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니콜스
정혜윤 옮김
오르마
2017년 9월 7일
대학 졸업하고 칠십 대에 접어든 지금껏 자료를 찾고,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이용해 보고서를 써왔다. 나름 전문적인 능력이었는데, 검색이 일반화되면서 이젠 아이들과 겨루기도 버거울 정도가 되었다. 젊었을 때는 출장 간 날이 사무실 근무한 날보다 훨씬 많았다. 대부분 교통이 불편한 현장이어서 늘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지리에 매우 밝게 되었고, 초기 몇 년을 빼고는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었다. 어느 날 내비게이션이 생기면서 전문 기능 하나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통신이 전문가와 전문 기능을 무력화 시킨 것이다. 저자는 이를 ‘전문지식의 죽음’이라고까지 말한다.
지금 사회는 ‘전문지식의 죽음’에 이른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말하고 있는 사람이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대놓고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지경이 되었다. 전문가에게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재앙적인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에이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단체가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HIV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AIDS의 원인이라는 의학적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이름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도 있었다. 남아공 음베키 대통령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HIV 치료제와 HIV 전염을 막기 위한 원조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아 삼십만이 넘는 남아공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감염을 피할 수 있던 아이들 35,000명이 HIV 양성반응을 보였다. 무지한 유명인이나 공인이 백신이 위험하다는 잘못된 믿음과 정보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 그들의 말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질병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한 폐해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이 해롭기만 하다는 말은 아니다. 인터넷은 짧은 시간에 세계의 지식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문제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의 가치나 신뢰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의 지적 수준과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침내 온라인 전체가 비전문가들의 블로그 글로 도배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에 이어 21세기의 새로운 언론 생태계의 폐해 또한 그 못지않다고 지적한다.
“21세기의 새로운 언론 생태계에서는 인터넷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이전보다 더 빨리 퍼져나가며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 일반인이 전문가를 향해 신문에서 읽었다거나 뉴스에서 봤다고 응수할 때 사실은 그 정보가 뉴스나 신문에서 나온 게 아니라 뉴스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사이트에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1960년대 보통의 미국 가정에서는 TV 채널 세 개, 라디오 채널, 여덟 개, 신문 하나, 잡지 서너 개를 볼 수 있었다. 2014년에는 TV 채널 189개가 나오고 그중 17개 채널을 꾸준히 틀었다. 여기에 핸드폰과 컴퓨터를 통해 소비자 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미디어 데이터의 양 또한 엄청나다. 하지만 그게 정보의 질이 더 나아졌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미디어 회사에서는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독자가 원하는 정보’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게 인터넷과 21세기의 새로운 언론 생태계가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만일까? 인터넷과 새로운 언론 생태계 때문에 얻은 그 정보의 가치나 신뢰도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과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학력 인플레에서 찾는다.
“오늘날에 대학 졸업은 더 이상 교육적 성취가 입증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많은 미국 대학은 학생에게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믿으며 대학을 졸업한다. 학생 수만 많은 게 아니라 교수도 너무 많다. 최고의 대학들이 앞장서서 박사 학위를 남발하고 있는 탓이다. 예전에는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교수라는 칭호가 이제는 제멋대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 비슷한 기관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교수로 불린다. 지역 주민 요구에 맞추어 만들어진 학교들이 종합대학으로 재탄생했다. 대학 신입생 가운데 상당수가 대학 수업을 감당할 실력이 안 되며 상당한 보충수업이 필요한 상태이다. 대학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능력도 안 되는 학생을 받아들이는 게 대학 처지에서는 그리 나쁜 것 없는 장사이다. 돈을 좇기 때문이다.”
“학교 행정부서에서는 학생들이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학생 성적이 나쁜 것을 뭔가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스스로 대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친다. 2009년까지 200개 대학을 조사해 본 결과 A가 가장 흔한 학점으로 1960년 이후로 거의 30% 증가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과목에서 A학점과 B학점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이런 흐름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12년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많이 줬던 학점이 A였다. 예일대학은 대학에서 주는 학점 60%가 A나 A+이다. A는 이제 뛰어남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그 과목을 이수했음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학점을 곧이곧대로 주겠다는 교수는 곧장 자기 학생이 다른 학생들보다 능력이 떨어져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만다.”
8년 전에 미국의 상황을 바라보며 개탄했던 저자가 쓴 이 글은 오늘 한국에서 발간되는 어느 신문엔가 실린 칼럼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학에서 강의 몇 번 했다고 교수가 되고, 심지어 문화센터 강사도 교수라는 직함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교수며 전문가라는 칭호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거기에 대학 졸업한 이들이 자기 지식수준을 오해해 전문가를 우습게 아는 풍조까지 생겨난 것이다.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정보란 걸러지고 검증되고 적절한 자리에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지식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검색엔진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검색엔진은 아무런 가치 판단도 하지 않고, 편집자로서 개입하지도 않고, 모든 정보를 똑같은 속도로 펼쳐 보인다. 그렇게 올라온 어떤 정보는 “엉성해서, 의도는 좋으나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올려서, 탐욕이나 악의로 올려서” 오히려 해를 끼친다. 저자는 “인터넷은 엄청나게 편리하지만, 그것은 이미 조사하는 법을 훈련받고 자기가 찾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허약해진 대학 교육으로 정보의 출처나 저자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일이 없는 학생이나 일반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내가 우려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의견이다.
또한 검색엔진은 그렇지 않아도 허약해진 판단 능력과 끈기마저 무너트린다. 그것은 저자 말대로 “단 몇 초 만에 수백만 개의 결과가 그럴듯하게 펼쳐지는데 굳이 지루한 탐색 과정을 거쳐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터넷은 우리가 읽고 추론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꾼다. 이런 즉각적인 소통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사람은 정보를 흡수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데 인터넷은 사이 생각 없이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문가 의견을 더욱 귀담아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전문가가 늘 정확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아야 할 것인데, 우리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전문가도 틀릴 수 있다. 그것을 두고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실패라기보다는 과학과 학문의 필요 불가결한 과정이며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자신들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다거나 모든 인간이 지니는 결점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전문가 자신이 전문 분야를 억지로 확장할 때 실패할 수 있다. 자기 분야를 벗어나지 않더라도 설명에서 예측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실패가 발생한다. 예측을 강조하는 것은 과학의 기본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과학의 임무는 예측이 아니라 설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설명보다 예측을 원한다. 전문가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특정 사실에 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다른 모든 사실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분야를 벗어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말하거나, 설명이 아니라 예측을 내어놓는 전문가의 견해는 거르라는 것이다. 진짜 전문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이보다 더 선명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한 대목이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 중 이보다 더 공감했던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있다. 바로 책의 역할이다.
“책은 출판사가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저자와 편집자와 감수자와 발행인을 거쳐야 출간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평판이 좋은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을 검증받는다. 그래서 책이 유일한 지식 습득 통로였던 예전에는 책이 잘못된 정보가 급속히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전문가를 경시하는 풍조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아 올바른 정보를 구분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며, 올바른 정보를 구분할 능력을 키우려면 책을 읽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책을 가까이하시라. 그러면 전문가의 합리적인 의견이 인정받고, 그래서 쓸데없는 인적 물적 낭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