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by 박인식

정아은

마름모

2023년 11월 20일


나는 글을 쓰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워낙 많이 쓰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보다 훨씬 많은 글을 쓰는 게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다. 그 대부분은 보고서이고, 다음으로 많이 쓰는 게 제안서이다. 보고서는 정확한 사실을 해석에 여지가 없도록 전달하여야 하고, 제안서는 상대에게 우리 강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야 하는데, 어느 쪽이 되었던 딱딱하기 짝이 없는 글이다. 게다가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하니 글이 짧아야 한다. 길게 쓰면서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보고서는 인문학 보고서와 달리 정성적인 표현보다는 정량적인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형용사와 부사를 찾기 어렵다.


평생 그렇게 쓰는 게 몸에 배어있으니 업무와 상관없는 글도 그렇게 쓴다. 비교적 단문 위주의 글인데다가 형용사와 부사도 드물다. 아니, 의식적으로 덜 쓰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 글을 읽기 편하고 속도감도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단문의 장점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기는 해도 멋대가리 없고 맛대가리도 없는 글임은 틀림없다.


맛도 멋도 없는 글이라고 해도 워낙 많이 써재끼다 보니 글 쓰는 데 자신이 붙을 만도 한데, 그보다는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훨씬 크다. 그래서 틈만 나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다. 맞춤법, 문장 작법, 글쓰기, 서평집, 서평지, 심지어 교열 교정법도 찾아 읽는다. 최근에만 해도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와 장인용 선생의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를 읽었다. 그러니 정아은 작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이제야 읽은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잘하는 요령은 그저 많이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양이다. 글쓰기를 잘하는 유일하고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은 단 하나, 많이 쓰는 것이다. 많이 쓰기 위해서는 잘 쓰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고쳐 쓰고, 고쳐 쓰고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잘 쓴 글이 나온다. 잘 쓰겠다는 마음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순간에야 비로소 잘 쓴 글이 나오는 것이다.”


굳이 나누자면 잡문에 해당하는 내 글은 대체로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 중 그 누구보다도 내 글을 많이 읽는다. 읽고 쓰는 일, 그게 내 사생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큰 도움을 받는다.


머릿속에는 동시에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걸 내 생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중에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각도 있지만, 그만큼 서로 모순되는 생각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 한 줄로 세워야 비로소 그 생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모순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을 한 줄로 세우는데 글쓰기만큼 효율이 높은 수단이 없다. 누군가에게 그 생각을 말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는 들어줘야 하니, 글 쓰는 것만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그런 내 생각을 들여다보기도 한 듯, 저자는 글쓰기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글을 쓰는 일은 본래 안정적인 일이 아니다. 마음은 언어처럼 명료하게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수많은 인상과 느낌과 사실과 기억이 소용돌이치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또한 생각 회로에는 시공간의 제약도 없다. 범주도 없고 형식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무정형의 복합 덩어리를 언어라는 체계적이고 선명한 형태로 만드는 일이다.”


글 많이 쓰기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나는, 그 덕분인지 생각이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글을 다시 읽고 고치고 다시 읽고 고치는 동안 체계화하고 조직화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 글의 가장 큰 독자라고 할 만큼 내 글을 많이 읽는다. 그리고 읽으면서 수없이 고친다. 내 글을 잘 들여다보면 글이 계속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퇴고를 많이 하려면 가장 빨리 초고를 써야 한다. 글을 쓰기로 한 그 순간에 바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 뒤 매일 또는 이삼일 간격으로 퇴고한다. 중요한 건 퇴고 사이에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내리 수십 번씩 고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 여러 날에 걸쳐 수정해야 한다. 오늘은 꼭 필요하다 싶었던 부분이 내일 다시 보면 통째로 빼버려도 무방하겠다 싶어진다. 시간에 기대가며 성실하게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무엇이 줄기이고 무엇이 가지인지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이 모든 과정을 저자의 입을 빌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생각한 뒤 쓰지만, 또한 쓰기 때문에 생각한다. 그래서 초고를 완성하는 것은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를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퇴고 과정에서 글이 정리되고, 자신이 원래 쓰고자 하던 바가 무엇인지 깨닫고,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자신의 다양한 사유를 끄집어낸다.”


이처럼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내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글쓰기는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 글을 올리고, 그 글을 통해 많은 이를 만났다. 나는 옛사람이 되어서 온라인 친구와 오프라인 친구가 다르지 않다. 온라인에서 친구면 오프라인에서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페이스북 친구를 언젠가 다 만나고야 말리라는 엉뚱한 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페이스북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얼마 안 되는 친구 중 세 분이 이미 별이 되었다.


영국인보다 영국을 더 잘 안다는 선생의 글에 끌려 무작정 런던까지 찾아가 만났던 권석하 선생은, 지난해 손녀 돌잔치 보러 서울에 왔다가 건강검진에서 암이 확인돼 수술하고 회복하기까지 몇 달을 고생했다. 지난 3월 런던으로 돌아갈 날을 며칠 앞두고 여의도에서 저녁을 같이하며 더욱 건강해 런던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런던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야 할 날, 본인 부고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정치 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유창선 선생은 뇌종양으로 고생하다 극적인 부활의 역사를 쓴 분이다. 병마를 극복하고 글쓰기를 재개한 그는 뒤늦게 예술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맹렬히 달려들었다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새로 입문한 예술에 혼신을 기울여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이라는 책을 내고 북콘서트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성악가인 내 아들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던 선생은, 작년 7월 말 평창음악제 무대에 올랐던 아들의 오페라 공연에 표를 사놓았다가 무리한 탓인지 몸이 안 좋아 부득이하게 취소해야겠다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지난 12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계엄령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표출한 칼럼을 발표한 며칠 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에 비해 저자 정아은 작가는 댓글로 몇 번 만났을 뿐이다. 잘 몰랐다는 말이다. 오늘 보니 교류했더라면 좋은 말벗이 되었겠다 싶다. 여러 면에서 통하는 게 많았으니 말이다. 지난 연말 유창선 선생에 며칠 앞서 그 역시 별이 되었다.


나는 소설가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긴다. 스토리를 창작한다는 게, 그리고 앞뒤가 딱딱 맞도록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는 게,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 문학청년 한 번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만, 나 역시 그중 하나였고, 그러면서 스토리를 창작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가 그에 관련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소설가가 대단한 이유라고나 할까.


“데뷔 초반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두어 편의 수작을 발표한 작가 중 자기와 관계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순간부터 이전보다 현격히 급이 떨어지는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이입해 들어가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써내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남이 되어 남의 인생을 살아내는 정도의 이입을 거쳐 써내야 하는데, 그 일이 쉬이 일어나겠는가?”


그 어려운 소설을 쓰느라 진이 빠져서였을까? 그인들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랴마는, 보내는 가족과 친지만큼이야 했겠나.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친지 모두에게 깊은 위로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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