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인해 상처받는 자식이 있고 자식으로 인해 상처받는 부모가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를 받아도 자식은 자식으로 여기는데, 자식은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 부모를 부모로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2002.08)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받은 그대로 갚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부모 은혜를 받은 그대로 갚지 못해 너무 마음 아파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식으로서 부모 은혜를 갚는 일은 그저 열심히 건강하게 사는 길 뿐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듯이 자식을 열심히 사랑하고 바르게 키우면 된다. 그러니 부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갚는다고 설치지도, 그러다가 지쳐 하지도 말고 그저 겸손히 자신의 길을 행할 일이다. (2004.10)
결혼 이후 지금까지 고부 사이는 끼어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다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이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처신이더라. 물론 그로 인해 어머니께서 내게 섭섭한 마음을 비치신 일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런 처신이 정말 집안의 평안을 위한 것이었는지 하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귀찮고 불편한 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용돈만 해도 그렇다. 맏며느리인 아내가 제수들과 의논해서 잘 감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또 그렇게 하는 게 때로는 섭섭할 수 있지만 더 큰 섭섭함을 막을 수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지금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머니께 직접 용돈을 드려본 일이 없다. 돌이켜보니 그런 행동이 맏아들로서 맞는 처신인지는 몰라도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깨달았으니 고칠 일이다. (2004.12)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한다. 고생을 해봐야 자기가 가진 것, 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고생을 하게 만드는 게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자식이 고생하는 걸 보면 부모로서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며, 더욱이 자식이 고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는데도 고생을 하도록 놔두는 건 부모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게 자식을 제대로, 그리고 강인하게 키우는 길이 아닌 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자식이 큰 어려움을 겪을 때 넉넉하게 그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자식의 작은 어려움을 외면할 수 있는 용기가 부모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2006.01)
부모이기는 쉬워도 부모 되기는 어렵다. 부모란 자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자기를 희생해가면서까지 자식을 키울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자기 능력 안에서 자식을 키우려다 보니 교육비가 많이 드니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니 없니 따지려 들고, 그러다 보니 둘도 벅차한다. 그러니 출산율이 세계 최저 기록을 나날이 갱신하고 있고 그 결과가 곧 재앙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게 생겼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 자식을 키우려는 모습을 자식들이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현상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재앙은 대를 이어 계속되지 않겠나. 희생하기 싫어하는 부모들로 인한 결과가 대를 이은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2006.03)
예전엔 아들이 결혼을 하면 며느리를 얻었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들을 빼앗겼다고도 하는 모양이다. 처가 쪽 입김이 세어진데 대한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자식이 결혼한다는 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고 그렇게 이룬 가정이 부모에게 속한 것일 수 없으니 며느리를 얻었다는 말도 아들을 빼앗겼다는 말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결혼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니 분가시키는 게 당연하고 가장을 가장으로 대우하는 게 마땅하다. 비록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한 가정을 바로 세우기에 아직은 부족한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서 온전한 가정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로서 해야 할 일 아닌가 한다. (2006.04)
자식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만한 좋은 어른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2006.08)
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조만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성장을 계속한다고 해서 시간만 지나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릴까?
성장을 계속한다고 해서 어느 나라나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이르는 건 아니라고 한다. 선진국 어느 한 나라 예외 없이 ‘1만 달러의 덫’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고, 그 덫을 리더십 혁명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회갈등이며 노사대립과 같은 ‘1만 달러 형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2만 달러의 벽’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1만 달러 형 문제’ 중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나라로는 시간이 지나면 ‘2만 달러의 벽’을 통과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그야말로 꿈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애벌레가 성충으로 자라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부모 그늘 아래서 아이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생각의 틀, 행동의 틀을 벗어나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1만 달러 형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는 ‘2만 달러의 벽’을 돌파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게 어디 그렇게 쉽기만 하겠나. 그리고 그런 어려움이 어디 아이 본인에게만 있겠나. 자식이 어른이 다 된 걸 눈으로 보면서도 자식을 아이로만 여기는 부모들이, 자식을 어른답지 못하다고 나무라면서 정작 자식을 어른으로 대접해주지 않는 부모들이 그렇게 많으니 말이다. (2006.09)
자식은 자기 인생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자식의 인생까지 포함해서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산다. 그래서 자식의 삶을 지키는 일을 자기 목숨 지키는 일과 같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말씀은 언제나 귀담아 들어야 한다. (2008.06)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본래 뜻과는 달리 내용도 모습도 변질되어 가고 있어 근심스럽다. 급기야는 어떤 30대 주부가 시위를 해산시키려는 살수차에 대항해 자기 어린 자녀를 태운 유모차로 맞선 일까지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이에 대해 찬반논란이 뜨겁다. “아이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그런 곳에 갔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나라와 아이를 위한 진정한 용기’라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 생긴 모습이 다른 것처럼 생각이 다른 것이야 탓할 일이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이를 단지 생각이 다른 걸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이는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느냐 아이의 안전마저 무릅썼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 내가 아끼는 걸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 내 소유일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살수차에 대항해 유모차로 맞선 그 주부는 아이를 포기할 수도 있는 소유로 여겼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지 않겠나. 그게 옳은 일인가? 그리고 그게 그 생명을 잉태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로서 가능한 일인가? (2008.06)
‘용의 눈물’, ‘무인시대’ 등의 드라마를 통해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TV 탤런트 김흥기 씨의 생전 소원이 아들이 연출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아들인 김진원 PD 또한 자신의 첫 작품에 고인을 출연시킬 꿈을 꾸고 있었지만 고인이 유명을 달리하게 되어 꿈이 무산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김 PD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담은 화면을 극에 녹이는 방법으로 아버지의 소원을 실현했다고 한다. 자식이 연출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걸 생전의 소원으로 가졌던 탤런트 아버지, 그것이 자식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다. (2010.09)
자녀교육은 부모가 스스로 바르게 서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삶으로 교육하는 것이니 부모가 바로 서있다면 자녀가 잘못 될 리 없기 때문이다. (2011.06)
손녀를 얻고 나니 거기에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있더라. (2011.12)
공항에서 우리 내외를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오는 혜인이 모습은 언제건 혜인이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반가움을 넘어선 뭉클함이요 감동이었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그렇게 반가웠을까. 그저 핏줄이 시키는 것이려니. 내 마음이 이렇게 반갑고 또 반가운데 예전에 아버님은 손주 보여주는데 그렇게도 인색한 자식에게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반중조홍감을 품어가 본들 반길 이 없으니 그저 가슴이 아플 뿐. (20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