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당신이 속는 이유

by 박인식

대니얼 사이먼스

이영래 옮김

김영사

2024년 4월 30일


저녁을 먹다가 이 책에 나오는 노이즈 이야기가 생각나서 함께 일하는 후배에게 물어봤다. 지질 조사보고서를 보다가 아주 고르고 모양 좋게 나온 데이터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고 말이다. 망설이지 않고 “사기이지요” 그런다. 나 역시 수십 년 지질조사를 해오고 있지만 그런 경우가 나오면 오히려 당황해서 데이터를 다시 살핀다.


이 책은 <당신이 속는 이유>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내용으로 보면 얼마 전에 읽었던 <착각의 쓸모>의 주제인 ‘착각’을 다루고 있다. 그 책은 <당신이 속는 이유>의 주제인 ‘거짓말’을 다루고 있고. 두 책 제목이 바뀌었으면 오히려 자연스러웠겠다. 바로 그 ‘착각’ 중 하나인 ‘노이즈’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했다.


지질조사는 땅을 다루는 일이다. 복잡계의 대표적인 존재인 지구의 겉 부분. 모든 조사가 그렇듯 지질조사 또한 표본을 추출해(sampling) 전체를 추정하는 작업이다. 복잡계, 그것도 일부 표본을 추출해 전체를 추정하는 일이니 정확도가 얼마나 떨어지겠는가. 그런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데이터 나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도 매끄러운 데이터를 보면 이를 의심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하고, 그들이 개별적으로나 합쳐졌을 때 노이즈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평가해 먼저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나 조직은 대부분 인간 행동에서 나타나는 노이즈를 제거해야 하는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노이즈는 우리 친구다. 얼마만큼 노이즈를 예상해야 하는지 간단하고 보편적인 경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사실이기에는 너무 노이즈가 없는 건 아닌지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요령을 설명한다.


“첫째, 인간의 성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노이즈가 많은 게 보통이다. 타율이 2할5푼인 야구선수가 매 게임 4번 타석에 설 때마다 안타를 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일관성을 알아차리려면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관성이 과도하면 노이즈의 부재를 의도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셋째, 의심되는 성과를 만든 성과의 일관성이 다른 사람들 성과의 일관성보다 강한지 확인하라.”


복잡한 설명을 간단히 줄이자면 “데이터가 너무 매끈하면 무조건 의심하라” 이 말이다. 아래 예처럼 말이다.


“과도한 일관성 때문에 부정행위 조사가 시작된 적이 있다. 일본의 생의학자 사토 요시히로는 골절에 관한 수십 건의 임상 실험 데이터를 조작했다. 그는 시도한 거의 모든 치료법이 큰 효과를 보았다는 일관적인 보고를 했다. 하지만 일관성을 부정행위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기억력에 관한 저자의 설명도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너무도 확실하고 선명한 기억이 사실과 달랐다는 걸 확인해 당황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기억이 영상 녹화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운영 방식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의 완벽한 사본을 저장한다고 말이다. 기억이 생생하고 쉽게 떠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신뢰할 수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기도 한다. 기억을 검색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여러 출처의 정보를 결합한 과거 사건의 한 버전을 구성하는 것이다. 단일한 일관성이 있는 기억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경험이 뒤죽박죽된 것일 수 있다. 우리 기억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세부 사항들을 통합하기도 한다. 기억의 공백은 일어났을 것으로 기대하거나 가정하는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더도 덜도 아니고 저자가 말한 그대로의 상황을 나 역시 적지 않게 겪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내 기억에 의문을 제기하면 대체로 물러서다가 이제는 절대로 우기지 않는 선까지 후퇴했다.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 틀렸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자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지 같은 일을 놓고 누군 이렇게 기억하고 누군 저렇게 기억하는 것보다 모두의 기억이 똑같은 것이 우리에겐 더 충격적인 일일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우리의 기억은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전적으로 개인적일 때가 드물다. 우리는 친구나 가족과 우리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며, 기억은 우리가 끄집어낼 때마다 바뀌기 때문에 이런 대화는 공통의 기억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이런 왜곡 과정을 가속한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억에 대해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이 책의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싶긴 하지만 포커판에서 쓰는 ‘텔’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이는 상대방의 무의식적인 행동, 표정, 몸짓 등으로 드러나는 심리적 신호를 뜻한다. 한때 세계 프로 테니스계를 평정했던 안드레 애거시 이야기다.


“애거시는 프로 테니스에서 은퇴하고 몇 년 후 인터뷰에서 라이벌 보리스 베커의 강력한 서브를 잘 받아냈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베커와 경기에서 처음 세 번을 진 후 다음 열한 번의 경기에서 아홉 번을 이겼다. 애거시가 베커의 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리스가 서브를 넣을 때 공을 던져 올리기 직전 혀를 내미는 텔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혀를 입술 중앙에 대면 가운데 또는 몸쪽으로 공이 들어왔고, 옆으로 내밀면 사이드라인 쪽으로 공이 들어오더라고 했다. 그러나 애거시는 서브 때마다 그 텔을 이용할 수는 없었는데, 선수의 서브 시점을 그렇게 일관되게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서브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서브를 예측하고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게 문제였다. 그가 혀를 내밀지 않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상황에서만 그 정보를 이용해서 자신이 텔을 눈치챘다는 걸 베커가 영영 모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년이 흐르고 애거시가 베커에게 그 텔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베커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러한 비언어적 단서에 관한 이야기는 적지 않게 들었으니 별로 신기할 건 없다.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어떻게 그것을 상대에게 숨기느냐는 것이라는 말이다. 애거시는 중요한 상황에서만 그 ‘텔’을 이용했다는 것인데, 나는 그가 보리스의 ‘텔’을 찾아낸 것보다 그걸 알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그걸 써먹어야 할 상황에도 그 욕심을 제어했다는 것이 훨씬 더 놀랍다.


그의 설명 중 ‘헛소리 비대칭의 원리(bullshit asymmetry principle)’도 눈길을 끈다. 이는 헛소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헛소리를 반박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크다는 뜻이다. 타당하지 못한 과학적 주장에도 비슷한 법칙이 적용되는데, 일단 어떤 결과가 동료 심사 논문으로 일단 받아들여지면 그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데에는 10배 이상의 증거가 필요할 수 있다.


그게 어디 연구뿐이랴. 권위를 가진 사람이 헛소리하면 그걸 반박하는데 10배에 10배쯤 힘들거든. (권위나 제대로 있으면 이런 말도 안 한다) 그래서 난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문위원이 오는 걸 그렇게도 싫어했다. 발주처에 노골적으로 그런 사람 좀 고만 데려오라고 항의하기까지 했다. 현장은 개뿔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밥값 하려고 한 마디씩 던지고 간 걸 방어하느라 진 빠졌던 게 어디 한두 번이라야지. 그 정도면 말도 안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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