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by 박인식

바른 신앙생활 (2018.09.07)


바른 신앙생활은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열심을 내는 것은 종교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니다. 전심을 다해 예배드리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여기고, 헌금을 아낌없이 드리며, 바쁜 중에도 교회 곳곳을 돌보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이들을 우리는 ‘본받을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들의 ‘본받을만한’ 모습은 세상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신앙생활과는 무관한 종교생활, 종교의식을 강화할 뿐이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꾸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선교 (2018.09.07)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모든 교회는 선교를 교회 존재의 이유로 여긴다. 아쉬운 것은 많은 교회가 예수께서 선교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를 통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가르치신 그대로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 바로 그것이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바라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가 구하고 이르기를 힘써야 하는 목표는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고, 선교는 그를 이루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니, 선교에 앞서 교회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고 격려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면 좋겠다.



중보기도 (2018.09.11)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손길을 지켜보는 것은 고단한 삶 가운데 큰 위로가 된다. 비록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손길을 당장 볼 수는 없다고 해도, 이웃의 삶을 지키시는 그 하나님께서 내 삶도 지켜주실 것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중보기도의 은혜는 이웃보다 오히려 내가 먼저 입는 게 아닐까 한다.



중보기도 (2018.09.11)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면서 삶과 죽음,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 음성 (2018.09.11)


부서 경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난관을 타개할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과 시작 전에 머리를 파묻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일을 시작하려는데 후배가 전화를 했다. 영두가 호주에 가서 묵을 집을 마련해놨다고 했다. 그때 영두가 속한 선교합창단에서 호주 한인교회에 초청을 받아 연주하러 갈 참이었는데, 후배가 마침 그 교회에 다니는 선배 댁에 갔다가 소식을 듣고 영두를 잘 챙겨주기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교회에서는 단원들을 모두 교우 가정에서 묵게 할 계획이었고, 그 선배께서도 몇몇 단원을 챙길 생각이어서 흔쾌히 그러마고 했단다.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선배 댁이니 영두에게 좀 더 신경을 쓰겠지만, 다른 교우 댁에 묵었다고 그보다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온 몸에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것이 전화 받기 직전에 기도했던 것에 대한 응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 전화가 “네 자식이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먹고 자는 것까지 이렇게 챙기는데, 넌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냐?”는 하나님 음성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두드렸던 문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고, 수년 간 지속되던 최악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십오 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온 몸에 전율이 인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토록 선명하게 하나님 음성을 들어본 일이 없다. 내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만큼 바닥은 아닌 모양이다. 하나님 음성은 고통 중에 더욱 선명해지니 말이다.



이웃을 위한 삶 (2018.09.11)


평생 나와 내 가족, 내 직장을 위해 살아왔다. 이기적인 삶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이웃을 위해 살고 싶다. 그렇게나 해야 훗날 하나님 뵙기가 덜 민망할 것 아닌가.


이웃을 위해 살자니 힘도 있어야겠고 돈도 필요하겠다. 몇 년 전부터 몸과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이웃을 위하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을 낸다. 힘을 키우는 건 그런대로 해결하겠는데 모아놓은 재산이 있는 것이 아니니 돈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삶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여유가 없으니 아껴 쓰는 수밖에. 혹시 알겠나, 기특하다고 좀 더 일할 기회를 주실지.



꿈속에서 일하기 (2018.09.15)


설계 입찰에서는 참여기술자 사업수행경력이 당락을 결정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입찰에 사업수행경력 평가가 반영되기 시작했을 때 이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책임을 맡았다. 분야가 워낙 많고 분야마다 특성이 다르니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분류체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분류체계를 고안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게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수백 개 사례를 적용해 봐야 하니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여간 맥이 빠지는 게 아니었다.


분류체계에서 막혀 한동안 답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씨름을 계속했다. 주말 오후, 여기에 매달려 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그 일에 매달려 있었는데, 마침내 해법을 찾았다. 잠이 깨었는데도 기억이 너무도 생생했다. 얼른 메모를 했다. 그리고 정말 모든 문제가 풀렸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다시 그런 경험을 해 본 일은 없지만, 그 후로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더 이상 비웃지 않게 되었다.



복지 (2018.09.18)


혜인이는 스물세 살까지 독일정부로부터 아동수당을 받는다. 혜인 엄마는 혜인이 낳고 한 해 동안 출산수당을 받았다. 출산으로 소득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혜원이까지 생겼으니 가계에 도움이 적지 않겠다. 외국인인데도 그런 혜택을 받는 혜인이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그런 복지가 펼쳐지겠나 싶어 부러웠는데, 이번 달부터 아동수당을 지급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반갑다.


