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서경문화사
2016년 4월 5일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의 중동 정책은 인도 지배의 산물이었다. 인도 지배를 위해 통상로를 확보하고 다른 세력이 해군 기지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주재원을 파견하여 걸프 지역을 통치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 간의 도리나 신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의는 오직 자국의 이익, 인도 지배를 온전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지역을 프랑스와 나누어 통치하기로 한다. 동시에 ‘후세인-맥마흔 협상’으로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항쟁을 벌이는 조건으로 후세인의 아랍국가 수립을 지지하지만, 이듬해 같은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1919년에는 ‘파이살-와이즈만 협정’으로 자신들이 배신한 후세인의 아들 파이살에게 아랍국가 수립을 후원하겠다고 약속해 ‘벨푸어 선언’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 1920년에는 ‘산레모 협정’으로 시리아와 레바논을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을 영국이 나누어 통치하기로 하고, 아울러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는 ‘벨푸어 선언’을 재확인한다. 같은 해 ‘세브르 조약’으로 오스만제국 해체 이후 이 지역을 연합국이 분할 통치하기로 하고, ‘영국-프랑스 경계 협정’을 통해 걸프 지역 분할 통치를 매듭짓는다.
이상은 지난 몇 년 동안 중동 역사를 들여다보며 나름 애써 파악한 내용이다. 그런데 단국대 중동학과 홍미정 교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내용을 ‘레반트 지역의 분할 통치 협정과 현대국가 건설’이라는 한 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그동안 그렇게 빙빙 돌아올 필요가 없었을 텐데 싶어 억울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2023년 10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 팔레스타인 역사에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을 읽어 나가다 홍미정 교수의 저서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일하면서 궁금해했던 사우디 역사를 찾는 기대 이상의 소득을 얻었다. 그동안 출간된 중동 서적은 정치 외교에 치우쳐 있었고, 사우디에 관해서는 출간된 책 자체가 드물 뿐 아니라 다루는 내용도 석유가 대부분이었다.
저자가 서술한 사우디 현대사는 이집트의 나세르 혁명에서 출발한다.
1952년 나세르가 중심이 된 이집트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집트공화국을 세운다. 주변 왕정국가에 몹시 불편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사우디의 사우드 국왕(2대)은 반 나세르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1957년 이라크 파이살 2세 국왕을 방문하지만, 이듬해 군부 쿠데타로 이라크 왕정마저 무너진다. 그해 이집트가 시리아와 연합해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우자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드 국왕이 시리아 정보부장을 회유해 나세르 암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암살 시도는 불발에 그치고 나세르의 왕정 타파 영향이 오히려 사우디에까지 미쳐 1958년 아람코 직원인 나세르가 ‘아라비아반도 민중 연합’을 만들어 개혁을 요구하고, 사우드 국왕의 이복동생인 탈랄 왕자가 ‘자유왕자단’을 구성해 나세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입헌군주제를 제안한다.
사우드 국왕의 실정이 계속되자 파이살 왕세제는 압둘라 왕자가 이끄는 국가방위군을 앞세워 사우드 국왕을 축출하고 3대 국왕에 오른다. 축출된 사우드는 자신이 암살하려던 나세르에게 보호받으며 파이살 국왕을 제국주의의 대리인이라고 비난한다. 1962년 나세르가 지원한 예멘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예멘아랍공화국이 들어선다. 이후 나세르가 지원하는 공화파 정부군과 사우디-요르단 왕국이 지원하는 왕당파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난다. 예멘 내전이 이집트와 사우디의 대리전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집트는 예멘 주둔 병력을 1967년에는 7만 명까지 늘린다. 그때 사우드 국왕이 예멘을 방문하자 예멘 대통령은 그를 사우디의 합법적인 국왕이라며 환영한다. 사우디가 이집트에 점령될 위협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67년 예기치 않은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일어나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대패하면서 국면이 전환되어 이집트 점령이라는 악몽에서 극적으로 벗어난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창설한 나세르의 역내 영향력도 극적으로 소멸한다. 사우디가 이스라엘 때문에 기사회생한 것이다.
사우디-이집트 관계의 핵심 그룹 중 하나로 무슬림형제단을 꼽는다.
사우디는 1950년대 나세르 등장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추방된 무슬림형제단에 피난처를 제공한다.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하자 1962년 파이살 왕세제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세계무슬림연맹을 결성하고 이집트에서 추방된 무슬림형제단을 연맹을 비롯한 정부 각 기구에 적극 고용해 아랍민족주의에 맞선다. 이후 무슬림형제단은 사회주의 이슬람 운동인 사흐와 운동을 주도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1990년 걸프전 당시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하기 위해 파드 국왕(5대)이 미군 주둔을 요청하자 이슬람 땅에 이방인을 들여놓는다며 그 결정을 강력히 비난해 정부와 대립한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알카에다를 견제하기 위해 1999년 무슬림형제단을 다시 복권한다. 2010년 중동을 뒤흔든 ‘아랍의 봄’ 당시 무슬림형제단이 사흐와 운동을 강화하자 정부는 2014년 무슬림형제단을 테러 집단으로 지정해 현재에 이른다.
