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by 박인식

혜인 아범이 어제 비스바덴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개막공연에서 노르웨이인 선장 달란트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바그너 오페라로서는 여덟 번째 작품입니다.


바그너 오페라는 쾰른 오페라극장 2010시즌부터 출연했습니다만,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으로 옮긴 후인 2016시즌부터였습니다. 흔히 ‘바그너 링 시리즈’로 알려진 4부작 ‘니벨룽의 반지’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에서 파프너 역으로 출연한 것이지요. 이어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에서는 훈딩 역으로, 세 번째 작품인 <지그프리트>에서는 파프너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네 번째 작품인 <신들의 황혼>에는 베이스 주역 가수가 맡을 역할이 없습니다) 이후 <탄호이저>에서는 튀링겐 영주 헤르만 역으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는 포그너 역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마르케 국왕 역으로, <로엔그린>에서는 하인리히 국왕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출연 작품을 보며 느끼셨겠지만, 그동안 혜인 아범은 주로 국왕이나 영주, 제사장처럼 선이 굵은 역할을 맡아 노래했습니다. 그런 역할은 하나같이 주변에 누군가 거느리고 있거나 군중과 떨어져서 혼자 서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체격이 큰 게 유리합니다. 혜인 아범이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양인으로는 예외적이라 할 만큼 큰 체격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함께 출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역을 맡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핸디캡으로 여겼던 체격이 오히려 강점이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중기 작품으로 1841년에 완성하고 1843년에 드레스덴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3막의 오페라입니다. 북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하이네의 소설을 바탕으로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쓴 작품이지요.


네덜란드인 선장 반데르 데켄은 아프리카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을 만나는데, 선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고집하다가 좌초되어 침몰하고 맙니다. 배가 침몰할 때 선장이 신들을 저주하자 분노한 신들은 선장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신들에게 저주받은 네덜란드인 선장은 유령선이 된 자신의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신들은 그에게 7년에 한 번씩 상륙을 허락하는데, 그때 그를 영원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면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오페라에서 네덜란드인 선장은 젠타라는 노르웨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젠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한 선장이 떠나려 하자 젠타는 바다에 몸을 던져 사랑을 증명합니다. 오페라는 사랑을 얻어 저주가 풀린 네덜란드인 선장과 젠타가 승천하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여성의 신실한 사랑이 구원을 이룬다는 이런 이야기 구조는 2년 뒤 발표된 <탄호이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등장인물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베이스-바리톤, 유령선 선장

○ 젠타; 소프라노, 달란트의 딸

○ 달란트; 베이스, 노르웨이 선장

○ 에릭; 테너, 젠타의 연인이며 사냥꾼

○ 마리; 메조소프라노, 젠타의 유모

○ 달란트의 항해사; 테너


줄거리


[제1막]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운 바다


노르웨이의 잔드비케 만. 노르웨이 선장 달란트가 이끄는 배의 선원들은 험한 폭풍우 속에서 배를 해안에 대려고 애를 씁니다. 선장은 선실로 들어가서 쉬고 갑판에 남은 키잡이는 졸음을 참으며 고향의 연인을 그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천둥 번개와 폭풍우를 헤치고 Mit Gewitter und Sturm

https://www.youtube.com/watch?v=JKFpYmOGlzY


그 사이 네덜란드 유령선이 소리 없이 곁으로 다가옵니다. 유령선 선장이 배에서 내려 “그때가 다가왔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저주받은 자기 운명에 대한 독백이지요.

기한이 다 되었다 Die Frist ist um

https://www.youtube.com/watch?v=sqqsmP0NzPM


잠에서 깨어난 달란트 선장이 갑판으로 나오다 낯선 배 한 척이 옆에 정박해 있는 것을 봅니다. 달란트를 만난 네덜란드인 선장은 옛날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악마에게 구원을 요청한 이유로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바다를 헤매게 되었다는 사정을 털어놓으며 7년에 한 번씩 육지에 올라와 자기를 구원해 줄 여인을 찾아야만 하는 신세를 한탄하지요. 네덜란드인은 달란트에게 많은 재물을 줄 테니 재워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던 중에 달란트에게 딸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딸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달란트 선장은 언젠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전설 들은 걸 기억하고 바로 이 사람이 그라는 걸 알고 놀랍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저주받은 운명을 동정하는 심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딸 젠타와 결혼하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집으로 데려갑니다. 젠타 이야기를 들은 네덜란드인은 이제야 저주에서 자기를 구원해줄 여인을 만날 수 있다고 기뻐합니다.

[제2막] 달란트 선장의 집


마을 처녀들이 넓은 방 안에 모여 앉아 물레질하며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곡을 노래합니다.

