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by 박인식

근거 (2018.10.01)


온라인에 각양각색의 주장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글을 챙겨 읽다 보면 나와 의견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데,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내 생각이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그 불편한 글을 꾸역꾸역 읽고 있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생각을 바꾸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글이나 읽는 건 아니다. 적어도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어야 하겠고, 게다가 추론하는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설령 내 주장과 대척점에 서있는 글이라고 해도 기꺼이 읽는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없고 사실과 다른 글을 읽는 건, 잠시만 수고하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그 수고는 마다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글을 읽는 건, 더구나 그와 논쟁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근거 없이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내가 제시하는 근거에 귀 기울일 리 없으니 말이다.



자식 (2018.10.02)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수없이 많은데 뭐 하나 꾸준하게 한 기억이 없다. 결국 근무 중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고 나서 검도를 시작했고, 사우디 지사에 부임하기 전까지 십 년 넘게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사에 부임하니 워낙 더운 곳이어서 걷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워 운동량이 훨씬 줄었다. 그 때문에 삼십 년 넘게 일정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던 몸무게가 몇 킬로 훌쩍 늘었다. 몸무게가 느니 몸이 여간 둔한 게 아니었다. 옷도 맞지 않고 보기도 흉했다. 몇 번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했지만 몇 달을 넘기지 못했다.


환갑을 맞고 나서 마지막 순간이 추해지지 않도록,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놀랄 만큼 충실하게 운동하고 있다. 때로는 아내가 하루쯤 거르기를 권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내 건강을 지키자고 운동을 시작했을 땐 몇 달을 넘기지 못하더니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자고 운동을 시작하니 삼 년 가까이 흐트러지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내 건강을 지키는 일보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게 훨씬 더 절박한 이유였던 모양이다.



평생의 숙제 (2018.10.05)


김영봉 목사께서 팔복에 대해 설교하시는 중에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으려면 위로 받을 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큰 아픔을 겪어야 하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며, 그 아픔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춰야한다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만 오로지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이 흔들렸던 적은 없다. 그러나 전능한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굳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셔야 할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능한 분께서 얼마든 다른 길을 찾으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시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평생의 숙제를 오늘 풀었다.



한글과 한국어 (2018.10.10)


한글날을 맞으면 으레 우리 말 오용을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평소에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나마 한글날이 계기가 되니 다행스럽다. 어제 한글날에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비분강개하는 글을 읽었다. 우리 말 오용은 한국어에 대한 것이니, 한글이라는 문자를 창제한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에 어울리는 기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낯설기도 하고 수긍도 가지 않아 한글날 제정 배경을 살펴보았다. 한글날은 해방 이후 국경일로 지정되어 지켜오다 1990년 휴일이 너무 많아 국가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기념일로 격하되었고, 한글 단체의 꾸준한 노력으로 2005년 다시 국경일로 회복되었다. 이때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수고했던 이대로 선생께서 이 운동의 추진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는 글에서 “한글날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민족 지도자들이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한글을 반포한 날을 ‘가갸날’로 정했다가 그 2년 뒤에 이름을 한글날로 바꾸고 기념하기 시작했다”고 한글날 제정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글날이 단지 문자 창제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 설명 내내 한글과 한국어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낯설기는 하지만 한글과 한국어를 떼어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만 한글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는 해도 그런 이유로 한글날에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은 지나친 감이 있다.



김제동 (2018.10.13)


한 달에 5천여만 원이 넘는 출연료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선 김제동이 자신의 경력으로나 자질로나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반박했다. 방송 경력이 20년도 넘고 인기도 있으니 그렇게 주장할 만하다. 그런데 받는 만큼 베풀고 있으니 당당하다는 그의 주장은 영 낯설다.


그는 재해 기부금도 내고 미얀마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도 짓는단다.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그런데 선행을 베푸는 것이 출연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게 더 도덕적인 일인지도 모르겠고, 설령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높은 출연료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더욱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문득 그가 사령관 부인에게 아주머니라 불렀다가 영창 다녀왔다는 이야기의 진위를 놓고 소란이 일었던 일이 생각난다. 본인이 그에 대해 뚜렷하게 진위를 밝히지는 않고 그저 “웃자는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했다. 논리구조가 독특한 건지,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자기 삶을 비하해 개그의 소재로 삼는 건지 잘 모르겠다.



