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by 박인식

김정선

김영사

2016년 3월 2일


생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뜻하지 않게 책을 내고 인세도 받았다. 인세란 책이 팔린 만큼 받는 것이지만 저자에 대한 예우로 초판은 다 팔린 걸로 치고 그에 해당하는 인세를 주는 것이다. 책 낸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 2쇄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초판으로 마감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라는데, 나 역시 거기서 벗어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다지 관심을 끄는 주제가 아니어서 많이 팔릴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기대에 너무 못 미친 까닭이 뭘까 생각해본 일이 있다. 내용이 문제였을까, 글이 문제였을까.


원고를 쓰는 대로 넘기기로 했다. 원고를 몇 번 보냈을 때쯤 편집자가 보낸 검토 결과를 받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원고를 안 건들고 넘어간 장이 없었고, 어느 부분은 원고보다 편집자 글이 더 길었다. 작가는 아니지만, 평생 글 쓰는 걸로 밥벌이했는데. 게다가 검토해놓은 내용이 도저히 참고 볼 수준이 아니었다. 글쓴이에 대한 예의라고는 일체 찾아볼 수 없었고, 내용도 억지스러운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편집자와 함께해야 한다면 차라리 글 쓰는 걸 그만두겠다고 했다.


물론 편집자가 나를 망신 주려고 그러기야 했을까. 책을 책답게 만들려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편집자의 지적은 수긍할 부분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데, 설령 그 편집자 때문에 글이 훨씬 나아졌더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을 나 자신이라고 여긴다. 분신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소셜미디어에 짧은 글 하나를 올려도 어디엔가 써서 몇 번 고치고 난 다음에 올린다. 올려놓고도 수없이 읽고, 또 읽고, 고치기를 되풀이한다. 아는 이도 있겠지만, 그래서 내 글은 수시로 바뀐다. 그런데 내가 내 이름으로 책을 내는데 그 책에 내 글이 아닌 걸 싣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질문 같은 제목 만으로 이 책을 고른 데는 그런 무의식이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작가가 자기 글을 벌겋게 수정한 교정지를 받고 그 교정을 담당한 이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이 책은 바로 그 교정을 했던 이가 그 질문을 주제로 교열과 교정에 대한 자기 생각과 자기가 지켜온 교열 원칙을 제시하는 책이다.


교정은 흔히 듣는 말인데 교열은 비교적 낯선 말이다. 중앙일보에서 교열 기자로 평생을 일한 선배 덕분에 교열이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은데, 그런 나도 정확하게 교열과 교정이 어떻게 다른 지는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저자는 교정은 글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고 교열은 잘못되었거나 어색한 문장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원고 교정이라면 흔히 오탈자를 찾아내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바로잡는 일을 떠올린다. 정확하다. 하지만 그것이 넓은 의미에 교정 전체를 아우르는 건 아니다. 이 책의 주제인 ‘이상한 문제’는 교정의 대상이 아닌 교열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교정은 ‘정확성을 다투는 과학’이고 교열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교정의 정의는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오탈자, 맞춤법, 띄어쓰기까지는 혼선이 별로 없는데 ‘~적, ~의, ~것, ~들’ 이런 말을 고치는 것도 교정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한다. 오해는 마시라. 교열이라는 말 자체는 낯설지 않게 여겼던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게 교열에 해당한다.


이 책은 작가가 교정 교열을 담당한 이에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지 묻는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상을 떠난 함인주라는 작가의 아내가 저자의 교열 내용에 관해 묻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은 고인의 부인이었다. 나와 메일을 주고받은 인물도 같은 사람이었다. 편집자에게 전화해서 내 메일 주소를 물었다는 것이다. 남편 유품을 정리하다가 교정지를 발견했는데, 내가 수정하고 다듬은 문장에 이런저런 표시와 메모를 해놓았더라고. 그 양이 꽤 되었던 모앙이다. 내게 다시 묻는 내용도 있었고, 거침업이 엑스 표시를 해 놓은 부분도 있었으며, 문장에 대한 고민을 적나라하게 적어 놓은 부분도 있었단다. 실례가 안 된다면 메일로라도 문의를 해 보고 싶다고 해서 내 메일 주소를 알려줬다고.”


“처음 남편의 유품 가운데에서 교정지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 이런 걸 붙들고 고통스러워했나 싶어 속상했습니다. 화가 나기도 했고요. 그러다 남편이 불쌍해졌습니다. 세상의 벽에 부딪혀 신음하는 존재 같았달까요. 교정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남편의 문장과 선생님이 다듬고 수정한 문장을 옮겨 적어 보기도 하면서 남편이 원했던 것이 자기만의 문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죠.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메일 주소를 알아냈고 편지를 보낸 겁니다. 말하자면 죽은 남편 대신 제가 선생님께 궁금한 걸 묻고 따질 걸 따진 셈이랄까요.”


작가의 아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남편이 원한 건 자기만의 문장이었을 거라는 생각. 난 지금도 내 색깔을 그대로 드러낸 나만의 글로 쓴 그 책을 사랑하고 또 자랑스럽게 여긴다. 설령 내가 편집자 의견을 받아들여 문장이 훨씬 좋아졌고, 그래서 독자들의 사랑을 더 받았다고 해도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내 글이 아니고, 나아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말이 그렇게 반가웠다.


“비록 문장이 이상하다고 해도 그 이상함 속에서 문장의 결이랄까 무늬랄까, 아무튼 글쓴이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 말하자면 글쓴이가 갖고 있는 그 이상함이 그의 문장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책이지. 내가 드러나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심이 저자의 글을 살폈다. 지금 저자의 글을 텍스트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살피고 있다. 그런데 정리되기는커녕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저자의 텍스트 밑에 붉은 줄 쳐진 곳이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고치는 일은 텍스트를 입력할 때 나타나는 붉은 밑줄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는 한, 파일을 열 때마다 보이는 붉은 밑줄을 놔두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도 오류가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과 다른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자의 글에 붉은 밑줄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는 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저자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표준적인 문장 같은 건 없다. 정답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그건 심지어 맞춤법도 마찬가지이다. 맞춤법이란 그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만든 규칙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바른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관심을 끈 몇 문장으로 리뷰를 마치려 한다.


“흔히 주격 조사하면 ‘은, 는, 이, 가’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가’만 주격 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말했다’와 ‘나는 말했다’는 다른 뜻을 갖는 문장인 셈이다. ‘내가 말했다’에서 ‘나’가 ‘말했다’라는 서술어의 주인이라면, ‘나는 말했다’는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말했다는 뜻이랄까.”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어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고생 끝에 대도시에 정착을 했다’. ‘고생 끝에 대도시에 정착했다’. 이 두 문장에서 첫 문장은 동사 ‘하다’에 ‘정착’이 목적어로 쓰인 반면, 둘째 문장에서는 ‘정착하다’라는 동사가 쓰였다. 그러니 첫 문장은 대도시에서 고생 끝에 겨우 한 것이 정착이었다는 뜻인 반면, 둘째 문장은 대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고생했는데 결국 목표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생긴 모양이다. 그런데 이 글에도 벌건 밑줄이 다섯 곳에나 쳐졌다. 외국인이 우리 말 배우기 그렇게 어렵다던데, 어려운 게 말 만은 아닌 모양이다. 글도 이처럼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이 속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