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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조용한 퇴사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25

by 박인식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스물다섯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젊은 직장인의 잦은 퇴직과 소극적인 근무태도를 들여다본 <조용한 퇴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일과 삶의 균형(워라벨)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의 특성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지, 그들이 꿈꾸는 직장생활은 무엇이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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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퇴사

이호건

월요일의꿈

2023년 1월 10일


현지법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 이미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었으니 돌아오는 게 곧 은퇴일 것으로 생각했다. 기술직 특성상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어도 내게까지 그 차례가 돌아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업에 복귀할 기회를 얻어 잠시 현장에서 근무하다 본사로 돌아와 두 달째 보내고 있다.


십수 년 만에 다시 출근한 사무실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가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현지법인으로 떠날 때 이미 상당히 줄어든 상태여서 특별히 어색하지 않았다. 요즘은 직장을 빈번하게 옮기는 잡호핑(Job-hopping)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도 하는데, 그것 또한 담당 임원부터 공채사원 출신이고 경력직으로 입사한 직원들도 십 년 넘은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 부서에서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이 책의 주제인 ‘조용한 퇴사(Quite Quitting)’에 해당하는 이들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런 성향이 쉽게 드러나지 않으니 ‘조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겠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20대 초반~40대 중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조용한 퇴사’ 움직임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해 원인을 규명하고 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MZ세대는 우여곡절 끝에 직장에 들어갔더라도 직장이 기대치에 미달하거나, 꿈꾸었던 이상과 다르거나,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면 미련 두지 않고 회사를 그만둔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여력이 있거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직장에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은 업무에 열정도 없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없이 그저 ‘영혼 없는 월급쟁이’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이런 ‘소극적 퇴직’ 상태를 바로 ‘조용한 퇴사’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그저 짐작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조사 결과로도 입증된다. 채용 플랫폼인 ‘사람인’이 직장인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딱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응답했는데, ‘조용한 퇴사’ 현상을 반영하듯 젊을수록 응답 비율이 높았다. 20대 78.5%, 30대 77.1%, 40대 59.2%, 50대 40.1%였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 “개인적인 만족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참을성이 부족하고, 의사 표현이 분명하고, 직장이나 직업을 수단이자 과정으로 여기고, 불이익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 MZ세대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건 아니다.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변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마지막 퇴직연령은 쉰 살이 안 되고, 정년으로 퇴직한 이들은 채 10%에 미치지 못한다. 종신고용은 이미 신화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그 신화 안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직장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엔 무리하거나 때로는 부당한 지시도 묵묵히 견디며 조직의 일원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직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안전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정년퇴직 때까지 일하면서 조직이 발전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성공의 결실을 함께 나누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내 집 마련, 경제적 안정, 자녀 교육, 노후 대비까지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어느덧 종말을 고하고 있다. 잡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771명 중 현재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8.7%에 그쳤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자 평생직장이 가져다준 내 집 마련, 경제적 안정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집값까지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게다가 사회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그러자 잡호핑족이 생겨나고, high risk를 감수하면서까지 high return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과 암호 화폐에 목숨 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아예 포기하고 ‘조용한 퇴사’ 생활로 접어들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추구한다.


물론 그것으로 MZ세대의 특성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그들은 무엇보다 개인적인 삶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이 당연한데도 그동안 사회적인 분위기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니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직장 선택의 최우선 조건으로 올라선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제는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 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거나, 자신의 역량에 걸맞지 않거나, 부당한 지시를 받을 때는 망설임 없이 사표를 던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의 눈에 합당한 보상만 주어진다면, 때로는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까지 무슨 일이라도 감내했던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비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은 일을 자기 주도적으로 해보겠다는 그들의 결기는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잦은 이직으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져서, 게다가 그런 이들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훈련 시켜봐야 남아있지를 않아서, 기업은 신입사원을 뽑고 교육하는 일에 더 이상 힘을 쏟지 않는다. 그래서 이직률 높은 엔지니어링 업종인 우리 회사에서는 공채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졌다. 이런 변화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이 갈 곳이 없어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도 2022년을 기점으로 경력직 입사자가 신입직을 이미 추월해 버렸다.


MZ세대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직장은 어떤 모습인가? 수평적인 조직을 갖추고, 자율적ㆍ주도적으로 일하며, 나이나 경력이 아닌 역량에 따라 일을 맡기며, 개개인의 커리어를 개발해주는 그런 직장인가?


실제로 그런 직장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직장이 있다고 한들 과연 그런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 이들을 선뜻 받아들이려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내 머리로는 그들의 앞날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의 원하는 ‘자율적ㆍ주도적인 업무 환경을 갖춘 수평적인 조직’에서 역량껏 일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신입사원 중에서 그런 역량을 갖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있기는 할까? 물론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만한 역량을 못 갖추고 있지 않은가.


직장인 중에서는 5년 정도 경력을 가진 이들이 가장 인기가 높다. 이 정도 경력을 갖춘 이라면 어느 기업에서든 탐내게 마련이다.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다. 직장에 첫발을 디딘 신입사원들은 청운의 꿈에 부풀어있을지 몰라도 기업으로서는 짐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십 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졸업하고 갓 입사한 직원 중에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일할 수 있는 직원을 본 일이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3년 가르쳐야 겨우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수준이 된다. 5년쯤 되면 2~3년 배우느라 까먹은 거 겨우 보충하고 그때부터 자기 몸값을 할 수 있다. 결국 한 사람 제대로 몸값 하게 만드는 데 5년이 걸린다는 말인데, 그때쯤 되면 사방에서 채어 가려고 눈독을 들인다.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심산이다.


그런데 일 가르치느라 이것저것 시키면 허드렛일이나 하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한 줄 아느냐며 불평을 터트린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처지에 말이다. 일이면 모두 일이지 허드렛일이 어디 있나. 모두가 해야 할 일인데 자기만 못 하겠다고 하는 건 줄은 아는지 모르겠다.


MZ세대의 또 다른 특징으로 불의와 불공정을 견디지 못하는 걸 꼽는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불의와 불공정이 결국은 자신의 불이익으로 귀결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대우받으면 정의롭고 공정한 일이고 내가 불이익을 받으면 이유가 어찌 되었든 불의고 불공정이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MZ세대를 이해해보겠다고 읽기는 했는데 결국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 셈이 되었다. 가르치려 들었다는 말이다.


MZ세대라는 용어는 2000년 초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겨우 5년. 그들의 선택이 결과로 드러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그러면 얼마나 더 있어야 그들의 선택이 결과로 드러날까? 그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그래도 우리 때보다는 좀 더 나아져 있지 않을까?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라면 세상이 망해도 벌써 몇 번 망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은 멀쩡하기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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