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반성

by 박인식

훈수두기


청년 하나가 추석 연휴에 북한선교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청년의 부모님께서는 아직 신앙을 갖지 않으셨기 때문에 청년부 수련회 가는 것조차 탐탁해하시지 않는데 연휴에 북한선교를 다녀오겠다고 하면 반대하실 것이 너무나 분명해보였다. 그래서 그냥 다른 핑계를 대고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그 청년에게 그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했다. 허락을 받고 떠나는 게 옳다고 했다. 며칠 후 그 청년이 부모님께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했던 내게 감사한다고 했다. 선한 목적 때문이라고 해도 거짓말은 옳지 않다는 말을 내게 듣고 나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고, 이런저런 핑계를 다 준비해놨는데 그 말에 발목이 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뜻밖에 선선히 승낙을 해주셨단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편지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마음이 찔렸다. 그 일이 내 일이었다 해도 그렇게 단호하게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는 게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내 일이 아니니까 너무 쉽게 원칙을 이야기한 건 아닐까? 내 일이었다면 실제로 행하지도 못할 일을 너무나 당연한 듯 청년에게 내뱉고 그것으로 내가 칭찬을 받았으니 얼마나 민망한지. (2004.09)



나이 드는 것의 어려움


마이크를 사용할 때 말하는 사람이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모니터 스피커를 말하는 사람 쪽으로 틀어놓는다. 자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반사적으로 소리가 자꾸 커지기 때문이다. 노래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 노래가 자기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면 목소리가 자꾸 커지고 급기야는 노래 흐름이 깨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성악가들이 울림이 적은 곳에서 연주하는 걸 몹시 힘들어한다.


나이가 들면서 말수가 자꾸 늘어간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문득문득 들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기도 한다. 혹시 내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서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자기 소리를 키우다가 연주 자체를 망쳐버리는 성악가 같은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2004.10)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자료정리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회의에서 실무를 담당할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직도 그 직원이 대응하는 모습이 옳지 않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성을 높인 일은 선배로서 옳지 않은 모습이었다. 퇴근 전에 그 직원을 불렀다. 마음이 많이 불편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밖으로 밝은 모습으로 왔다. 언성을 높이고 나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생각이 다르다 해도 그렇게 언성을 높일 일이 아니었는데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 직원은 내가 그저 짜증을 낸 정도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사달라고 했다. 후배만 못한 좁은 소견으로 부끄러운 하루였다. 그래도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않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2004.10)



바쁘다는 것


바빠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산다. 그저 하루하루 눈앞에 쌓인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일이 없어 걱정하는 것보다 백 배 낫기는 한데 왜 바쁜지, 왜 바빠야 하는지도 생각 못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2004.11)



섬김과 나눔


핸드폰을 쓰는 이래 초기화면에 ‘섬김과 나눔’이라는 글을 띠워놓고 있다.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어 아내와 함께 핸드폰 초기화면에 이름 대신 올려놓았는데 이제는 그런 글을 띠워놓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삶 가운데 섬김이고 나눔이 제대로 일어나겠나. (2005.12)



한결같기


사람이 한결같기만 해도 이 땅의 삶을 마칠 때 좀 덜 부끄러울 텐데, 그 한결같기가 참 어렵다. (2006.10)



얕은 물


오래 전부터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뜻으로 ‘바다’라는 필명을 사용해왔지만 구렁이 꼬리 삼년 묵힌다고 이무기 꼬리 되는 법 아니라고, 이름 그렇게 쓴다고 바다가 되는 게 아니더라. 그러니 그냥 생겨 먹은 성정대로 ‘얕은 물’이라고 써야 하지 싶다. 그나저나 작은 바람에도 뒤집어지는 얕은 물 같은 성정은 도대체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털어버릴 수 있을까. 자식 보기도 민망한 일이다. (2007.06)



예수 향기


십년도 훨씬 넘은 일이다. 함께 일하는 후배를 꽤나 못살게 굴었는지 후배가 견디다 못해 대들면서 “형님은 예수쟁인데 예수 냄새가 안 나요.” 하고 일갈했던 일이 있다. 평생 살아오는 동안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말이 그 중 가장 크게 나를 바꾸어 놓은 말이 아닌가 싶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후배가 잘못한 것만 보여 오히려 괘씸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얼마나 정확한 지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며 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쓴다. 물론 자제하지 못한 경우가 수없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말 때문에 적어도 그때보다 사람이 더 못되어지지는 않았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에서 예수 향기가 나기까지야 하겠나마는, 그 일이 있고나서 적어도 예수 향기를 떠올리며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 후배의 말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을까. 그저 감사할 일이다. (2007.09)



고집


청력이 약해져서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고집이 세다. 청력이 약하면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는 알아듣기 어렵고,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주의를 집중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 남이 말하는 걸 모두 다 챙겨듣기가 쉽지 않다.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게 되고, 그러니 고집이 센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육신의 귀가 어두워서만 남의 말을 못 듣는 건 아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도 남의 말을 못 듣는 것이니 그 역시 고집이 세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러니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이야기를 더 듣지 않으려면 얼른 보청기를 쓰던가 남의 말을 듣는데 더 힘쓸 일이다. (2009.01)



낮음과 낮아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 건 그의 낮아짐이었다. 낮아짐이란 본디 고귀한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낮음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본디 낮은 자는 낮아짐을 이룰 수 없는 법. 낮은 자는 그저 낮은 자의 주제를 제대로 알고 그에 합당하게 살기라도 해야 남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손가락질은 받지 않을 게 아닌가. 내 이야기다. (2014.09)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혜인이가 한국에 가보니 좋은 게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가 한국에서 노래하면 안 되느냐고 제 엄마한테 묻더란다. 며칠 전 혜인이에게 독일로 돌아가기 싫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한국이 좋기는 한데 그래도 자기는 독일로 돌아가야 한단다. 이제 고작 다섯 살 먹은 아이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별하는데 어른이 되어도 그걸 구별하지 못하니.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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