두 쓰임새가 다른 글이니 실제로 이 작업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 이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겠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번역 과정에 익숙하지 못한 채로 사례를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먼저 저자가 설멍한 대로 번역해 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사례를 참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이번엔 앞부분에 집중해서 읽었다.


이 작업은 우선 초벌 번역부터 확인해야 한다. 저자는 오역 같거나 표현이 미심쩍을 때 역순으로 번역해 보기를 권한다. 번역한 영문을 다시 국문으로 번역해 결과가 글의 의도에서 벗어나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낯선 단어는 오역도 자주 일어난다. 외국에서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는 ‘군밤’은 roasted chestnut으로 제대로 번역하지만, 그들에게 낯선 ‘군고구마’는 military sweet potato로 번역한다. ‘구운’ 것을 ‘군대’로 이해한 것이다. 대부분을 뜻하는 ‘태반’이라는 단어처럼 쓰임새가 많이 줄어들거나 사자성어는 십중팔구 오역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럴 때 본문을 수정하기를 권한다. 될 수 있으면 널리 쓰이고 쉬운 말로 풀어서 고치라는 것이다. ‘태반’을 ‘대부분’으로 고친다던가 사자성어를 다른 표현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자성어처럼 짧으면서도 강렬한 표현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네이버를 활용하라고 권한다. 사실 나도 이 방법을 오래전부터 써오고 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 봤다가 뜻밖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중에 무릎을 칠만한 결과를 얻은 것도 수없이 많다. 물론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가 늘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인공지능이라는 뒷배가 있으니 마음 놓고 시도해 보라고 말한다.


번역기는 유료냐 무료냐에 따라 한 번에 번역할 수 있는 분량이 다르다. 한 번에 많이 번역하면 작업이 쉬워질 수는 있겠지만, 저자는 번역 분량도 번역의 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한 번 번역하는 분량이 적으면 번역기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도 하고, 너무 긴 것도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적정한 분량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는 해보면서 익히는 게 지름길이 아닐까.


초벌 번역한 결과는 인공지능으로 다듬고 수준을 높인다. 모든 인공지능 작업 결과물의 수준은 질문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하나 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고, 몇 번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그 중요성을 실감했다. 저자는 질문을 프롬프트(prompt)라고 부른다. ‘질문’이라는 용어로 담기엔 부족하기 때문일 텐데, 그보다는 ‘명령어’라는 용어가 낫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인공지능을 부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명령은 영어로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글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저자가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 걸 보면 그것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글로도 가능하니 영어 울렁증이 있는 이들도 쉽게 용기를 내 볼 수 있겠다.


저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인공지능 명령어로 regenerate, other word, written in American style을 들 수 있다. 번역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해보라거나, 다른 단어를 찾아보라거나, 미국인이 쓴 것과 같은 모양으로 쓰라는 말이다. 미국 스타일이라는 명령어에 formal, informal, casual이라는 말을 덧붙이면 격식에 맞는 글을 얻을 수 있고, 이를 다시 구어체(colloquial)나 문어체(literary)로 다듬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언론사마다 문장 스타일이 다르다는데, 그런 명령도 어지간히 따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영어 능통자라고 해도 각 언론사 문장 스타일을 따라 다르게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나.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지만, 그렇다고 그 작업이 이렇게 만만하기야 할까. 말은 쉽지만 실제로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없는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 초벌 번역을 검토하고, 역순으로 다시 번역해서 오류를 확인하고, 본문을 쉽게 고쳐 다시 번역하고, 필요하면 이런 걸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번역본으로 인공지능과 씨름하는 것도 그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결국 인내심과 결과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이 작업의 핵심 요령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수고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유효할지는 잘 모르겠다. 당장 얼마 전에 운영을 시작한 ‘웍스Ai’만 해도 그렇다. 기존 인공지능 플랫폼을 사무기능에 최적화하도록 설계해 놓은 건데, 그중 번역 항목에 들어가면 번역할 텍스트를 올리고 원하는 언어와 톤을 알려달라는 글이 보인다. 저자가 고생하며 터득한 방식을 이미 세팅해놓은 것이다. 어디 이것뿐일까.


오래전에 회사의 전산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동료가 있었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발전된 것을 배우면 되지 왜 굳이 오래가지 않을 기술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냐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결국 그는 매 단계 기술을 부지런히 익혀서 활용하는 이들을 따라오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는 것 또한 기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꺼이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을 따라 할 생각이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또한 번역하면서 느낀 건 “번역의 수준은 출발어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도착어에 대한 이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국어로 번역한 수준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국어 실력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영어 표현력도 결국은 국어 표현력에 달렸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영어로 글을 쓰려면 영어로 생각하는 게 문장이 자연스럽다. 국어로 생각한 걸 영어로 옮기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훨씬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번역하는데 적절한 문장이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이어야 할 것이니, 결국 번역기와 인공지능의 도움을 얻어 영문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이나 국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 모두 탄탄한 국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책 말미에 번역하는 데 번역기나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게 상도덕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번역의 질에 대한 책임을 번역자가 온전히 지는 조건이라면 자유롭게 활용해도 좋은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외국 출판사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오역과 콘텐츠 누출을 염려해서라고 한다. 번역자가 번역해도 오역 가능성은 마찬가지이니 아마 콘텐츠 누출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그러나 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니 질문 자체가 의미 없어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빠르고,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일뿐 그것이 번역자의 작품인지 인공지능의 결과물인지는 관심조차 없다며 이를 옹호한다. 번역서를 낸 사람으로서 나 또한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당시는 번역기 덕분에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는 했어도 문장을 유려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되지 않았고, 그래서 번역의 질은 결국 내 노력의 산물인 셈이었다. 앞으로 문장을 다듬는 인공지능이 점점 발전하면 문장의 뉘앙스가 아주 중요한 문학과 같은 장르가 아닌 한 인공지능 번역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저자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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