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5.03.07 (금)

by 박인식

서울로 돌아온 다음 달인가부터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온라인에서 알게 된 분이 참석을 권해 선뜻 그러마고 했다. 2021년 연말 가까운 어느 날 퇴계로 대한극장 맞은편에 있는 찻집에서 열렸던 모임 이후로 얼마 전까지 꾸준히 참석해왔다. 지난봄에 경주 현장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한두 번 참석한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 모임에 가 있다.


첫 모임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혜인 아범 또래의 직장인이 이끄는 모임이고 주로 젊은이들이 참석한다는 건 알았는데, 그들이 모두 탈북 청소년이었는지는 몰랐다. 나로서는 젊은이들과 그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그렇고 더군다나 탈북 청소년이라고는 만난 일조차 없으니 어색하기는 했다. 그들 모두 우리 청소년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는데도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생각하는 게 여느 청소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이는 어려도 탈북하고 적어도 사오 년씩은 지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십 년이 넘은 친구들도 있었다.


모임을 이끄는 분은 탈북 청소년을 어떻게 도울지 생각하다가 독서모임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 모임 덕분에 평소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책도 몇 권 읽었고, 꽤 오랜 시간 박완서 소설을 집중해 읽기도 했다. 한번은 박완서 소설 연구자를 초청해 특별 해설 시간을 갖기도 했다. 탈북 자매의 어머니께서도 꽤 열의를 갖고 참석하셨다.


그들을 만나는 동안 생각 밖으로 청년들과 거리감 없이 지낼 수 있어 내가 청년들과 친화력이 좋은가 착각한 일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이 북한에서 겪은 모습과 내가 그 나이 때 이곳에서 겪은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말하자면 남북한이 짧으면 30년 길게는 40년쯤 차이 나는 게 아닌가...


그중에 아주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하나 있었다. 체격에 비해 말소리는 작고 부드러웠다. 의식을 하고 봐도 탈북 청년으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만큼. 여러 사정으로 자주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껏 다섯 손가락을 채울 만큼은 만났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친구 하나가 독립영화 감독으로 만든 첫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엔 멋진 여자친구와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자상하고 따듯한 친구였다.


작년 6월 경주 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나니 생각만큼 잘 참석하게 되지 않았다. 주말에만 올라오니 주말에 할 일이 늘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을 이끄는 분이 그 친구가 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암이라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소식을 듣고도 병문안 한번 가지 못했다. 어쩌면 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암 투병이라니.


나는 사실 그런 고통을 겪는 이들을 만나는 일에 매우 서툴다. 짧지 않은 날을 살아왔지만 그럴 때 어울리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매번 쩔쩔매고 엉거주춤해야 했다. 우선 내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은 어땠을까. 빈말뿐인 덕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기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나로서는 그 자리가 어색하고 서툴 수밖에 없는 일.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그를 찾지 못했다. 물론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그가 마지막 순간에 월간지와 인터뷰한 사실을 알았다. 장례 치르고 기사가 한 번 더 실렸고.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이것저것 모두.


인터뷰에서 그는 남한에 내려와 해보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서 아무런 원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게 빈말이 아니라 가감 없는 자기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느낌이 늘 그랬기 때문이다.


잘 가시라, 편히 쉬시라. 박성렬 형제!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H&nNewsNumb=202412100049&fbclid=IwY2xjawI34BhleHRuA2FlbQIxMQABHeLD48uBUHaJFN6Fmn8OnIMhJo0vTN-QXmKqGfujSs_NAl2FRtoAMKMogg_aem_Ks3bE9KzUFp_vtJnmN2yYA

https://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nNewsNumb=202503100030&page=1&fbclid=IwY2xjawI34ChleHRuA2FlbQIxMAABHTxX8lfuv07w0zgoUnnVYsWT3ND5ajgmxh2Emg5euoiwYjNtjLRGvqxifQ_aem_zn-BSTNLLxPaWcPvPfai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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