그렇다고 독일의 아동복지가 모두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혜인이가 유치원 다닐 때 낸 원비는 아동마다 모두 다르다고 했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원비가 결정되는 건 알지만, 자기네가 왜 그만큼 내야하는지도 모르고, 다른 집은 얼마나 내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모든 가정에 똑같이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나 사는 형편에 따라 유치원 원비를 다르게 내는 정책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야 했겠나. 치열한 논쟁도 있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아동수당 지급에 대해서도 현금성 복지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소득수준 상위 10%를 제외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오히려 제외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 정책이 보편복지의 취지에 맞지도 않고 행정비용을 고려할 때 실익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모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뜻을 모으는 것이니 이런 논쟁을 소모적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페이스북 (2018.09.18)


오래 전부터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외국에 사느라 격조해진 친구 소식을 들을 생각에 시작했는데, 현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날것으로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물어볼 수도 있어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구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다.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친구 목록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열면 친구가 올려놓거나 댓글을 달아놓은 글이 모두 보이는데, 친구가 늘어나니 정작 봐야 할 글을 읽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마냥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가능한 친구를 늘이지 않고 있다. 물론 전문가 의견이라고 해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그들의 주장이 거북하기도 하다. 오늘도 몇몇 사람의 글에 동의가 되지 않아서 관계를 끊을까도 생각해봤지만, 내 입맛에 맞는 의견만 듣다보면 확증편향만 키울 것 같아서 거북스러워도 꾸역꾸역 읽고 있다.


평생 원전사업에 종사해온 사람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몹시 분개해서 한동안 이를 반대하는 여러 전문가와 친구를 맺은 일이 있다. 이중 몇몇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장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친구를 끊는 일도 있었지만, 이와 생각이 다른 몇몇 전문가의 주장을 통해 그동안 내가 원자력발전을 맹신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견문이 넓어졌다는 말이다.


요즘은 언론사에서도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있어 굳이 언론사 앱을 열지 않아도 어지간한 뉴스는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래저래 페이스북에 묶일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문득 페이스북은 어디까지 그 쓰임새가 확장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러다가 조만간 ‘빅브라더’가 되는 건 아닐까?



허리 숙인 대통령 (2018.09.18)


지난번 판문점 회담의 백미가 도보다리 회담이었다면, 이번 평양 회담의 백미는 평양시민에게 허리 숙여 답례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백 마디의 웅변보다 더 강렬하게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위로와 나눔 (2018.09.21)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면서도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성가대 지휘자가 오늘은 어지간히 고단했던지 그 고단함이 안색에 묻어났다. 게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리 비운 성가대원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궁리하는 모습을 보니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도 들었다. 고단함을 덜어줄 방법은 없고, 그저 더 고단하게 만들지나 말자는 생각으로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연습에 열중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성가대원 모두가 이심전심이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언제가 되었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지휘자의 수고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그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그렇기는 해도 하나님께서 나무라실 것 같지는 않다. 이웃의 수고에 감사하고 그의 짐을 나누어지려는 마음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니 말이다.



고향 (2018.09.22)


평안도 안주에서 자라나신 어머니는 1.4 후퇴 때 혼자서 남으로 내려오셨다. 잠깐 이웃 동네에 피난한다는 것이 부모님과 영영 이별이 되셨다. 그렇기는 해도 어머니에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말씀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고향이 그립지 않기야 하셨겠나.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갖기엔 삶이 너무 고단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고향이 평안도라는 분을 만나면 반갑기는 했어도 거기까지였다.


살아오면서 남북통일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굳이 그래야 할 당위성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평화공존의 선린 이웃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평양 회담으로 어쩌면 어머니 생전에 북한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 모시고 동무들과 멱 감고 뛰노셨다는 청천강을 가보고 싶다. 그곳에 딱히 궁금한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지만, 어머니가 마음속에 꼭꼭 쟁여놓으셨던 그 한을 청천강 물에 풀어 보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자 (2018.09.23)


부자는 자기가 쓸 돈 보다 더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부자가 되려면 쓸 돈 보다 더 많이 벌던가, 가진 것보다 덜 쓰면 된다.



창조과학 (2018.09.29)


지구 역사가 6천 년이라는 창조과학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이들을 몇몇 알게 되었다. 지질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평생 업으로 삼고 살아왔으니 나름 견해가 없을 수 없지만,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도 잘 알지 못하고 창조과학의 분야가 지질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서 그들이 추천하는 책도 읽고 그들이 쓴 책도 몇 권 읽었다. 자기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귀한 시간을 쪼개서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아 가는 이들의 노력에 머리가 수그러진다.


이들은 대체로 자연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크리스천이고, 그래서인지 논증이 날카롭지만 표현이 그다지 모나지 않아 좋다. 그 중 ‘창조과학 섬멸’에 아주 열심인 교수 하나가 있다. 주장을 내세우고 그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야말로 불철주야 뛰어다니는데, 열정이 넘쳐서 그런지 간혹 표현이 지나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이에게 무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구는 언제하고 학생은 언제 가르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을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대학원생들이 교수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클럽이 보도된 일이 있었다. 늘 ‘을’의 입장에서 살던 대학원생들이 교수를 평가하자고 들었으니 반란이라고 이름 붙일 만도 하겠다. 혹시나 싶어 그 교수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니 비난 일색이었다. 물론 평가자의 사감이 들어갈 수도 있고 이를 거를만한 장치도 없으니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 교수의 글을 통해 드러난 이미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주장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 주장을 담는 그릇도 주장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교수의 주장은 옳을지 모르나 적어도 크리스천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는 무관해 보여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이 기독교에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온라인서점 구매 목록에 올려놓았던 그의 책 몇 권을 모두 지우고, 그와의 친구 관계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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