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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2.14 (금)

by 박인식

동해는 해돋이만 좋은 줄 알았다. 이제 보니 바다 위로 떠 있는 달도 기막히지 않은가. 아홉 달 내내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 밤에 그걸 알게 되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현장에 내려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일하는 내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관계사들과도 잘 지냈다. 예전에 다혈질이었던 나를 기억하는 후배들은 그게 오히려 의아했던 모양이다. 고생스러웠던 사우디 마지막 몇 년 동안 뾰족함이 많이 갈리긴 한 모양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대로 그 고생이 오히려 감사할 일이 되었다.


2월 17일부터 본사로 출근한다. 2009년 2월 18일에 떠났으니 꼭 16년 만에 귀환인 셈. 여의도가 아니라서 낯설기는 하겠지만. 서울로 돌아온 후 놀랄만한 일이 줄지어 일어났는데, 본사 출근이 그중 압권이 아닐까. 1982년 12월 입사해 서초동 4년, 여의도 23년, 사우디 13년, 전문위원 2년.


졸업하고 국책 연구원에서 삼 년 근무하는 동안 내 머리로는 못 따라가겠다 싶었다. 민간기업에서는 부지런하고 끈질기기만 하면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에 기회가 생겼고. 그랬으니 쉽게 옮기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그게 40년을 넘길 줄은 몰랐다.


오래도록 갈망하던 일이 지척에까지 왔다. 손에 넣은 줄 알았던 일을 어이없이 놓쳤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데, 이번에는 기필코 성사시켜 갈증도 풀고 트라우마도 날려버리리라.


내일 해돋이 보는 게 당분간 마지막이겠구나.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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