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헤이북스
2023년 12월 12일
언제부턴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끌리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로는 인터뷰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이십 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는 블로그에 스크랩 해놓은 인터뷰 기사만 2천 개가 훌쩍 넘는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인터뷰라고 모두 같은 인터뷰가 아닌 걸 알게 된다. 자기선전 자화자찬 일색인 인터뷰도 많고, 의도가 담긴 인터뷰도 적지 않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던 종이신문과 달리 기사 분량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신문이 되었으면 인터뷰 여건은 더 좋아진 것일 텐데, 오히려 인터뷰 기사는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인터뷰 기사를 찾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 중에 대상을 오롯이 담아낸 인터뷰 기사를 만나는 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는 인터뷰 연재 기사인 ‘삶도’와 ‘실패연대기’에 이어 ‘애도’를 통해 늘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미 인터뷰 기사를 정리한 <언니들이 있다>, <엄마들이 있다>를 펴낸 그는 한 해쯤 전에 인터뷰를 대하는 인터뷰어로서의 자신과 인터뷰이의 태도에 주목한 <태도의 언어>를 펴냈다.
저자를 알게 된 건 아마 페이스북에서 저자가 링크해 놓은 ‘삶도’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삶도’를 흥미 있게 읽었고, ‘실패연대기’ 때문에 김지은 기자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애도’를 통해 온전히 그의 독자가 되었다. 그 사이에 <태도의 언어> 북콘서트에서 독자를 대하는 저자의 물리적인 태도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의 심정적 태도와 다르지 않은.
그의 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읽을 수 없지만 그중 ‘애도’ 시리즈는 유독 특별하다. 읽을 때마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툰 자신을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애도’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을 때 그는 언젠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애도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애도’ 시리즈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생명 존중 우수보도상’을 받은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을 통해 몇몇 인물의 진면목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중 김혜수 배우의 이야기를 첫째로 꼽을만하다. 행간에서 드러나는 느낌으로는 저자도 같은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인터뷰는 좋은 질문과 경청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김혜수 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인터뷰이의 태도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할 때 인터뷰어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질문의 의미가 뭔지, 답변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라포(rapport)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대체로 인터뷰어의 몫인데, 이 경우에는 인터뷰이가 그런 자리를 만들었다. 저자가 만들어 낸 김혜수 배우에 대한 좋은 인터뷰는 먼저 인터뷰어인 저자의 준비와 역량 때문이겠고, 그런 관점에서 김혜수 배우의 태도도 그 몫이 적지 않겠다.
김혜수 배우가 사회 여러 현상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저자와 인터뷰에서 “배우란 직업은 인간에 대한 많은 관심과 관찰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배우를 시작해 폭이 매우 좁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빈 곳을 채우려고 노력한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MC 자리를 고사한 것 또한 “모르는 이야기를 생각 없이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그다운 이유에서였다. 그런 면에서 “보고 듣고 확인하지 않은 기사는 쓰지 않겠다”는 기자로서 저자의 태도와 닮았다.
“보고 듣고 확인하지 않은 기사는 쓰지 않겠다”는 기자로서 저자의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보지도 듣지도 확인하지도 못한 기사를 쓰는 기자를 만난 경험이 있는 내게는 그 말이 무심히 들리지 않는다. 부디 기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신념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는 김혜수 배우 인터뷰를 통해 먼저 인터뷰이에게 자신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터뷰 기사로 인터뷰이를 설득한다. 그런 이가 인터뷰이를 철저하게 이해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그는 순발력이 없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다지만, 깊이 있는 인터뷰가 어디 순발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는 질문뿐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고 새로운 질문을 준비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깊이 있는 답변을 얻는데 새로운 질문만이 능사일까 싶기는 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대로 질문의 태도가 다르다면 같은 질문으로도 다른 답변을 얻어내는 게 가능하지는 않을까?
저자는 본으로 삼을 만한 좋은 인터뷰 기사를 만들어 내면서도 특출난 재능이 없다고 아쉬워하고 인터뷰 때 분위기 잘 띄우는 동료 기자를 부러워한다. 그래서 그것을 성실함으로 만회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 그는 인터뷰이에게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거나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을 대신해서 더 담백하게 표현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는 찬사를 듣는다.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는 말이다.
지금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자식이 처음 성악을 시작했을 때 함께 공부하던 학생 때문에 꽤 오랫동안 좌절했다. 그 학생이 타고난 재능을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뒤졌고 향상되는 속도도 미치지 못했다. 다행히 그것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노력뿐이라는 걸 깨달아 그 길을 선택했고,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 자식을 낙심하게 했던 학생은 오래지 않아 성악을 그만뒀다. 나는 자식의 재능이 그 학생에 미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저자가 그런 것처럼.
책을 내고 나서 한동안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저자로 불러 인터뷰하자고 했으면 적어도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제대로 된 질문을 받을 때도 있기는 했다. 그때는 오히려 인터뷰가 빨리 끝나는 게 아쉬웠다. 그러면서 인터뷰이의 답변은 질문에 달려있다는 걸 거듭 실감했다. 하지만 준비만으로 좋은 답변이 나오는 건 아니다. 저자가 강조한 질문의 태도도 중요하고, 질문 기술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
하루는 공영방송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개인 채널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담당 피디가 요청을 전하면서 인터뷰어를 거듭 강조해 살짝 마음이 상했다. 그리곤 다른 채널의 몇 배가 되는 질문지를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상했던 나는 그 질문지를 받고 아예 기대를 접었다. 도무지 예정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인터뷰어는 그 모든 질문을 시간 안에 소화했고 나 또한 충분히, 그리고 편안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 비록 조회수는 높지 않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인터뷰를 내가 경험한 최고의 인터뷰로 여긴다.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는데도 지금도 가끔 찾아본다. 넋 놓고. 그럴 정도로 내 답변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건 오로지 인터뷰어의 공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인터뷰이와 라포도 중요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 어디에서도 그런 자기 능력을 말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아서야 어디 그렇게 울림이 있는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저자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한다. 인터뷰어로서뿐 아니라 기자로서,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태도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 태도를 잃지 않기를, 그래서 명품 김혜수 배우가 고백했듯 내 생에 어느 순간 언제든지 마주해도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기자, 참 기자 이충재 주필이 평가했듯 잔잔하고 따뜻한 기사를 쓰는 기자로 남아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