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by 박인식

제임스 길리건

이희재 옮김

교양인

2023년 5월 22일


전자책을 읽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요즘 하나둘 기능을 익히면서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앞뒤를 오가며 읽어야 하는 책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기는 해도 해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자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체코 사업을 준비하면서 큰맘 먹고 리더기를 하나 장만했다. 작은 것이야 큰맘까지 먹지 않아도 될 가격이었지만, 주로 읽는 책이 전후 문맥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이라 화면이 큰 것을 구해야 했다. 마땅한 게 중국 제품밖에 없어 하나 사놓고 설치하는 게 어려워 결국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는 했어도 손에 익으니 쓸만했다.


그런데 체코로 나오는 날 비행기 안에서 작동이 멈췄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파워버튼 뿐이라 정작 이곳에서는 써보지도 못하고 서랍에 처박아 뒀다. 멈추기 직전까지 읽은 게 바로 이 책이었다. 다 읽기는 했는데 와이파이가 끊어진 상태에서 읽은 것이어서 모바일로도, 컴퓨터로도 하이라이트 해놓은 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선 다시 읽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럴 거까지 뭐 있나 싶어 리뷰 쓰는 걸 접을 생각도 했다. 결국 다시 읽었다. 그만큼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다.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매우 독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선 자살률과 살인율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다. 내 상식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책에서도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아무튼 그렇다니 그런 걸로 전제하고. 다음 주장은 동의하기가 더 쉽지 않은 주장이었다. 자살률과 살인율을 합한 비율이 미국 공화당 정부 때는 일관되게 증가했고 민주당 정부 때는 일관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살률과 살인율을 묶어서 ‘폭력 치사’라고 표현한다. 자살도 자신에 대한 폭력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각 정당의 정책이 달랐고 그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양 정당의 정책이 그렇게 칼로 무 베듯 나눠지는지도 의심스러웠고 그것이 정말 일관된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저자의 주장은 다음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어떤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의 방향이 여러 형태의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그 결과 실업률, 수치심, 모욕감이 높아지면 그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폭력 치사 발생률이 높아진다. 공화당 정부에서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많이 일어났고, 민주당 정부에서는 훨씬 덜 발생했다.”


저자의 이 주장은 부록에 실려있는 1900~2008년 사이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의 폭력 치사 비율 대비표가 아주 선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 108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매킨리 대통령으로부터 아들 부시 대통령까지 5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이것도 놀랍다. 확인해보니 사실이다) 이 기간에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일관되게 공화당 정부 때는 폭력 치사율이 플러스였고(+0.3~+17.7%), 민주당 정부 때는 마이너스를 보였다(-0.5~19.9%). 누적 변화량으로는 공화당 때가 +27.3%, 민주당 때가 –26.5%였다. 결국 공화당이 까먹은 걸 민주당이 모두 만회했다는 것인데, 결국 1900년이나 지금이나 폭력 치사율은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아닌가. 더구나 1921~1932년 공화당 정부 때 +17.7%, 이어진 1933~1952년 민주당 정부 때 +19.9%인 기간을 빼면 변동 폭이 4%를 넘지 않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가 지닌 함의도 적지 않겠다.


“저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살인율과 자살률 합한 값이 19.4~26.5명/10만 명인 경우를 ‘전염병 수준’, 11~19.4명/10만 명인 경우를 ‘비전염병 수준’으로 분류했다. 이 시기에는 전염병 수준에 이른 시기가 세 번 있었는데, 모두 공화당 정부 때 시작되었고 민주당 정부 때 끝났다. 또한 비전염병 수준에서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는 일은 공화당 정부에서만 일어났고, 전염병 수준에서 비전염병 수준으로 회복되는 일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일어났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이 책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살과 실업의 관계는 수많은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었으며, 이제는 이의 타당성에 관해서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살인과 실업의 관계는 이처럼 일관성을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을 많은 연구가 밝혀냈다.”


“실업률과 실업 지속 기간, 경기 위축 정도와 지속 기간과 빈도, 불경기와 불황,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등의 허다한 형태의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 고통, 불평등과 폭력 치사율의 연관성은 확고부동하게 밝혀진 사실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실업률과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이 경제적 스트레스가 되고 이것이 폭력 치사율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각 지표와 측정치와 연구 결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지난 한 세기 내내 실업 규모와 지속도, 경기 위축의 빈도와 지속도,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하나같이 높였다. 이것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격차가 커졌음을 뜻한다. 실업률과 불황은 20세기 내내 노동통계국과 전미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측정했는데, 실업률과 불황 수치의 흐름을 추적하면 경제적 손실과 곤경이 드러나는 이 두 가지 형식이 공화당 정부 때 모두 올라갔고 민주당 정부 때 모두 내려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통계적으로 공화당 때 올라가고 민주당 때 내려간다는 사실이 여러 사회과학 연구 결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실업률과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쪽의 정책을 펼쳤고 민주당은 이를 개선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논리가 실제로도 구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구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지극히 복잡한 사회 현상을 몇 가지 요소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같은 수치를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게 학문의 세계 아닌가. 더구나 그 모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그 몇 가지로 국한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저자의 이런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에 따라 정책이 달라야 하며, 그리고 그 차이가 일관성 있어야 하고, 만약 그래서 그 주장이 성립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났어야 한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것이 우연히 일어난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두 당의 정책과 성과가 다르기 때문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이가 사람들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가 정말로 있고 그걸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자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정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다만 “호주와 영국에서 따로 벌인 연구에서 두 나라에서 모두 20세기에 들어와서 보수 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자살률이 상당히 올라갔고 진보 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내려갔다는 사실, 실업률도 정당과 자살률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상황을 돌아보았다. 현재 좌우 또는 진보와 보수로 나뉜 우리 정당이 이처럼 자기 색깔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그 차이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좌우로 나뉜 것도 진보와 보수로 나뉜 것도 아니고, 양당의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이 일관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야당일 때 격렬하게 반대하던 정책을 집권당이 되면서 거리낌 없이 차용하는 것도 그렇고.


저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 짓는다.


“미국 정치가 처한 상황을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 적색 주와 청색 주의 분열 등 정치 양극화가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통계 수치는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응수하고 싶다.”


분열과 양극화 정치라는 점에서 (놀랍게도 지금이 아니라 이십여 년 전인데)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들이지만 양당은 결코 다른 바가 많다는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민주국가로 존중할 만한 국가였다. 지금 미국의 정치 지형은 그 당시와 현저히 달라졌는데, 지금도 저자는 자기주장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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