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윌스
김수민 옮김
프롬북스
2021년 3월 16일
“델리 정부는 수많은 맹독성 코브라가 도시에 출몰하자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면 보상해주기로 했다. 이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코브라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시를 돌아다니는 코브라의 수는 조금도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코브라 농장을 차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부는 보상을 폐지했다. 이 조치로 농장에는 쓸모없는 코브라가 넘쳐났고 사람들은 이를 그냥 야생에 풀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행동을 취하기 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악화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라고 소개된 ‘unintended consequences’ 사례는 주변에 수없이 널렸다. 이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의미를 설명하면 누구라도 이 의미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례를 열 개쯤은 쉽게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 삶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법칙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이름도 잘 붙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용어를 듣는 순간 바로 의미를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사례를 수없이 들어보기는 했어도 정작 이를 주제로 삼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제목에 꽂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굳이 익숙한 예를 찾아보자면,
1988년 영국 정부는 자본이득세를 기존 30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인상하고 기본 자산을 매각해 얻은 이익에 세금을 매겼다. 증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읽었으면 이미 결과를 짐작했을 것이다. 역시 의도했던 것과 달리 세수가 줄어들었다. 이후 자산 매각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5년 사이에 세수가 70퍼센트 줄어들었다. 줄어들어 70퍼센트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줄어들어 30퍼센트가 되었다는 말이다. 연구에 따르면 세율이 15~30퍼센트 범위 안에 있을 때 세율이 1퍼센트 올라갈 때마다 세수는 2~5퍼센트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영국 노동당은 2000년에 정보공개법을 제정했다. 시민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좋은 의도에서였다. 그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국방부는 많은 기록이 작성된 지 30일 후에 자동으로 파기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총리실에서는 메일이 3개월 후에 자동 삭제되도록 만들었다. 공무원들은 기록하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회의록조차 만들지 않는 사례가 일어났다. 결국 상황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책에서 누군가 “모든 문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작성하는 것에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말을 했다고 인용했던데, 그 당연한 말을 뭐 한다고 인용했는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학생 붙들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인데.
영국 정부는 2011년까지 65세가 된 사람을 해고하는 게 합법이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해 이를 막자 개정 법률이 발효하기 전에 급격하게 해고 건수가 늘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영국 정부에 불편한 감정이 있었나 싶다. 줄줄이 영국 사례만 들어놓은 걸 보고 든 생각이다. 찾아보니 영국인이다. 이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영국 사례를 찾아올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임대차 보호법이 바로 그렇다. 세입자 보호한다는 의도로 만들었는데, 더 살 수도 있는 집을 4년이면 무조건 비워주어야 하게 되었다. 인상률을 5퍼센트로 묶어 놓은 바람에 못 올린 집세를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서 못 올릴 집세까지 생각해 대폭 올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하는 세입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다.
미국으로 건너가 보자. 1920년에 만든 금주법이 범죄집단을 오히려 양성화하고 조직화했다. 금주법으로 범죄자가 줄어들어 교도소조차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범죄집단이 수익성 높은 술 밀수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고, 깡패 수준에서 사업가로 신분 상승하게 했으며, 금주로 양조장이 파산하자 범죄조직이 이를 인수해 독점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기대했던 금주법의 동기인 범죄율 감소는커녕 범죄율이 24퍼센트 증가했고, 결국은 금주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금주법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오르던 범죄율이 가파르게 떨어졌다.
그 여파가 여기에 그친 것도 아니다. 금주로 개인이 술을 만들어야 했고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은 공업용 에탄올로 유해한 증류주를 만들어 마셨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에탄올에 벤젠이나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을 첨가했고, 그것 때문에 사망률이 오르고, 시력을 잃었거나 신체 마비 증상을 겪은 이들이 대폭 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인이 부패하게 되었다.
약물 금지는 또 어떤가?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약물 금지가 가져온 문제점 다섯 가지를 발표한 일이 있다. 암시장이 형성되고, 약물 금지법을 이행하기 위해서 한정된 정부 제정을 쏟아부어야 했고, 중국에서 제조하던 약물을 금지하자 베트남ㆍ라오스ㆍ태국ㆍ미얀마로 조직이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남겼고, 유사한 효과를 가진 규제가 느슨한 다른 약물로 옮겨갔고, 약물 중독자는 사회에서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좋은 의도 때문에 의도와는 다른 나쁜 결과를 얻을 뿐 아니라 잘해보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경기를 망치는 스포츠맨 사례 역시 사방에 넘친다. 이렇게 해서 골프의 ‘입스 yips’가 생겼고 농구의 ‘브릭 brick’이 생겼다. 이 글 읽고 굳이 확인하지 않으셔도 된다. 확인하지 않고 그냥 짐작 가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맞다.
로마는 자기가 닦아놓은 도로를 이용해 쳐들어온 켈트족에 의해 초토화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국이 30억 달러나 지원해 키워놓은 무자헤딘은 훗날 알카에다가 되어 뉴욕 무역센터에 민간항공기를 들이박았다. 같은 종류의 사례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없는가? 물론 있다. 은행이 파산해서 돈을 날린 예금자들이 못 먹고 잠만 늘어서 오히려 건강해졌다던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독교 부흥을 불러왔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기에 이르렀다던가.
그런데 반대의 사례가 생각만큼 설득력은 없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이 된 집단만큼 그 대척점에 손해를 본 집단이 있으니 말이다. 결국 반대가 아니라 동종의 사례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의도와 다르게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런 사례는 차고 넘쳤으니 말이다. 내 관심은 어떻게 해야 그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보다는, 그로 인해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널리 알려졌을 텐데, 과문한 탓이겠지만 아직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저자도 그걸 의식했는지 마지막 장을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해놓기는 했다. 하지만 “세심하게 접근하라”는 말 외에는 딱히 해법이라고 할만한 글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말도 해법이라고 할 수 없기는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장 마지막 단원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다”이라는 제목으로 끝맺는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안타까워 말했듯이 모든 인류의 문제는 인간이 혼자 방 안에 조용히 앉아있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나온다”고 인용하면서.
결국 시간만 낭비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봤다.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걸 추려보자면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시스템적 사고를 하라. 세심하게 접근하라는 저자의 말과 다르지 않다. 둘째, 시험 운영을 해보라. 이것 역시 앞의 말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켜라. 조만간 배가 산으로 가겠다. 넷째, 시나리오 분석을 해보라. 그 말이 그 말이고. 다섯째, 피드백을 받으라. 세심하게 접근하라는 말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할 수도 있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만 버렸다. 그렇다고 읽지 마시라는 말은 아니다. 사례를 읽어가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례 자체가 재미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