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한겨레출판
2021년 6월 25일
트럼프와 시진핑이 다녀갔다. 세기의 정상이 동시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건 처음이 아닐까 한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국제질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하는 짓이라고는 뒷골목 시정잡배보다 나을 게 없는 그들이 세기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심사가 편안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그들과 척지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 하긴 씨줄 날줄로 엮인 세상에서 누구와 인들 척지고 사는 게 가능하겠나 마는. 더구나 그들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으니 싫으나 좋으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지 않을 수 없다.
중국통 박민희 기자의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을 생각을 한 건 시진핑의 방한이 계기가 되었지만, 보름쯤 전에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올려놓은 박경환 번역가의 글이 그 생각을 재촉하였다. 책을 다시 읽고 나서도 리뷰를 쓰기까지는 또 며칠이 걸렸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몇 번이나 리뷰를 시작했다가 결국은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지워버렸는데, 이번에는 책을 펼치게 만든 박경환 번역가의 글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한번 붙들면 나름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그걸 다시 옮겨 적으며 의미를 새기고, 그걸 글로 정리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기울여왔다. 하지만 길지 않은 문장으로 책의 핵심을 짚어내는 그런 글을 보면 내가 그동안 해오고 있는 게 참 부질없어 보인다.
각설하고,
등장하고 나서 짧은 시간에 집단지도체제가 분점했던 세력을 한 손에 거머쥔 시진핑을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건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도 모르고 정치도 아는 게 없다. 중국에 대한 내 지식은 마오쩌둥이라는 이름보다 모택동이 익숙하고 중국보다는 중공이라는 칭호로 먼저 접하게 된 오래전 그 모습에서 더 발전한 게 없다. 그런 정도의 지식으로 이 책에서 설명해 놓은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시진핑 리더십은 처음부터 외부로는 강력한 자신감, 내부로는 불안감의 두 얼굴로 등장했다. 시진핑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공산당 지도부를 향해 당이 처한 불안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했고, 자신이 그 위기를 돌파할 비전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임을 강조하며 시진핑 1인 체제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보다 결코 못지않았던 등소평이나 강택민은 왜 1인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일까? 만들어내지 못한 것인가 만들어내지 않은 것인가? 공산당이 처했다는 위기는 시진핑 등장 때만 있었던 현상인가? 시진핑이 강조했다는 위기가 실체가 있는 것이기는 했나? 위기라는 자체가 위기라고 정의하고 위기로 몰아가면 위기가 되는 게 아닌가? 등소평, 강택민 집권 시기라고 해서 그런 위기감이 없는 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들은 그걸 기회 삼아서 1인 체제를 도모하지 않았을까?
시진핑이 권력의 전면에 나선 이후의 과정에 대한 설명도 궁금증을 풀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취임 초기 시진핑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것은 강력한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시진핑이 부패 관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자 대중은 열광했다.”
이것도 여느 독재자와 다를 게 없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절대권력으로 등장하기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도 그랬고, 독재 권력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취하는 통치방식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라지 않는. 저자 역시 이어지는 글에서 이러한 공포정치는 후진타오 시대에도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게 왜 시진핑 시대에만 1인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저자는 모택동은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 중국을 건국했고, 등소평과 강택민과 후진타오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지만, 이이 반해 시진핑은 오히려 고속성장도 어렵고 점점 커지는 도농 격차 때문에 사회 안정이 위협받고, 그 결과로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위협받는 상황, 즉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조건에서 권력을 잡았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그런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갈 도구인 ‘중국몽’을 앞세워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이 ‘현금’으로 권력을 공고히 한 데 반해 시진핑은 ‘약속어음’으로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말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도 시진핑은 전임자가 누리지 못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세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미국이 저렇게 망가져 가는 꼴을 보는 것도 불편한 일이지만, 중국이 주변국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일을 지켜보는 건 더욱 불편한 일이다. 당장 우리가 그 위협의 대상이 되었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점점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모습은 인과응보며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한 외교관은 중국 외교가 처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대해 “한꺼번에 여러 나라와 대립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외교적 재난”이라는 글을 올렸고, 국방 관련 대학의 한 교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원한이 이렇게 큰지 몰랐고,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이렇게 악독할 줄 몰랐으며, 중국이 이토록 미국에 얻어맞는데도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가 없을 줄 몰랐다”고 탄식하였단다. 모르기는 뭘 모른다는 말인가, 자업자득인 것을.
이 책은 독특하게도 중국 현대사를 열전 형식을 빌려 정리하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시진핑을 비롯해 시진핑 체제의 설계자, 이 제국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변경 사람들, 이 체제에 맞서 변화를 추구하는 민간 활동가, 기업가를 망라한다. 문득 이 형식을 지금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권력의 정점으로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설계자는 누구인가 (그들의 설계 방향이 무엇이었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우리 체제에 희생되고 있는 변경 사람들은 누구이며, 우리 체제에 맞서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가로 누구를 꼽을 것인가? 물론 그럴 사람이 있기는 한지 판단하는 게 먼저이겠지만.
사석에서 저자를 몇 번 뵌 일이 있다. 그때 이미 <보이지 않는 중국>을 읽었을 때였는데, 그게 박민희 기자의 역서인지는 미처 몰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면서도, 짧은 코멘트 가운데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드러났는데도, 미처 역서와 연결하지 못했다. 고작 건넨다는 말이 한겨레 논설위원이면 머리에 뿔이라도 난 줄 알았다는 말 같지 않은 농담 따위였고.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빼곡히 적기는 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뭘 어떻게 연결해 나가야 할지 막막해 궁금했던 거 한 가지를 적는 것으로 끝낸다. 한 번 더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다.