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22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스물두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요즘 각종 방송에 출연해 쉬운 말로 잘못된 건강 상식을 하나하나 바로 잡는 것으로 유명해진 서울대 이승훈 교수의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를 읽었습니다. 리뷰만으로도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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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승훈
북폴리오
2022년 3월 20일
한 달쯤 전에 신경과 교수가 고혈압 증상을 모아놓은 기사를 보여주면서 이 중에 진짜 고혈압 증상이 어떤 것이겠냐고 묻는 방송을 본 일이 있다. 중년의 남성이 목덜미를 잡고 눈을 찡그리고 있는 그림 옆으로 머리가 무겁다던가 얼굴이 빨개진다던가 귀가 울린다는 증상 몇 개를 나열해 놓았다. 열거한 증상 중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말투였다. 그는 그 증상 중 어느 하나도 고혈압과 관련된 것이 없다면서 고혈압은 드러나는 증상이 없다고 오금을 박았다.
아버지는 내 나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이십 년 넘게 고혈압으로 고생하다 결국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 음식은 간을 하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싱겁다. 짜게 먹는 것이 고혈압과 상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혈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온 나도 기사에 실린 것 같은 증상이 당연히 고혈압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앞서 말한 방송에 출연했던 서울대 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는 이처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의학지식을 바로잡기 위해 ‘질병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우리 몸의 구조’로 시작해서 질병이 무엇인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쉬운 말로 풀어쓴 책을 냈다. 4백 쪽을 훌쩍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쉬운 말로 써놓은 데다가 모두 우리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쉬운 말로 쓴 것이기는 하지만 의대생이 봐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책 후반의 한 장을 감기에 할애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 장의 제목이 “의대에서는 감기를 안 가르친다”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네 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질환인 감기에 대해 저자가 공부할 때는 물론 지금도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 스스로 공부해서 안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것은 의대에서는 심각한 질환을 가르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의료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심장이 멎어야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의학적으로는 뇌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뇌가 모든 기관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뇌졸중은 그런 뇌를 망가뜨리는 것이니 그 결과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졸중 환자의 상당수는 3~6개월 정도 재활을 거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 회복될 수 있으니 너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뇌졸중 환자의 절반 정도만 뇌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고 20퍼센트 정도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니 위험한 질환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무엇보다 뇌졸중이 합병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같은 질환과 술이나 담배와 같은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뇌졸중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는 뇌세포는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세포이며 혈류가 1분만 중단되어도 죽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환자의 장애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어떤 질환보다 빨리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생활 습관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는 나조차 막상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체로 청심환을 먹인다든가,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낸다든가, 뇌졸중에는 한방치료가 더 믿을만하다든가 하는 정도를 알 뿐이다. 저자는 그것이 너무나 잘못된 상식이라고 지적하면서 “무조건 119를 부르라”고 조언한다. 어떤 경우든 119가 무조건 빠르며, 요원들이 그럴 때 어느 응급센터로 가야 하는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믿고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119 출동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5.4분이다.) 빠를수록 뇌 조직을 훨씬 많이 살릴 수 있다니 이것만 알아두어도 치명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겠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던 아버지가 회복되시고 나서 성격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바뀌어서 가족 모두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 설명을 들어보니 그 정도는 상당히 양호한 축에 속하는 모양이다. 뇌졸중으로 뇌의 일부가 망가지면 정신도 그만큼 망가지기 때문에 인용하기 어려운 정도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니 말이다.
저자는 뇌졸중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고혈압은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잘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면서 혈압 측정을 일상화하기를 권한다.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하면 아무래도 긴장하기 때문에 실제 혈압보다 대체로 10~15mmHg 정도 높게 나타나는데, 요즘 5만 원 정도면 정확한 디지털 혈압계를 살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능하면 아침) 측정해서 그것을 가지고 의사와 상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 뇌졸중의 큰 원인 하나를 관리할 수 있다니 당장 실행할만한 일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망 원인의 상위권은 모두 암이 차지하고 있다. 암은 정상세포가 증식, 분열하는 과정에서 세포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세포가 무한 증식한 결과물이다. 오래 살면 세포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그래서 암 환자의 압도적 다수가 노인인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암이 무서운 것은 암이 일어난 장기의 전체 기능이 상당 수준 떨어질 때까지 우리 몸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장기의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까지 악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장암 사망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의 근본적인 원인을 변비라고 생각한다. 대장에 존재하는 변은 몸에서 불필요해 배출되는 찌꺼기와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오래 저장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배출해야 한다. 변비가 생기면 변이 대장에 오래 머무르면서 변에 존재하는 여러 부정적인 물질들이 대장과 접촉하는 빈도가 높아져서 암 발생을 촉진한다. 아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생전 변비라고는 모르고 살던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는 노화로 인해 위장관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복용하는 약물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니 피할 수는 없겠지만 변비가 대장암 말고도 여러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소화물이 장을 느리게 통과하는 육류나 치즈 같은 음식물 섭취가 늘어나는 것도 변비의 원인이고 지나친 다이어트도 변비를 일으킨다니 결국 건강은 섭생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저자가 의대에서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해서 배운다고 지적한 감기는 과연 무엇일까? 감기는 바이러스가 침입해 코에서 목구멍에 이르는 구간인 상기도가 감염돼 일어나는 질환이다. 감기는 병원에 가면 7일, 안 가면 일주일 걸린다는 농담이 있다. 가나 안 가나 차이가 없다는 말인데, 저자 역시 건강한 사람이면 대개 일주일 정도면 낫는 병이라고 말한다. 다만 심각한 지병이 있는 경우 폐렴으로 악화하거나 패혈증 같은 질환이 합병할 수 있어 가볍게 여길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로 모든 이들이 고생할 때 뜻밖에 감기 환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코로나 예방책으로 모든 사람이 실천했던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가 감기의 원인인 바이러스 감염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붙은 바이러스는 소독하지 않는 이상 손으로 만지는 데마다 감염되고 그러다가 콧속에 들어가면 감기를 일으키는데, 그 과정은 대개 수 분에서 수십 분 정도로 매우 빠르게 감염이 진행된다.
감기약 성분은 열을 내리거나, 기침을 줄이거나, 가래를 해소하거나, 재채기나 콧물을 멈추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감기약으로 멈추게 하려는 증상이 모두 우리 몸이 감기를 이기려고 ‘일부러 발생시킨 증상’이다. 말하자면 감기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열이 오르고 기침과 재채기와 콧물이 나고 가래가 끓는 것이다. 자식이 사는 독일에서는 감기로 병원에 가도 약도 처방하지 않고 그저 따뜻하게 국화차를 마시라고 알려주는 게 전부여서 의아했는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것이 오히려 적절한 치료가 아닌가 싶다. 감기약을 먹는다고 감기가 일찍 낫는 것도 아니라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가 질병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둘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 대부분 특별히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 대부분 다양한 질환이 있지만 그걸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사인 자신도 스스로 진단한 병이 스무 가지가 넘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이 책은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을 하나씩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강검진은 필요한 만큼만 해야 하는데 필요 없는 항목까지 포함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CT는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건강검진에 절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신 매년 한 번씩 간단한 혈액검사 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이는 당화혈색소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측정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당뇨 예방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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