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오면서 자료 관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만큼 철저했다. 본사에서 일하는 동안 모든 자료를 나름의 분류 체계를 갖춰 관리했고, 사적인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부터 내가 작성한 모든 파일 역시 개인 노트북에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다른 부서와 협업할 때도 우리 해당 업무뿐 아니라 연관된 자료를 모두 챙겼기 때문에 오히려 주관 부서에서 내게 자료를 요청한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자료를 요청하면 마다하는 동료가 없었다. 내게 자료가 들어가면 언제든 필요할 때 얻어 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소문이 나서 나중에는 먼저 자료를 보내주는 경우도 생겼다.
이번에 추진하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예전에 만들어놨던 자료가 있으면 해야 할 일이 절반 이상은 줄어들 텐데, 현지법인으로 옮기던 당시만 해도 스캐닝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파일로 만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당장 필요한 자료 중 어느 정도는 검색으로 다시 찾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자료는 아무리 애써도 찾을 수가 없었다. 떠날 때 잘 정리해서 넘겨주기는 했는데 설마하니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싶었다.
오늘 혹시나 예전 자료가 남아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서고에서 몇 권을 꺼내오는데, 바로 내가 찾던 자료가 아닌가. 이번에 함께 일하는 동료 가운데 나만큼이나 자료 관리에 진심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꼼꼼하게 모든 자료를 잘 챙겨놓았더라는 말이다. 어찌나 고맙던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자료를 잘 관리해 놓은 것이겠지만, 내게는 그게 선배에 대한 존중으로 비쳤다. 그 친구는 아마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자료 중에 25년 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직원 교육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도 있던데, 지금 만들라고 해도 그만큼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하고 꼼꼼하게 만들었다. 징그러울 만큼. 열심히 살기는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