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by 박인식

질베르 아슈카르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옮김

리시올

2024년 3월 31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난 것은 이미 사우디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두 해쯤 되었을 때였다. 그때쯤엔 이미 사우디로 돌아갈 생각을 완전히 접었을 때이긴 했어도 사우디와 중동에 관해서는 계속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었다. 당시에 사우디 네옴시티 사업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었다. 이 전쟁이 네옴시티 성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어서 나 역시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그런 일을 예상 못했던 건 아니다. 그 규모 이토록 커지고 이토록 오래 갈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지만, 나 뿐 아니라 사우디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래 사우디에서 생활하면서 나름의 판단이 있었던 터라 이유를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저항운동(하마스)이 타당하다거나 그들이 그런 일을 벌일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다. 결말이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일을 벌이고 강대국의 중재를 기다린 게 아닐까 짐작했을 따름이다.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다. 눈에 띄는 대로 읽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전에 발간된 책이라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기는 했어도 정작 그 상황을 객관적 시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우연히 크레마북스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세네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라고 2007년부터 런던대학 교수로 있는 질베르 아슈카르가 이 전쟁이 일어난 다음 날과 열흘 뒤에 자기 블로그에 발표한 글. 그후로 11월 말까지 각종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내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을 저자는 아랍인의 시각으로 알아크사 홍수작전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하마스가 일으킨 홍수작전이 야만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스라엘의 야만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야만은 정의의 저울에서 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야만이 정당한 자위 도구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야만은 정의상 그 자체로 언제나 부당하다. 그렇더라도 두 종류의 야만이 충돌할 때 억압자로 행동하는 강자의 책임 더 크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약자의 야만은 거의 언제나 강자의 야만에 대한 대응이었고, 이는 충분히 논리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 하러 궤멸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약자가 강자를 도발하겠는가?”


나 역시 저자의 판단에 동의한다. 그것이 야만적이라는 것과 그런 데도 그것을 이스라엘의 야만과 같은 차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 아울러 하마스의 이 작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아래와 같은 저자의 시선마저도 동의한다.


“이 새로운 장이 팔레스타인인 대부분, 특히 가자 주민과 구체적으로는 하마스의 끔찍한 희생으로 마무리될 것이며, 이것이 이스라엘인이 감내하게 될 희생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배후에는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훨씬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대의가 달성되더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마스의 대의에는 동의하나 그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은 결코 무력으로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과 경험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비무장 저항이 옳은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무장 대립을 통해 팔레스타인 인민이 민족해방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하마스의 발상은 더욱더 많은 이스라엘인을 설득해 이 대의에 합류하게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다. 이스라엘 군사력이 훨씬 우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벌어진 팔레스타인 투쟁 중에서 가장 큰 효과를 거둔 것은 비무장 저항이었다. 1988년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사회, 정치체제, 군대의 깊은 위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서양을 포함해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크게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극우파가 이스라엘 정부를 이끌고 있지만, 그게 모든 이스라엘인의 생각이고 과거에도 그랬던 건 아니다. 평화주의자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적인 해법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최악의 빌런으로 꼽히는 네타냐후 등장의 배경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인보다는 군인에 훨씬 가까웠던 샤론 총리는 통치하기 쉽지 않은 가자에서 병력을 철수시켜 달라는 군대의 탄원을 받아들였고, 외부에서 가자 지구를 통제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는 가자 병합을 결코 염두에 두지 않았다.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수립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를 책임지도록 놔두는 편이 더 현명하리라 판단하고 서안 지구에 주력했다. 네타냐후는 샤론의 이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내부 반대 세력을 규합해 같은 해인 2005년 샤론이 리쿠르당을 떠나게 하고 그 이래 줄곧 리쿠르당을 주도해왔다. 그는 이스라엘 정치판의 파편화를 교묘히 이용해 2009년 총리에 올라 2021년 6월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2022년 말에는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화한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그가 가자를 재정복하기 위해서는 예기치 못한 격변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조차도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작전으로 그런 격변이 느닷없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작전은 네타냐후가 오랫동안 갈망했으나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을 창출했다.”


말하자면 하마스가 울고 싶은 사람 뺨을 때린 격이었다는 말이다. 비록 하마스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해 초기에 상당한 피해를 보고 우왕좌왕했으나, 오히려 그 공격을 빌미로 그들이 추진해온 ‘대이스라엘 전략’의 추진 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가 유출되었다. 유출된 것인지 일부러 흘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0월 7일 이래 우리는 시온주의 우파가 알아크사 홍수작전을 기회 삼아 1967년 점령한 땅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대부분을 쫓아냄으로써 1948년의 니크바를 완수하고 대이스라엘 기획을 달성하는 오랜 꿈을 실현하려 한다고 경고해왔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임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문서가 며칠 전 유출되었다. 10월 13일에 발행된 이 문서는 가자의 민간인 관련 정책 방안이라는 제목 아래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1) 가자 주민은 남아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방안, 2) 가자 주민이 남아있고 현지 아랍 정부를 그곳에 수립하는 방안, 3) 주민들을 시나이반도로 떠나게 하는 방안. 문서에는 1안과 2안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평가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분한 전쟁 억지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3안이 장기간에 걸쳐 이스라엘에 긍정적인 전략적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며 실행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하마스는 이런 계산을 하지 못했을 것인가? 저자도 그런 사실을 예견하고 경고했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는 이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지금까지 벌어진 것과 같은 재앙이 일어날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오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중 후자의 가설이 더욱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그 오판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사회의 극우화를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아랍인과 무슬림이 동조하고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 작전을 계획한 이들이 이스라엘 사회가 얼마나 극우화되었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시온주의 군대가 이제까지 벌여온 모든 것을 능가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이를 기회 삼아 대이스라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남아있는 무엇이든 제거하고 가자 지구를 시작으로 몰살과 강제 이주를 통해 팔레스타인 인민을 절멸하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희망적 사고를 가동해 신이 내리는 기적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고는 종교적 논리에 기반을 둔다. 알아크사 홍수작전이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총력전을 촉발해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만이 아니라 모든 아랍인과 무슬림이 참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만큼 아는 게 없다. 다만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그 사실에 좀 더 접근하려는 것뿐이다. 이 책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홍수작전이 벌어진 다음 날부터 다음 달까지 두 달에 걸쳐 발표한 칼럼 7편을 엮은 것이다. 당시 피해자 측의 생각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저자의 인터뷰와 이를 번역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역자 후기가 상당한 분량으로 실려있다. 그렇기는 해도 전체 분량이 118쪽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두어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알아크사 홍수작전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지금까지 서방의 시각으로 판단한 편견을 피해자의 시각으로 교정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책을 덮고 나서도 야만에 대한 저자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두 종류의 야만이 충돌할 때 억압자로 행동하는 강자의 책임 더 크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k172939787_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