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창비
2022년 8월 19일
가난을 피해, 전쟁을 피해 혈혈단신 서울에 도달한 이들이 만나 꾸린 가정에 맏자식으로 태어났다. 빈손으로 만난 두 젊은이가 헤쳐가기엔 세상이 너무 팍팍했다. 그런 이주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 한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내게 중학교 진학은 사치였다. 다행히 중학교 갈 때는 중학교 갈 만큼 형편이 피었고, 고등학교 때 또 그만큼, 그렇게 대학까지 졸업했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살았다는 말이다.
대학 입학한 이듬해 봄에 긴급조치 7호로 학교에 대한 휴교령이 내려졌다. 운동장에 군 막사가 세워지고 교문은 장갑차로 봉쇄되었다. 그것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던 것 같았고, 그 후로도 간간이 시위가 있었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건 졸업할 무렵이었던 80년 봄이 전부였다. 그 80년 봄을 건너온 이들에게는 독재에 대항했던 비분강개가 훈장처럼 남아있다. 설령 그들의 일원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은 이들이 최소한 그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과 부끄러움이 지금까지 부채 의식으로 남아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쩌냐. 나는 그런 기억도 없고 그것을 부채로 느껴본 일도 없다. 게다가 그런 친구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게 유독 나와 내 주변에 국한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들이 모두 나처럼 가난한 집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런 이들조차 학교 다니면서 가졌던 최대 목표이자 관심사는 취직이었다. 취직하고 나서는 살인적인 업무량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간부사원쯤 되었을 때 소위 386 세대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으로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대가리 쳐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들의 역할과 공헌을 부정할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이 새로운 사회의 주축으로 나서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에 동의하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없던 부채감을 덜어낸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의 386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 굳이 되풀이할 생각이 없다. 모두 익히 알고 느끼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와 띠동갑인 저자가 썼다는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는 이 책의 제목만으로 그것이 386의 처절한 자기반성이 아닐까 짐작했다. 더구나 그의 글을 수년 읽어오면서 가지게 되었던 그에 대한 신뢰도 그 판단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인용한 사르트르의 말은 통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식인이라는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후에 자기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기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가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웃음을 준 (앞뒤 문장을 보면 웃으라고 인용한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단원은 조롱받는 지식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뇌하는 지식인을 연기해 친구 여동생의 환심을 사고 그녀를 덮친다. 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전전하다 아버지 퇴직금으로 교수직을 산다. 표절 논문으로 연구업적을 채우지만 모든 게 들통나서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양심선언으로 선수를 쳐서 오히려 영웅이 된다. 바람피우는 상대와 노래방에서 ‘상록수’를 부르며 학생운동을 회고한다.”
‘탤런트 강석우가 주인공을 연기한 드라마 <아줌마>’라는 소개를 읽기 전까지 이게 누구 이야기인가 했다. 얼마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생활비서 소동이 일어나더니 이젠 당 대변인이 성희롱을 폭로하자 당직자가 거리낌 없이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라는 말을 늘어놓는 게 흔해 빠진 일이 된 세상이니 말이다. 드라마가 세상을 먼저 읽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사르트르를 인용한 것이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은 뒤이어 인용한 지식인에 대한 사르트르의 정의 때문이었다.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누구도 지식인에게 무언가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지위고 스스로 걸머지는 책무다. 지식인의 과업은 무엇인가? 민중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민중 속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현상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뿌리까지 내려가서 비판적으로 되는 것, 즉 급진적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다.”
이런 지식인이라면 존경은 못 해도 존중할 만은 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지식인의 종말>을 쓴 레지 드브레를 인용해 지식인이 퇴화하기 시작한 것인 1970년경으로, 미디어 환경을 변화로 다양한 지식 보급 수단이 덧붙여진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주변에 지식인 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지식인이라고 할만한 이를 찾기 어려운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자는 비판적인 교수 지식인 대다수는 학벌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지만, 그 자신이 바로 그 혜택을 입었고 다시 그 구조를 재생산하는 선봉이 되었다던가, 서울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특목고와 조기유학을 선호해 능력주의 재생산 불평등 세습에 열심을 보이는 계층을 꼬집는다. 또한 그들 중 일부는 정부 고위직이 되어 민중의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려 들지만, 애당초 그들이 비판하던 불평등 구조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뒤늦게 얻은 대학 정규 교원의 삶을 일 년 만에 정리하고 재야 사회학자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기가 쓰고 싶었던 글을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글이 이 정도에 이르면 그 뒤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는 책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그런 386 세대의 행태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이 나오겠지 할 때쯤 이십 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이 공정성을 추구하는 그들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던가, 그들이 추구하는 공정성을 들여다보는 글이 실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이 386 세대가 그렇게 쇠락한 원인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글은 거기서 끝나고 2부와 3부로 이어지면서 저자는 자신의 본령인 사회학, 사회 현상으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게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내가 지레짐작했던 글이, 그래서 기대했던 글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써놓고 나서 보니 나도 모르게 386 세대를 지식인으로 등치시키고 있구나. 그들 중에 지식인이라 할 만한 이들은 한 줌도 안 될 것인데. 그렇다면 내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386 세대의 대표 인물인 누구란 말인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후, 그 명성을 남용하는 부류의 사람이 말이다. 하필이면 그가 화제가 될 때 이 책을 읽었나 싶지만,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 반감으로 들어있는 그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기 때문에 이 책을 386 세대의 처절한 자기반성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학교를 그만둔 직접적인 이유로 짐작할 만한 글이다.
“무엇보다 전문학술지에 거의 글을 싣지 않게 되었다. 대신 대학에서는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각종 계간지, 문예지 같은 곳들이 내 생각을 담는 주된 통로가 됐다. 학술지가 요구하는 엄정한 형식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심사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글쓰기가 더욱 자유로워진다. 제도정치를 직접 다루는 경우가 없지만, 그래도 정치 현실을 좀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비판할 수 있다. 전공 영역에 갇혀 있던 학계의 글쓰기에서는 누릴 수 없던 자유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글이 나 같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2부와 3부는 그리 만만한 글이 아니었다. 학계의 글쓰기에 갇혀 있지 않을 뿐. 그러다 보니 읽기는 했는데, 읽기만 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