사우디에서 십수 년 일하면서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나 심지어 종파 전쟁으로 사우디와 격돌하고 있는 이란을 비롯한 시아파 국가들에서도 이슬람이 종교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저 종교로 포장한 정치도구라고 해도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저자가 서술한 무슬림형제단의 활동도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며 일어난 이란-이라크 8년 전쟁은 1988년이 되어서야 끝난다. 막대한 전쟁 부채를 걸머진 사담 후세인이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부채 탕감을 요구하지만, 양국은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사담 후세인이 1990년 2월 쿠웨이트를 공격하면서 걸프전이 시작된다. 사담 후세인이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까지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파드 국왕은 미국에 파병을 요청하고, 그 결과 100시간 만에 이라크 패배로 막을 내린다. 이 상황에서 걸프 왕정국가들은 이라크를 견제하기 위해 이란과 협상에 나선다. 사우디는 1980년대 초반에 반정부 시위를 빌미로 추방한 동부지역 시아파 이슬람 지도자를 복귀시키고, 이란 외무장관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비난하고, 2001년에는 사우디와 이란이 안보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전까지는 사우디-이란이 협력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슬람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 긴장 관계로 돌아선 양국이 화해 분위기에 올라탄 것이다. 하지만 2001년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면서 양국은 다시 맞서게 된다.
사우디에는 국방부 산하의 정규군 말고도 국가방위군이라는 군대가 따로 있다. 여기에 경찰과 정보를 관장하는 내무부까지 세 무력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방부는 술탄 왕세제가 48년, 국가방위부는 압둘라 국왕(6대) 부자가 55년, 내무부는 나예프 왕세제 부자가 42년 장관을 역임했다. 전제왕정국가이기는 하지만 무력 집단을 한 집안이 50여 년을 지배하고 있다면 결정을 국왕 마음대로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모두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왕세자 부자의 손으로 다 넘어갔지만.
하지만 각 무력 집단의 규모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정규군이 12만5천 명이고 국가방위군이 10만 명 정도이다. 내가 부임하던 2009년 당시보다 짐작했던 것보다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국왕으로 재위하는 중에도 국가방위부를 직접 관장하면서 병력을 상당히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조직이니 무기 체계나 도입 정책이 다른 게 당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 집단 모두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정규군은 미군 중앙사령부 휘하의 미국 군사훈련단, 국가방위군은 미군 물자사령부 휘하의 군 현대화프로그램 관리소, 내무부는 미국-사우디 기술협정을 바탕으로 협력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살만 국왕(7대) 즉위 이후 이 모두 국왕의 통제를 받고 있으니 이 책이 출간된 2016년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사우디는 언론 통제가 심해 뉴스를 신뢰하기 어렵다. 모든 언론이 정부 기관지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이다. 저자에 따르면 내가 근무하는 동안 사우디에서 반정부운동이 상당수 일어났는데, 동부 시아파 거주지인 카티프에서 소요가 있었다는 것 말고는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다. 카티프 소요도 종파 갈등 정도로만 알았다.
저자에 따르면 최근만 해도 2011년 2월 셰이크 살만 아우디를 포함한 1,550명이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회 선출, 국왕과 총리 분리를 요구했고, 2013년 3월에는 또다시 정치범 석방과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2013년 10년 형을 선고받은 인권운동가 두 사람의 석방도 요구했다. 나는 사우디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뉴스를 전혀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듣지 못했다. 사우디는 전제왕정국가이니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저자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반정부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저자는 생각만큼 반정부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추론의 배경을 밝힌다.
“사우디 사회 내에는 왕가에 대항하는 반대파의 구심점이 될 만한 내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적극적인 외부 후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왕가는 살라피ㆍ와하비ㆍ사흐와 운동과 같은 온건 이슬람, 알카에다 같은 급진 이슬람,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온건 시아파, 사우디 왕국 타도를 내세우는 급진 시아파를 적절히 이념 논쟁에 끌어들여 이들의 대립을 부채질하고 그것을 이유로 탄압하기를 되풀이했다. 분할 통치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나야 사우디에 관심이 많으니 사우디 현대사를 중심으로 이 책을 읽기는 했지만, 이 책은 중동 전체의 현대사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중동 경제의 중요한 부분인 송유관 건설 현황도 그동안 검색으로 확인했던 것보다 여기 수록된 내용이 훨씬 자세하다. 걸프협력체 5개국의 형성 과정은 물론 하심가문에서 출발한 요르단-시리아-이라크, 그리고 지금까지 알아 온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컸던 이집트의 실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새로 구매해 밑줄 긋고 메모해 가며 두 번을 읽었다. 아마 앞으로도 여러 번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동 현대사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중동에 관심 있는 이에게 강하게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