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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1.27 (월)

by 박인식

어렸을 때도 눈을 기다렸던 기억은 없는데 오히려 나이 들어 눈이 기다려진다. 눈 없는 나라에서 오래 살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영상 10도 아래만 되어도 귀마개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날 정도였으니. 오늘 아침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눈 뜨자마자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그럴듯하다. 눈 쌓인 안산자락길을 한번 다녀올까 했는데 어영부영 시간을 놓쳤다. TV 틀어놓으니 잠깐 사이에 두 시간이나 흘렀다. 이렇게 억울할 데가. 은퇴하고 나서도 시간에 대한 강박을 털어내지 못했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니 강박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한동안 종이책을 볼 수 없게 되어서 요즘은 틈틈이 전자책을 찾아 구매목록에 올려놓고 있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있다는 이야기 들은 건 오래되었는데, 며칠 전 두 달 무료 서비스 쿠폰을 받아 어제 비로소 목록을 들여다봤다. 사려던 신간은 한 권도 찾지 못했지만 오래전에 출간된 책을 꽤 여러 권 건졌다. 한 달 구독료 7,700원을 내면 크레마클럽에 올라와 있는 책 전체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고, 그중 4,500원은 책 구매 쿠폰으로 돌려주니 결국 3,200원으로 그 많은 책을 마치 내 책처럼 읽을 수 있는 셈이다. 당장 구매목록에 올려놓은 책 중에서 열 권 가까이 건졌다. 그 책값만 해도 3년 치 구독료가 넘는다.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는데 내 책도 들어있다. 나야 책을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고,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지만, 책 쓰는 걸 직업으로 삼은 이들은 이런 구독 서비스를 보는 마음이 나 같지는 않겠다. 혹시나 해서 유명 저자 이름으로 검색하니 거의 올라와 있는 책이 없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은 단 한 권이 없고, 유명 작가나 유명 작품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대항력 없는 작가나 작품만 올라와 있는 셈이 아니냐. 책 좋아하는 나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왠지 떨떠름하다.


모바일로도 전자책을 읽을 수야 있지만 오래 읽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렇다고 책 읽자고 컴퓨터를 열어놓기도 그렇고. 결국 전자책을 읽으려면 별도의 기기가 필요한 일인데, 전자책 리더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 잠시 주춤대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태블릿PC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인공지능에 물어보니 가독성은 리더기가 낫고 활용성은 태블릿PC가 높단다. 그러면 리더기가 답. 가독성 때문이 아니라 태블릿PC의 장점이라는 활용성 때문이다. 활용성이라는 게 결국 곁길로 샐 수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잠깐 한눈팔다 보면 몇 시간 까먹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냐.


전자책의 불편한 점으로는 메모하기 어렵고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걸 꼽을 수 있는데, 이게 리더기를 잘 골라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내가 사용법을 좀 더 익히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알만한 분이 계시면 조언을 부탁드린다. 가능하면 리더기 소개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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