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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5.02.15 (토)

by 박인식

매 순간 힘을 다해 살았다. 그렇게 쏟은 노력 중 얼마는 열매를 맺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파편이 되어 날아갔다. 간혹 그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생긴 게 그 모양인데 바꾼다고 바뀔까 싶기도 하고 애먼 데 힘 빼느니 그냥 살던 대로 살지 싶었다.


지난 몇 달 즐겁게 일할 수 있어 감사했다. 편안히 살았다 싶었는데 내심 긴장이 되기는 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오니 맥이 풀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앉아 있어도 편치 않고 누워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초저녁부터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묵상하는데 문득 파편처럼 날아가 버린 것으로 여겼던 그 시간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결실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디 마지막 몇 년은 몹시 힘겨웠다. 그래도 원망은 들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미련 남지 않을 만큼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마저도 감사한 일이었다. 원하는 바를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택했다고 거기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만 애쓴 것이 비해 뭐 하나 변변히 거두지 못하고 은퇴하는 게 못내 섭섭했을 뿐. 거둔 건 없어도 힘겨웠던 만큼의 의미는 있는 경험이었는데, 그것마저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고.


젊었을 때 기도는 늘 추진하는 일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계획한 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바른 일인지, 추진하는 과정이 바른지 묻고 또 물었다. 차마 내놓고 조르지는 못했어도 구하는 대로 허락해주십사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구하는 것 어느 하나도 알뜰하리만치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근근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게 의탁하였으니 네 삶을 내가 책임은 지겠으나, 네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이끌어가리라.”

이제 또 다른 기회를 앞두고 있다. 끝내 이루지 못할 줄 알았던 일이다. 그를 이루기 위해 남은 시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애쓸 것이지만, 이제는 그 일을 이루어주십사 기도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게 믿는 이로써 바른 모습도 아니고, 의미 없는 일인 것도 수없이 깨달았으니 말이다. 매 순간 지혜롭게 판단하고 남김없이 힘을 다 쏟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할 뿐.


謀事在人이요 成事在天이라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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