흠, 휘이, 물레질하세 Humm und brumm, du gutes Rädchen

https://www.youtube.com/watch?v=aEefVxgq1Bw


다들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일하지만, 달란트의 딸 젠타는 벽에 걸린 전설적인 네덜란드 선장의 초상화만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그러다 마을 처녀들에게 저주받은 네덜란드인 선장과 유령선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 줍니다. 숨 막히는 전율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아리아이지요. 젠타가 저주받은 그 선장을 사랑으로 구원하겠다고 말하자 마을 처녀들은 어떻게 그런 무모한 사랑을 할 수 있느냐면서 놀랍니다.

그 배를 보았나요? Traftihr das Schiff?

https://www.youtube.com/watch?v=Oq7WMfQy2Po


젠타의 연인인 에릭이 들어와 달란트 선장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전합니다. 마을 처녀들이 선원들을 마중하러 항구로 나가자 에릭은 젠타에게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허황한 꿈 때문에 멀리 떠나지 말고 고향마을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젠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달란트 선장이 바로 초상화의 그 네덜란드인 선장을 데리고 들어섭니다. 젠타는 마법에 취한 듯 전율합니다. 달란트 선장은 딸인 젠타에게 선장과 결혼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얘야!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Mögst dumein Kind?

https://www.youtube.com/watch?v=EPW3hWllyhA


그러고 나서 만일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말합니다. 달란트 선장은 젠타에게 보석을 보여주지만 젠타는 선장만 바라봅니다. 그 모습을 본 네덜란드인 선장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여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임을 확신하지요. 모든 게 운명이라고 믿은 젠타는 죽음이 올 때까지 선장을 사랑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말을 들은 네덜란드인 선장은 구원의 기쁨에 넘쳐 그의 배로 돌아갑니다.


[제3막] 무대 앞쪽에는 달란트의 집이 있고 한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달란트 선장의 선원들은 무사히 고향에 돌아온 걸 기뻐하며 힘차고 웅장하게 노래합니다.


망보는 선원이여, 이제 그만 Steuermann, lass die Wacht

https://www.youtube.com/watch?v=s1M30Zk93Yc


마을 처녀들이 음식을 네덜란드인 선장의 배에 가져다주기 위해 몰려나옵니다. 하지만 그의 배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달란트 선장의 선원들은 마을 처녀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유령선 선원들은 모두 죽었고 선장은 바로 전설 속의 저주받은 네덜란드인이라며 떠들어 대지요. 마을 처녀들은 두려워하며 음식 담은 바구니를 맡겨놓고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다는 잠잠한데 갑자기 유령선 주위에서만 파도가 높이 치솟고 유령선 갑판에 파란 불꽃이 넘실댑니다. 불길 사이로 선원들의 모습이 유령처럼 나타납니다. 선원들은 이번에도 자기 선장이 신부를 찾지 못하면 또다시 7년을 방황해야 한다며 낙심합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집니다. 집에서 나오는 젠타를 뒤쫓아온 에릭은 젠타가 낯선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약속한 것 때문에 몹시 화를 냅니다. 에릭은 예전에 젠타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을 회상하며 노래합니다.

그날을 더 이상 기억하려 하지 않는구려 Willst jenes Tags du nicht dich mehr entsinnen

https://www.youtube.com/watch?v=7mZcoFbR0oQ


이 노래를 들은 네덜란드인은 젠타가 순결하지 않다며 비난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여인은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도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 그는 선원들에게 돛을 올리라고 소리치며 비통한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또다시 바다로 떠나야 한다 Fort auf das Meer

https://www.youtube.com/watch?v=xQw-ztwzVv4


젠타는 네덜란드인을 향한 자기 사랑이 진실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이 모습을 본 에릭은 어이없게도 젠타가 악마와 손을 잡았다면서 안타까워하지요. 젠타가 네덜란드인을 따라 배에 오르려 하자 아버지 달란트 선장과 에릭, 마을 처녀들, 선원들이 모두 말립니다. 네덜란드인의 배가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젠타를 놓아줍니다. 그러자 젠타는 주위 사람들을 뿌리치고 절벽 끝으로 달려 올라가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외친 뒤 바다로 몸을 던집니다. 그러자 마침내 저주가 풀린 유령선은 산산이 부서져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네덜란드인과 젠타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473727242_998383868979778_7236751891924116335_n.jpg
473741049_998385295646302_5766573676912720629_n.jpg
474511473_998384842313014_4446478252618576660_n.jpg
KakaoTalk_20250120_091904240_02.jpg
KakaoTalk_20250120_091904240_06.jpg
KakaoTalk_20250120_091904240_08.jpg
KakaoTalk_20250120_091904240_1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베이스 박영두, 베토벤 <피델리오 Fide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