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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80세의 벽

by 박인식

아다 히데키

김동연 옮김

한스미디어

2022년 12월 21일


은퇴를 해도 벌써 했어야 할 나이에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큰 복을 받았고, 그래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지낸다. 체력이 예전만 못하기는 하지만 이해력이나 판단력도 그렇고 기억력도 별로 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칠십이라는 숫자는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충분히 주눅 들게 만든다. 이제 겨우 칠십에 발 들여놓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이 80세이고 건강 수명은 그보다 훨씬 짧은 72세라는 걸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칠십이 넘으면 건강검진도 받지 않고 암이 확인되어도 치료를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덜컥 칠십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오래전에 했던 다짐이 생각났고, 건강검진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는 걸 기억했다. 그 생각을 할 때만 해도 이 나이가 안 올 줄로 여겼던 모양이다. 물론 칠십이라는 게 좀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영 엉뚱한 것만은 아니었던지, 노인정신의학 전문가인 저자는 나이가 들면 암 진행도 늦고 쉽게 전이되지도 않기 때문에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고 권한다.


예전에 암을 암이라 하는 이유는 “암 걸리면 죽어요?” 물을 때 “암~”이라고 대답해서 그렇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암 걸리면 당연히 죽는 걸로 알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암이 질병이라기보다는 노화의 결과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85세 넘는 이의 유해 대부분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면서 80세가 넘으면 누구나 암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암도 많고, 관리만 잘하면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80이 넘어서 암에 걸릴지 걱정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걱정을 접어둘 뿐 아니라 절제하느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원하는 걸 하면서 편안히 살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 결정을 의사가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 어느 의사가 암이 확인되었는데 치료받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항암치료나 수술을 택해서 수명을 늘릴 것인지, 자택이나 노인홈 같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낼 건지는 의사가 아니라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치료받을 수 있는데 치료받기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 사례를 들면서 치료라는 게 어떤 경우에도 능사인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코로나가 위세를 떨치던 2020년 일본 역시 병원을 폐쇄해 치료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2007년에는 홋카이도 유바리시가 파산으로 종합병원을 폐쇄해 이 지역 주민들이 치료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오히려 병자는 줄고 사망률에서는 이런 악조건의 결과라고 볼만한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인의 3대 사망 질병인 암, 심장질환, 폐렴으로 사망한 사람은 오히려 줄었다. 물론 그래서 치료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닐 것이다. 치료가 만능의 열쇠는 아니라는 것일 뿐. 그래도 우리에게 그건 상당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노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건 암뿐이 아니다. 저자는 부검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로 85세 이상인 노인들 뇌 대부분에서 뇌의 변성이 확인되었고, 그 변성의 대부분은 알츠하이머성이라고 말한다. 치매의 출발인 인지장애 역시 암과 마찬가지로 질병이 아니라 노화의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치매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저자는 이들이 인지장애가 나타나기 전에 사망한 것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저자는 인지장애의 조기 발견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인지장애를 확인했더라도 현대의학으로는 효과가 조금 있는 정도의 조치밖에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지장애를 늦추는 게 최선이고, 이를 위해 지속해서 몸을 쓰고 머리를 쓰기를 권한다. 인지장애가 있다고 해도 일상생활은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몸을 쓰다 보면 머리도 써야 해서 인지장애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장애가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면 인지장애가 오히려 악화한다. 그러니 인지장애가 올수록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늘려야 한다.


꼭 인지장애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데, 저자는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할 마음이, 기억하겠다는 의욕이 없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치매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래서 치매는 예방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머리를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한 해 백 권씩 읽고, 생전에 서평 일천 편을 쓰겠다는 목표도 그것 때문에 세운 것이다. 저자도 치매 예방이 어렵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얼마든 늦출 수 있는 일이고, 그중 가장 효과가 큰 것이 머리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일이라니 내가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이 헛된 게 아니어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현대의학의 ‘3대 악 질환’이라는 고혈압, 고혈당, 고콜레스테롤도 다르지 않다. 이 질환이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을 먹고 이를 낮추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몸이 나른해지고, 머리가 멍해지고, 남성 호르몬이 감소해 근력이 떨어지고, 감정이 불안해지고, 기운이나 의욕마저 사라진다. 이를 치료한다고 해서 암 발생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치료하는 건 그것이 사망에 직결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건 심근경색이 사망 원인 1위인 미국에나 적용할 일이지 사망 원인 1위가 암인 일본과는 상황도 다르고 병의 구조도 달라서 치료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은데, 암 사망률이 심장질환 사망률의 2.5배, 뇌혈관질환 사망률의 3배가 넘는다.


아무튼 암도 그렇고 인지장애도 그렇고 3대 악 질환도 나이가 들수록 진행도 더디고 암의 전이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한순간에 나빠지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치료하다 보면 80세 이상의 고령자는 평소 생활로 되돌아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더구나 장기를 절제할 경우 여생을 후유증으로 고생해야 한다.


결국 저자의 설명은 고령의 환자에게는 일반적인 치료 방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병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래전에 밭은기침으로 약국을 찾은 일이 있었다. (의약 분리 이전의 일이다) 약사께서 나이가 들면 신체의 기능이 하나씩 죽어가는 것이니 그 정도로 괜히 싸우려 들지 말고 친구 삼아 살라고 했다. 친구 삼아 지내니 견딜만했고, 지금 와서 보면 그 말이 진리였구나 싶다.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검증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읽으면서 고개가 계속 끄덕여질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더구나 가장 큰 걱정을 다루는 내용이니 더욱 실감하면서 읽었다. 이 책 중 저자의 의도가 가장 크게 실린 것은 이에 대응하는 태도를 서술한 마지막 장이 아닐까 한다. 무려 44개 항목에 걸쳐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이 모든 내용은 굳이 싫은 걸 하면서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낮에 자면 그만이다. 취침 시간이나 기상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졸릴 때 자는 방식이 적합하다.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과 무리하게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참거나 무리하면 몸과 마음이 지치고 건강이 나빠진다. 원하는 대로 살아도 주변에서 이해하고, 그 결과 많은 일들이 편해지고 살아가기 수월해진다. 마음이 바뀌는 것도 괜찮다. 겉치레를 벗어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사려 분별이니 위엄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벗어버린다. 혈압, 혈당치는 낮추지 않아도 된다. ... 참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한다. 규칙은 자기가 정한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의외로 편하다. 재미있는 일을 한다. 그러면 뇌가 활성화된다. 먹고 싶으면 먹는다. 대사증후군을 걱정하는 것보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살찌는 것이 낫다.”


나는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최근 들어 맛도 못 느끼겠고 뭘 봐도 별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 들어 기능이 떨어져서이려니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것이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험이 많다 보니 사소하고 가벼운 자극에는 감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세월 흐르는 게 빠르게 느껴지는 건 한 해의 길이가 살아온 길이에 비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라는데, 이것 또한 경험 때문이 아닌가. 경험이 쌓이면 한 해가 주는 의미도, 한 사건이 주는 감동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나는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의학 정보가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것인지 분별할 만큼 아는 게 없으니 판단을 유보하지만,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노령의 생활 태도에는 크게 공감한다. 너무 억제하지 말고 좀 풀어 젖히고 살라는. 그렇다고 남이 뭐라든 아랑곳하지 말라는 건 아닐 것이다.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라고, 칠십이 넘으면 마음대로 살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니, 그 정도에 이르렀으면 풀어 젖히고 산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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