광야에서 (2018.10.19)


며칠 전 저녁 식사기도에서 아내가 이곳에 살게 하셔서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이 땅의 삶이 은혜였노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가도 친구도 없고 출입도 자유롭지 않은 이 광야의 삶을 살게 해서 미안했고 그 시간을 잘 견뎌줘서 고마웠는데, 그 시간이 은혜였다고 오히려 감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살지 못해 부끄러웠다.


민수기의 원 이름은 ‘광야에서’란다.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며칠 전 아내의 고백이 떠올라 민수기의 의미가 더 선명해졌다.


광야에 설 때마다 사람이 참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머무르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하는데 그저 살아날 구멍을 찾겠다고 땅만 살핀다.



건축헌금 (2018.10.27)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비교적 생소한 분야이어서 실무에 참고할만한 국내서적이 별로 없었고, 어쩌다 외국 학회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가져온 기술서적을 복사해 돌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후배가 하나둘씩 생기면서 업무교육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번역해서 나눠보곤 했는데, 그것이 소문나서 번역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몇 번 받았다. 능력이 번역서를 낼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줄은 알고 있었으니 그저 흘려들었다.


늘어나는 교인을 감당할 수 없어 교회가 신축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름 헌금을 작정하기는 했는데 살기에도 빠듯한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아 걱정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출판사에서 기술서적 하나를 번역하자고 제안해왔다. 내용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는 했지만, 그 중에 일부는 경험을 해보지도 못한 것이었고 더구나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망설이지도 않고 사양했다. 그래도 자꾸 권하기에 번역료를 얼마나 주려느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건축헌금하기로 작정한 금액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 이틀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꼬박 세 해를 번역에 매달렸다.


기술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이 언어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번역자가 먼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써야 하는 것인데, 알기는 해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다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으니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 없었다. 번역한 것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고, 모르는 부분은 알 만한 사람을 찾아가서 설명을 듣고. 그러다 보니 한 해면 되지 않을까 했던 일에 꼬박 세 해를 매달려야 했다. 다행히 교회 건축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끝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작정했던 바를 지킬 수 있었다.


이십 년도 지난 일이지만 지금 다시 살펴봐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을 수준은 되어 보여 흐뭇하다. 사십 년 가깝게 직장생활 하면서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는가 싶어 아쉬웠는데, 그래도 흔적은 하나 남겨놓아 다행스럽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내 헌신을 받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라 내게 기억할만한 흔적 하나 선물하고 싶으셨던 것이로구나.



중보기도 (2018.10.27)


시간이 흐르면 시장이 바뀌고 바뀐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시장의 이치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호황이었던 건설업이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것 역시 시장의 이치이다. 미리 내다보고 적절히 대응했어야 했는데, 사람이 명민하지 못해 시장이 꺾이고 나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늦기는 했어도 살아남아야 하니 어찌어찌해서 새로운 시장 하나를 찾았다. 이미 시장에 뛰어든 업체가 여럿 있는 상태에서 쫓아가려니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환경정화 시장에 뛰어들어 꼬박 두 해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 동료들과 함께 무진 애를 쓰기는 했지만, 뛰어넘기엔 벽이 너무도 높고 탄탄하기만 했다. 그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했다. 여느 때처럼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거룩하고 성숙한 기도는 간 곳이 없고 그저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그렇게 열세 번을 실패하고 열네 번째 도전하던 날이었다. 발주처에 제안내용을 설명하는데 연습할 때는 그렇게도 막히던 몇몇 구간이 아주 훌륭하게 풀려나갔다. 돕는 손길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설명을 마치고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기도를 부탁 해놓은 글 밑에 교우 한 분이 설명할 시간에 맞춰 기도하겠다는 댓글을 달아놓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회사 구석방을 찾아 힘껏 기도했다고 했다. 전율이 일었다. 중보기도는 했지만 정작 그때까지 기도의 능력은 믿지 않았던 내겐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길었던 두 해, 열세 번의 실패에 이어진 열네 번째 도전 끝에 그날 첫 번째 용역을 수주할 수 있었고, 그 사업을 발판으로 부서 실적이 회복을 지나 도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의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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